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 /사진=뉴스1

현직 부장판사가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52·사법연수원 28기)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징용배상 판결을 살펴보기'란 글을 게재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 글을 통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판결이 활용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면서 "판결이 사회 분쟁을 해결하는 중요 수단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세상 분쟁은 당사자들의 협상, 정치적 타협, 외교적 협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보충적인 법원리 등으로 원칙을 무너뜨리는 해석을 했다는 생각"이라며 "원고들의 억울한 사정이 풀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의 기본원리가 상당 부분 흔들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또 김 부장판사는 "나라면 아마 최초 1·2심 판결(원고 패소)처럼 판단했을 것"이라며 "좀 더 솔직해지면 대부분 판사들이 대법원 판결이 없는 상태에서 판단하라고 하면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을 했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것은 판사들이 판단력이 부족해서도, 법리를 몰라서도, 원고 입장을 모르거나 일본을 두둔해서도 아니다"면서 "현존하는 법률과 법학의 일반적인 법리, 대법원과 각급 법원이 쌓아온 선례를 통해 보편적인 법의 잣대로 판단하면 그것이 맞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의 문제점을 세 가지로 들었다. 첫째는 소멸시효 문제다. 민법 제766조(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나 법정 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인해 소멸된다'고 규정한 것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결이 있고 먼저 든 생각은 소멸시효의 벽을 어떻게 넘었을까 하는 것"이라며 "이 사건은 1945년께로 돌아가니 그 시점부터 따지면 소송이 최초 제기된 2005년까지 봐도 약 60년의 세월이 흘렀고, 일본과 국교가 회복된 1965년을 기준으로 봐도 40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 사건 판결문을 찾아본 다음 느낀 소회는 역시 특별한 논리는 없다는 생각이었다"면서 "원고들이 소를 제기하자 새로운 인식이 부각돼 장애가 없어졌다는 논리는 도통 이해하기가 힘들고, 그것은 소멸시효 제도를 형해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이유는 법인격의 법리 문제다. 그는 "원고들을 고용했던 구 일본제철은 전쟁이 끝나자 일본 국내법인 회사경리 응급조치법에 따라 1950년 4월1일 해산됐다"며 "비록 구 일본제철의 자산이 출자된 4개의 회사 중의 하나였다고는 하지만, 일본제철은 새로이 태어난 법인이고, 원고들을 고용하였던 회사가 아니다. 후지제철과 합병해 새로이 태어난 신일본제철 역시 원고들을 고용했던 기업체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일본 법원 판결의 기판력 문제다. 1997년 12월 강제징용 피해자인 여운택씨와 신천수씨는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체불임금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최종 패소했다.

김 부장판사는 "우리 대법원은 일본(오사카 고등재판소)의 판결이 공서양속(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는데, 문제는 그 일본 판결이 대한민국의 어떠한 공서양속을 위반했는가 하는 것"이라며 "대법원은 현행 헌법 전문 속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표현 등을 인용하지만, 이 부분만 보더라도 예상 밖의 논리전개라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소멸시효, 법인격의 소멸, 기판력의 승인이라는 엄청난 장애를 넘어야 했다"며 "이러한 장애를 대법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공서양속위반 금지의 원칙과 같은 보충적인 원칙들로 쉽게 넘어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 상고심 판결 이후에는 대법원의 판결의 취지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그것은 내가 그 대법원의 판결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급심이 상급심에 기속되어야 하는 심급제를 존중하기 때문"이라며 " 판결을 이용해 판사가 의도하는 바, 또는 판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현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판결이 법관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법원의 2012년 최초 제3심 판결로 어찌 보면 법원은 감당하기 힘든 실수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며 "그래서 (양승태 대법원은) 판결 이외의 정책적 외교적 해법을 기대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러갔고 결국 대법원은 정권과 재판거래를 했다는 오명을 쓰고 당시의 사법부 수장이 구금되는 참담한 지경으로까지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한편 1941~1943년 충분한 식사와 임금, 기술습득, 귀국 뒤 안정적 일자리 보장을 앞세운 구 일본제철 회유로 일본에 건너가 오사카 등지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이씨 등은 일본에서 소송을 냈으나 패소하자, 2005년 한국 법원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체불임금 및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앞서 1,2심은 일본의 확정판결이 한국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어 효력이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2012년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하급심을 뒤집고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원고승소 판결한 파기환송심을 거쳐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통해 지난해 10월 파기환송심 결론을 확정했다.이후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반도체 관련 소재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하며 한국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조치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