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준 아리바이오 대표이사가 국산 치매 치료 신약후보물질 AR1001의 미국 임상 3상에 도전한다. 정 대표가 아리바이오 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장동규 기자
정재준 아리바이오 대표의 일성이다. 치매 치료제 개발은 전 세계적으로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꼽힌다. 글로벌 빅파마조차 혀를 내두른다. 현재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허가받은 치료제(알츠하이머)는 바이오젠의 아두헬름 단 하나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효능 논란에 몸살을 앓고 있는 처지다.
한국 바이오 기업 아리바이오가 먹는(경구용) 치매 치료 신약으로 치매 정복에 나선다. 아리바이오는 지난 10월 FDA에 치매 치료 신약후보물질(AR1001)의 임상 3상 시험계획서를 제출했다. 한국이 개발한 치매 치료제가 처음으로 글로벌 최종 임상에 진입한 것이다. 상용화에 한 걸음을 더 내디딘 정 대표는 의외로 차분했다.
"국내 바이오 기업 중 최초로 글로벌 알츠하이머병 최종 임상에 독자적으로 도전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치매 치료제는 실패 가능성이 99%라는 것이 정설 아닌 정설로 알려졌습니다. 1%의 가능성을 갖고 10년 이상을 이끌어온 연구개발 노력이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쏟을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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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 쓰는 국산 치매신약… "빅파마 20곳과 기술이전 협상"━
AR1001은 치매 진행 억제와 치매 환자의 기억력과 인지기능을 향상하는 최초의 다중기전·다중효과 경구용 알츠하이머 치료제다. 미국 임상 2상 시험에서 성공적인 평가지표를 달성했고 알츠하이머 국제학회와 SCI급 학술지(Alzheimer's Research & Therapy) 등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 부문에서 합격점을 받았다."임상 2상에 참여했던 환자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뜨거웠습니다. 환자들이 보내온 메시지가 큰 힘이 됐죠. 임상 참여 전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했으나 약물 투여 후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6개월 동안 약을 투약한 환자 중 약 80% 이상이 추가 임상 참여를 신청할 정도입니다."
이번 AR1001의 임상 3상은 FDA와 협의를 통해 총 1600명의 대규모 환자를 두 개의 시험군으로 나눠 진행된다. 아리바이오는 이미 임상 3상을 주도할 임상시험대행업체(CRO) 섭외도 마쳤다. 메드페이스(Medpace)가 종합적 임상 관리를 담당하고 서모피셔(Thermo Fisher)가 임상 약 관리와 공급, 바이오마커 분석 등을 맡는다. 이외에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과 랩코넥트(Labconnec) 등 각 분야 최고의 CRO를 파트너로 선정했다.
"오는 12월 또는 2023년 1월 AR1001의 환자 투약이 본격화할 수 있도록 협의하고 있습니다. 임상 3상을 진행하며 기술이전에 대한 가능성도 모색할 방침입니다. 현재 13개 주요국의 20여개의 빅파마와 기술이전 협상을 진행 중입니다. 이미 다수의 제약사들과는 기술이전을 위한 기밀누설 방지협약도 체결했습니다."
정재준 아리바이오 대표이사가 AR1001의 임상 3상 진행과 함께 글로벌 빅파마와의 기술수출도 모색한다. 이미 20여개의 빅파마와 기술이전 협상을 준비 중이며 다수의 제약사와는 본격 논의를 위해 기밀누설 방지협약도 체결했다. 정재준 아리바이오 대표이사 약력./사진=장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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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적인 치매 원인… AR1001로 다잡는다━
치매는 임상적인 진단이 어렵다. 발병 원인이 불명확한 데다 인체 노화와 면역력 저하, 염증 반응, 혈관 노화 등의 다양한 원인과 위험인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 대표가 인터뷰 중 공개한 미국조사기관의 자료를 보면 치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진 알츠하이머병, 루이소체 치매, 혈관성 치매 환자의 비율은 모두 합쳐 30%에 그쳤다. 나머지 70%는 이들과 다른 치매를 혼합한 복합 치매였다.정 대표는 지금까지 나온 모든 치매 치료제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라는 독성단백질 제거가 주요 평가지표였기 때문으로 판단한다. 실제로 바이오젠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하도록 개발한 아두헬름은 2020년 FDA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았음에도 효능 논란이 지속해서 제기됐다. 이와 함께 지난 7월에는 아밀로이드 베타가 뇌에 쌓여 알츠하이머 치매가 생긴다는 논문을 두고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치매 임상의들 사이에선 환자를 정확히 진단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얘기합니다. 정확한 진단을 하려면 사망한 뒤 진행하는 부검뿐입니다. 치매의 여러 요인들에 대한 치료가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환자의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AR1001이 다중기전·다중효과에 작용하도록 개발한 것도 이러한 근거를 뒷받침합니다."
정 대표는 이번 임상 3상을 통해 AR1001의 우월성을 강조할 계획이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 에자이·바이오젠이 치매 치료 신약 레카네맙의 임상 3상에서 긍정적인 주요 평가지표를 발표했다. 레카네맙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제거를 목표로 2주에 한 번씩 총 1년 6개월 동안 치료하는 주사제다. 이번 임상 3상 결과 인지기능과 일상생활 능력을 평가하는 임상치매척도(CDR-SB)가 18개월 동안 가짜약과 비교해 0.45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오랫 동안 많은 실패에도 꾸준히 개발해 온 두 회사에 축하를 보낸다"면서 "이번 레카네맙 임상 3상 발표로 AR1001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쟁사의 업적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에자이와 바이오젠이 선택한 1차 유효성 지표가 환자의 치매 진행을 추적하는데 적합한 지표라는 것을 알려줬기 때문"이라며 "AR1001은 임상 3상에서 1년 동안 CDR-SB를 가짜약 대비 0.5점 이상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덧붙였다.
아리바이오를 전 세계 속 퇴행성 뇌질환 전문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게 정재준 아리바이오 대표의 궁극적인 목표다. 정 대표가 자사 대표 파이프라인 AR1001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장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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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정복=아리바이오' 공식 증명할 것"━
정 대표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리바이오가 전 세계 무대에서 퇴행성 뇌질환 전문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아리바이오는 2010년 설립된 바이오 기업으로 '치매와 뇌 질환'에 대한 모든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AR1001을 제외하더라도 아리바이오는 AR1002(차세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AR1003(중증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AR1004(경도인지장애 치료제, 천연의약품) 등 다양한 뇌 질환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했다. 치매 환자들의 기억력 감퇴를 완화하기 위해 하버드의대 연구진과 공동으로 치매예방 애플리케이션 'MemoRe'를 개발했고 기억과 인지기능 향상을 유도하는 감마 진동 디바이스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 자체가 부정되는 것입니다. 치매는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존엄성을 앗아가는 질병입니다. 환자 자신 못지 않게 곁에서 돌보는 가족들의 희생과 고통도 큽니다. 알츠하이머 질병이 확인된 지는 1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인프라와 자금력을 보유한 빅파마 조차 치매 치료제 개발에 가장 많은 실패율을 보입니다. 어렵기에 절대 강자가 없는 분야, 누구도 성공을 하지 못한 분야이기에 아리바이오가 치매 정복을 증명할 것입니다."
끝으로 정 대표는 임직원 모두와 주주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남겼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신약개발 주류에 포함되지 않을 정도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 부담과 난관을 극복해 온 것은 개인의 능력이기보다 사람이었다"며 "창업 초기부터 함께한 모든 임직원과 연구원들, 응원해주시는 투자자와 주주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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