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가 5월17일 발표한 시범사업 계획안을 보면 재진과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비대면진료가 이뤄져야 한다. 의료기관에 처음 방문한 것을 의미하는 초진은 요양기관까지의 거리가 먼 벽지 환자,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등 거동불편자, 감염병 확진 환자를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처방 약 배송도 역시 불법이다. 당정이 제시한 계도기간인 8월30일까지 비대면진료는 합법과 불법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에 놓인다.
당정의 시범사업안에 대해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주체인 비대면진료 업계와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모두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기간 비대면진료를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입을 모은 의약계는 시범사업안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비대면진료 업계 또한 '사형선고'로 규정했다.
쟁점은 초진과 재진 항목이다. 의약계의 주장은 과거 원격진료 논의 때와 비슷하다. 비대면진료를 활용한 초진 자체가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병명을 모르는 채로 비대면진료를 진행할 경우 전통적인 대면진료와 비교해 동등한 수준의 효과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비대면진료 업계는 시범사업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환자가 동일한 질환으로 30일 이내에 비대면진료를 받아야 '재진'으로 인정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환자가 재진인지 초진인지 판별할 수 있는 의료정보는 병원에만 있다면서 비대면진료 플랫폼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비대면진료를 통해 재진을 인정받으려면 환자가 플랫폼에 입증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편익성 차원에서 플랫폼의 역할과 기능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5월24일 대통령실 앞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안 전면 재검토 요청'을 외친 이유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2월24일 이후 지난해까지 3661만건의 비대면진료가 이뤄졌다. 2925만건(79.8%)이 코로나19 재택치료를 통해 이뤄진 비대면진료였다. 나머지 736만건은 고혈압과 당뇨 등 기저질환자 329만명이 활용한 비대면진료였다. 감염병이라는 특이한 상황을 제외한 실질적인 비대면진료 수요다. 이들 중 40%는 병원에 갈 수 없어 지팡이 대신 핸드폰을 든 60세 이상 어르신이다.
비대면진료 업계는 비대면진료를 팬데믹 기간처럼 한시적 허용 수준으로 유지해 달라고 외친다. 이들의 주장은 의약계의 벽 앞에서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이다.
특히 초고령사회가 임박한 상황에서 노인들의 의료 접근성과 편익은 보장돼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거 사례를 되짚어 봐도 운동장은 이미 의약계로 기울어졌다. 정부는 기계적인 양비양시(兩非兩是)론을 벗고 환자를 중심에 둔 한국판 비대면진료를 고민해야 한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