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이 또 옷을 갈아입는다. 1999년 본격적인 실손보험 상품이 출시된 후 벌써 네번째(4세대) 상품개정이다. 이번엔 보험료에 차등을 둔다. 도수치료 등을 의료쇼핑처럼 이용하는 가입자에게 더 많이 보험료를 내게 해 손해율을 줄이겠다는 의지다. 과거 출시된 실손보험이 의료이용량과 관계없이 모두 동일한 보험료를 부담했던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개편안이다. 

실손보험이 지속적으로 개편되는 것은 결국 손해율 때문이다. 지난해 보험사의 실손보험 손실액은 2조4313억원에 이른다. 현재 추세라면 올해 손실액 규모는 2조8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쯤되면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왜 이렇게 치솟았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1990년대 말 국민들은 병원 진료비를 절반 가까이 부담해야 했다. 진료비 자기부담률이 높던 시절이었다. 자기공명장치(MRI) 진단비나 레이저치료비 등엔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았다. 

이때 입·통원 진료비를 보장하는 실손보험상품이 처음으로 등장했고 보장 범위도 상품이 출시될수록 진화했다. 월 몇만원의 보험료면 수십만원의 진료비 중 상당부분을 보상받았다. 2003년 10월부터는 아예 자기부담금을 없앤 실손보험이 나왔다. 가입만 해놓으면 사실상 진료비가 공짜다. 파격적인 혜택에 보험소비자는 열광했고 실손보험은 2007년 가입자 1000만명을 넘기며 ‘국민보험’ 대열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2020년 현재 가입자는 3800만명으로 추정된다.

실손보험이 잘 팔리자 보험사는 보험설계사에게 경쟁적으로 판매를 주문했다. 돈이 된다는 소식에 생명보험사까지 실손보험 판매를 시작했고 일부 보험사는 경쟁사보다 보장 한도를 더 확대하기도 했다. ‘실손보험 끼워팔기’를 하지 못하는 보험설계사는 바보 취급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실손 광풍’이 2000년대 중후반을 강타했다. 

병원은 신이 났다. 실손보험 덕분에 의료비 부담이 적어진 보험가입자가 병원을 자주 찾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실손 있으시죠?” 질문은 의사들의 필수 질문이 됐다. 환자들이 의료쇼핑(?)을 할 수 있도록 도수·주사치료에는 상품처럼 가격표가 붙었다. 가입자 역시 ‘실손보험 가입’을 하나의 마패처럼 여기며 병원을 수시로 방문하기 이르렀다.

실손보험의 실패는 결국 보험사·의료기관·보험가입자 모두가 주범이다. 보험사는 황금알을 쥐기 위해 거위 배를 너무 일찍 갈랐다가 역풍을 맞고 있다. ‘실손보험 간편 청구와 보험료 인상 등을 하지 않으면 망할 것 같다’고 외치는 보험사의 곡소리가 우습게 들리는 이유다. 

3800만명의 건강을 책임졌던 실손보험이 많이 아프다. 아프다는 신호는 10년 전부터 보냈지만 모두가 자기 욕심으로 이를 외면했다. 실손보험을 이대로 사라지게 할 것인지는 이제 우리 손에 달렸다. 5세대, 6세대 실손보험이 더는 나오지 않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