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은옥 기자
시중은행들이 일반 영업점포를 줄이면서도 고액 자산가를 위한 특화 점포를 늘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금융의 비대면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인건비와 임대료 등의 유지비용으로 수익성을 갉아먹는 일반 영업점포를 줄여나가는 대신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특화 점포를 확대해 예대마진을 넘어 WM(자산관리) 등 비이자 수익을 늘리는 방향으로 경영전략 수정에 나선 것이다.실제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국내 영업점 수는 2016년 3월 말 5027개에서 올 3월 말 기준 4398개로 5년간 약 630곳이 문을 닫았다. 여기에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국내 부자는 연 평균 9% 이상 늘어나는 만큼 은행의 전통적 강점으로 꼽히는 WM 부문의 역량을 높여 경쟁자인 핀테크 업체들과 차별화를 둔다는 전략이다.
하나은행 클럽원한남 내부 전경./사진=하나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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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가·연예인 사는 한남동을 선점하라━
고액 자산가를 위한 특화 점포는 기존 강남권에서 최근엔 서울 한남동과 경기도 판교 등으로 둥지를 트는 추세다. 하나은행은 올 6월 한남동에 금융자산 30억원 이상 보유 고객을 위한 ‘클럽원(Club1)한남’을 신설했다. 클럽원한남은 기존 하나은행이 금융자산 5억원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했던 ‘한남1동 골드클럽’이 한 단계 상향된 곳이다. 기존 한남1동 골드클럽은 국내 부촌 중 한 곳인 유엔(UN)빌리지 거주자를 겨냥했다면 클럽원한남은 가수 지드래곤과 BTS RM·지민 등 유명 연예인이 거주하는 나인원한남 아파트 건너편 건물(일신빌딩 6층)에 신설된 만큼 하나은행은 타깃층을 유엔빌리지는 물론 한남더힐과 나인원한남까지 거주 고객을 확대한 전략으로 풀이된다.하나은행은 고객의 금융자산 규모에 따라 ▲VIP클럽(1억원 이상) ▲골드클럽(5억원 이상) ▲클럽원(30억원 이상)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클럽원 점포는 2017년 8월 문을 연 삼성동과 함께 한남동까지 2곳으로 늘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한남1동 골드클럽이 클럽원한남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하나은행 PB전문가는 기존 3명에서 5명으로 증원됐으며 클럽원한남에 함께 있는 하나금융투자에도 은행 출신 PB 2명이 배치돼 있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나금투 리서치센터를 활용해 개인 고객뿐 아니라 기업을 대상으로 한 IPO, M&A 등 IB업무와 법인 자산관리도 지원하고 부동산전문가, 세무전문가, 기업·가업승계 전문가 3명이 지점에 상주해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은 내년에도 새로운 지역에 클럽원 3호점을 추가 신설할 계획이다.
시중은행의 한남동 입성은 이미 3년 전부터 시작됐다. 신한은행은 신한금융투자와 손잡고 2019년 11월 한남동 ‘신한PWM한남동센터’를 열었다. PWM센터는 금융자산 5억원 이상의 고객을 전담하는 채널로 신한PWM한남동센터는 한남동 고액 자산가를 끌어모으는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았다.
은행들이 이처럼 고액 자산가 특화 점포지역으로 한남동을 찍은 이유는 무엇보다 나인원한남, 한남더힐 등 초고가 주택이 밀집해 있는 데다 한남동 고액 자산가층이 압구정동으로 넘어가 은행권 PB센터를 주로 이용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권 일각에선 은행권 자산관리센터의 주요 거점이 압구정동에서 한남동으로 옮겨갈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우리은행 ‘TCE본점센터’ 내부 전경./사진=우리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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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밀집 ‘역삼’과 주식부자 ‘판교’에도 눈독━
서울의 전통 부촌으로 꼽히는 강남에서도 역삼동에 고액 자산가를 위한 특화점포가 잇따라 문을 열고 있다. 역삼동은 기업들이 밀집해 있어 고액 자산가를 잡기 위한 전초기지로 손색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유일의 핀테크 유니콘 기업인 토스 본사도 역삼동에 소재해 있다.우리은행은 금융자산 30억원 이상 고액 자산가를 위한 특화점포 ‘TCE(투체어 익스클루시브)강남센터’를 지난해 10월 역삼동 GS타워 6층에 연데 이어 올 7월에는 중구 본점에 TCE본점센터를 개점했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역시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빌딩에 각각 ‘강남스타PB센터’, ‘신한PWM강남파이낸스센터’를 운영하며 고액 자산가 유치에 나서고 있다.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 SK바이오팜, 크래프톤 등 판교에 사무실을 둔 기업들이 줄줄이 기업공개(IPO)에 나서면서 판교 역시 은행들이 고액 자산가를 끌어모으기 위한 주요 거점으로 눈독을 들이는 지역 중 하나다. 앞서 신한은행은 2019년 1월 신한PWM분당중앙센터를 판교 알파돔타워로 이전, 신한PWM판교센터를 개점했다.
스톡옵션을 받아 ‘주식부자’가 된 이들 회사의 임직원을 고객으로 잡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는 후문이다. 카카오뱅크가 7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진행한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엔 58조3020억원의 증거금이 모이며 최종 183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금융권에선 카카오뱅크 임직원이 전부 스톡옵션을 행사할 경우 총 909억원의 평가차익을 남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판교에서 새로 탄생한 주식부자를 대상으로 한 PB들의 고객 유치가 달아오르는 분위기”라며 “구체적인 규모는 밝힐 수 없지만 실제로 판교에 소재한 바이오, 벤처, IT기업 임직원의 PB거래가 최근 들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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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급증에 ‘선택과 집중’ 나서는 은행권━
은행들이 고액 자산가를 위한 특화점포를 신설한 데에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주식시장의 활황세로 보유자금이 늘어난 자산가들의 자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다. 최근들어 고액 자산가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KB금융그룹이 발간한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금융자산을 10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는 부자 수는 2010년 16만명에서 2019년 35만4000명으로 2.2배 증가한했다. 같은 기간 부자들의 총 금융자산은 1158조원에서 2154조원으로 1.9배 급증했다.
한국 부자의 지역별 분포를 살펴보면 45.8%인 16만2000명이 서울에 살고 있으며 이 중 강남·서초·종로·성북·용산·영등포 등 6개구가 다른 자치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의 집중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업무는 비대면으로 전환이 가능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고액 자산가에게는 교차판매가 가능한 만큼 대면 업무가 효율적이라고 판단함에 따라 은행들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라며 “은퇴 후 판교와 분당으로 주거지를 옮겨가는 추세에 따라 이 지역에서의 자산관리 서비스 수요도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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