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7일 두산중공업가스터빈 고온부품공장찾은 문재인 대통령. / 사진=뉴스1 DB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 정책과 그린뉴딜에 속도를 내면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주목받는다. LNG발전은 환경오염의 주범인 석탄발전을 대체하는 동시에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보완할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도 국내 LNG발전 비중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LNG발전의 핵심부품인 가스터빈을 해외기업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공들여 키우는 시장이 외산의 놀이터가 되지 않도록 국산제품의 경쟁력을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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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부품 가스터빈, 전량 외산에 의존━
LNG발전의 핵심부품인 가스터빈은 특정 해외기업이 독식하고 있다. 가스터빈은 최첨단 기계기술로 통칭되는 항공기 제트 엔진과 동일한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1500도 이상의 가혹한 운전조건에서 지속적으로 견디는 초내열 합금 소재 기술과 복잡한 형상의 고온부품을 구현하는 정밀 주조 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최고 난이도 기계 기술의 복합체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이를 상용화할 수 있는 업체가 제한적이다. 시장조사업체 ‘맥코이’에 따르면 글로벌 가스터빈 시장 점유율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58% ▲독일 지멘스 27% ▲일본 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MHPS) 11% ▲이탈리아 안살도 4% 등이 100%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안살도는 영향력이 미미해 사실상 미국·독일·일본이 가스터빈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 시장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올해 상반기 기준 국내에 설치된 가스터빈은 총 158기, 2만5966메가와트(㎿)이다. 제조사별 보급현황을 살펴보면 ▲미국 GE 40기(25.3%) ▲독일 지멘스 34기(21.5%) ▲일본 MHPS 27기(17.1%) ▲미국 웨스팅하우스 25기(15.8%) ▲스위스 알스톰 20기(12.7%) ▲한국 두산중공업 12기(7.6%)이다.
이 가운데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2006년 몰락해 일본 도시바에 인수되며 사업에서 철수했고 알스톰 역시 2014년 GE에 가스터빈 사업을 매각했다. 두산중공업이 제조해 공급한 12기의 경우 일본 MHPS가 설계한 제품을 단순 제작만 한 것이기 때문에 MHPS의 제품으로 분류된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당시에 (두산중공업이) 제작 기술은 갖추고 있었지만 자체적인 설계 기술을 보유하지 못했다”며 “현재 시장에 공급돼 있는 가스터빈은 라이선스가 MHPS에 있는 일본 제품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현재까지 국내에 공급된 가스터빈도 전량을 미국·독일·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공급 이후 유지보수 부문에서도 막대한 금액이 해외 기업으로 빠져나가는 점도 문제다. 한국기계연구원에 따르면 국내에 설치돼 운영하는 전체 LNG발전용 가스터빈의 연간 총 유지보수 비용은 고온부품 구매 비용 1290억원과 경상정비 비용 1550억원 등을 합친 2840억원이다. 국내 가스터빈 기반 LNG발전이 시작된 1992년 이후 2017년까지 25년간 해외로 유출된 총 유지보수 비용은 4조2104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기계연구원의 추측이다.
/그래픽=김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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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개발 성공한 한국, 경쟁력 갖추려면━
한국의 경우 2010년 이후 산업부의 주도로 5000억원 이상을 투입해 가스터빈 국산화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두산중공업이 2013년 국책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총 1조원 규모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한 끝에 지난해 세계 5번째로 자체적인 한국형 표준 가스터빈 모델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두산중공업이 개발한 모델(DGT6-300H S1)은 출력 270㎿와 복합발전효율 60% 이상의 대용량·고효율 가스터빈이다. 내년 한국서부발전이 추진하고 있는 500㎿급 김포열병합발전소에 공급돼 2년간의 실증사업을 거쳐 2023년부터 상업운전에 돌입할 예정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뒤늦게 도전장을 내민 국산제품이 수십년 간 검증된 운영실적을 갖춘 외산 제품과 본격적으로 경쟁하려면 국내에서 트랙 레코드(운영실적)를 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에너지 전환 계획을 위해 LNG발전을 늘리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수립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034년까지 가동된 지 30년에 가까운 석탄발전 30기를 폐지하고 이 가운데 24기는 LNG발전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석탄발전의 설비용량은 올해 35.8기가와트(GW)에서 2034년 29.0GW로 감소하게 되며 LNG발전의 설비용량은 올해 41.3GW에서 2034년 59.1GW로 17.8GW 늘어나게 된다. 이를 전량 국산으로 공급할 경우 가스터빈 비용으로 통상 ㎾당 480달러가 소요되는 점을 감안할 때 10조원가량의 수입대체 효과를 얻는 셈이다.
국내에서의 운영실적이 쌓이면 세계시장에서도 선도업체와 경쟁할 수 있게 된다. 기계연구원은 향후 10년간 전 세계 발전용 가스터빈의 시장규모가 신규 판매와 유지·보수를 합쳐 약 4400억달러(484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김한석 한국기계연구원 청정연료발전연구실 책임연구원은 “정부 주도 하에 국산 제품 사용을 유도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발전사를 대상으로 국산 제품을 사용할 경우 경영평가에서 가중치나 부가점수를 주는 방안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국내에서 다양한 트랙 레코드를 확보하면 수년 내로 중동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 국산 제품의 진입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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