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열린옷장을 운영하는 김소령 대표(사진)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문득 그의 머리를 스친 하나의 생각이 삶을 바꿔놓았다. /사진=열린옷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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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비용 '0원'…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공유 옷장 ━
열린옷장은 정장을 기부받을 때도 옷에 얽힌 사연을 받아 이용자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사진=열린옷장
시작은 2011년 11월 문득 머리를 스친 생각에서 비롯됐다. 김 대표는 당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활동했던 시민사회단체 '희망제작쇼'의 '소셜디자이너 스쿨'에서 관련 아이디어를 기획서로 발표했다.
그때부터 '안 입는 옷을 기증받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빌려주자'는 일념 하나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주말마다 구체화 작업에 돌입했다. 온라인에는 기증 공고(트위터, 페이스북)까지 올렸다.
김 대표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서 일했다. 회사를 위해서만 일하다가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하고 열린옷장을 시작했다. 당시 창업비용은 0원이었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일어서야 했다. 2012년 4월 공유 오피스에 공간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공유 물품으로 채웠다.
김소령 대표는 "거울이 없을 때 거울책상을 보내주신 가구공장 사장님도 계셨고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하면 이를 보내주신 분들도 있었다"고 했다. "안 쓰던 아이패드를 주신 분도 있었는데 그 아이패드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열린옷장은 기증자로부터 옷에 담긴 사연을 받아 이용자들과 공유한다. 사용자들의 후기를 모아 1년에 한 번 옷을 기부한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김 대표는 "도움 주신 분들에게 별다른 혜택을 주진 못하지만 옷 한 벌에 기증한 사람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열린옷장은 사회 곳곳에 계시는 분들이 손을 보태서 만든 곳"이라고 했다. 자켓, 바지 등 전체 정장 세트 합쳐 3만원 내외로 대여비를 책정한 뒤 10년 동안 유지하고 있다.
사회적 편견과도 맞서 싸웠다. 양복을 빌려 입는다는 발상이 공감을 얻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다수 창업 컨설턴트들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에 남의 옷을 빌려 가겠냐"는 지적이었다. 김 대표는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사업하면 안 되는데 이용자가 많지 않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밀어붙였다"고 했다.
다행히 차츰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입어본 사람들의 호평으로 입소문도 났다. '공유경제'라는 개념이 확산되면서 이슈가 됐다. 김 대표는 "초기엔 아들, 딸과 같이 오신 어머님들이 '정장을 사면 되지 왜 빌리냐'며 자식을 타박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분이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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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온라인 고도화' 절실… "정장하면 '열린옷장' 떠올랐으면"━
김소령 대표와 직원들은 열린옷장을 운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고객들의 응원 한마디에 힘을 얻는다. /사진=열린옷장
그럼에도 기증자는 늘었다. 최근엔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조직으로 인정받아 브라이언임팩트 재단으로부터 2억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해당 재단은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의 사재로 세워진 곳이다.
김 대표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온라인 시스템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지금도 본인의 사이즈와 주소를 입력하면 옷을 받을 수 있지만 '안 입어도 맞은 옷'을 제공하기 위해선 서비스 고도화가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10년 동안 신체 치수를 잰 만큼 축적된 데이터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오프라인 지점을 늘리는 대신 체계화된 온라인 시스템 구축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10년 동안 기증자가 9000명에 이르지만 옷이 닳기도 하고 유행 문제도 있어 꾸준히 옷을 받는 게 중요하다. 이 때문에 정장업체와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많은 정장 회사들이 재고가 생기면 폐기하거나 아울렛으로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들 기업이 열린 옷장과 연결되면 좋겠다"고 했다. "의류 폐기물 문제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의류 기업들이 열린옷장과 만나면 버려지는 정장도 줄고 그 옷을 입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령층의 방문도 늘고 있어 다양한 정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시중에서 사이즈 맞는 양복을 구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데이터 기반으로 맞춤 정장의 제작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헛걸음하시는 분들이 없도록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김 대표는 "종종 '면접 잘 볼 수 있을 거 같아요'라는 한마디에 힘이 난다"며 "임대료 등 현실의 무게는 무겁지만 이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 어렵다고 생각 안 한다"고 했다. 그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사는 사람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누구라도 정장을 입어야 할 때 열린옷장이 떠오르면 좋겠다"며 "언제까지 일할지 잘 모르겠지만 체력이 남아 있는 한 열린옷장 직원으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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