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S는 한반도 평화 셈법을 알아보기 위해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와 지난 7일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은 쿨릭 대사. /사진=장동규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 러 대사 "우크라 전쟁, 러시아 용납 못한 서방의 작품"(우크라이나 전쟁)
② 러시아 대사 "한화·루블화 결제시스템 도입하자"(한·러 경제 협력)
③러 대사 "제재로 북한 이길 수 있단 생각은 환상"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40차례 70여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은 줄곧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인 '담대한 구상'을 '어리석음의 극치'로 폄하하며 호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올들어서만 10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런 가운데 주목받는 국가가 있다. 바로 러시아다. 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동의 없이 대북 제재를 추가로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머니S는 러시아가 생각하는 한반도 평화 셈법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7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쿨릭 대사는 "비핵화에 앞서 남·북 대결구도를 공생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지난 2018년 싱가포르 선언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선 비핵화·후 지원 로드맵 호응 안할 것"
사진은 지난해 10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지도하에 실시된 전술핵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 중 발사되는 미사일. /사진=뉴스1
-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선언한 선언문을 읽어보면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싱가포르 선언이 현실화됐다면 오늘날 한반도는 평화로웠을 것이다. 이밖에도 지난 2018년은 가장 중요한 9·19 남북군사합의서가 채택된 해다. 지난 2018년 9월만 해도 한반도는 오랜 교착 이후 드디어 올바른 길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미국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싱가포르 선언에 담긴 정신을 포기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미국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자신들이 잘 사용하는 전략인 북한의 '선 비핵화' 원칙을 다시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는 동맹국인 미국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다. 북한은 미국이 싱가포르 선언을 포기한 것을 보고 긴장 고조를 택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이 남·북 긴장 고조의 원인이 아니다. 긴장 고조는 지난 2019년에 시작됐다. 문 정부 기간인 지난 2020년 북한은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물론 긴장은 지난해 들어서 격화됐다. 한·미가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확장억제에 핵 요소를 추가하는 등 압박이 강화됐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북한도 미사일 개발을 가속하고 있으며 대형 발사포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발사하는 상황이다. 남·북 사이 다시 한번 군비경쟁이 시작된 것 같다.


- 대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북핵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란핵합의(JCPOA)와 같은 포괄적인 공동행동계획인가, 아니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인가.

▶북핵 해결에는 둘다 적합하지 않다. 둘다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은 구상이다. 우선 한반도는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 조선이라는 한 국가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리됐다. 그냥 분리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대결적인 성격의 사회·정치 체제를 가진 두 국가로 분리됐다. '대결적'이라는 점이 각별히 중요하다. 한반도 비핵화보다 이러한 대결적인 사회체제를 가진 남·북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의미 없다. 한반도 문제에서 가장 해결이 시급한 것은 군사 분야가 아닌 정치 분야다. 지난 2018년 싱가포르 선언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이러한 맥락을 정확히 짚었다는 점이다.

- 싱가포르 선언에 담긴 '북미의 새로운 관계 수립'을 언급한 것인가.

▶그렇다. 싱가포르 합의를 보면 군사분야 외에도 정치적인 문제를 다룬다. 싱가포르 합의는 러시아와 중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한반도 로드맵과도 상당히 유사하다. 구체적으로 싱가포르 합의에는 3가지 주요 내용이 담겼다. 비핵화는 첫번째가 아닌 세번째로 언급된다. 김정은 총비서가 미사일과 핵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본인의 정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북한이 미사일과 핵을 포기하도록 하고 싶으면 현 북한 정권에 대한 충분한 안전보장을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정책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경제적인 보상을 한다는 다소 애매한 약속을 하는 셈이다. 현실성이 없다.
"제재와 강압으론 북한 못 이겨"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8년 6월12일(현지시각) 싱가포르에서 악수하는 모습. /사진=로이터
- 최근 남·북 갈등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한·미·일 협력이 강화하면서 3국이 밀착 행보를 보이는 것도 긴장을 고조시킨다. 한·미·일 보도자료나 공동성명만 봐도 3국이 북한에 대한 대응을 전제로 협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사항이 있다. 문재인 정부도 어느 정도 언급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한다. 한·미가 북한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면 북한 입장에선 (북한) 정권 파괴를 목표로 한다는 인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북한 입장에선 미사일과 핵프로그램을 가동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기는 셈이다. 한반도 문제를 정치·외교 수단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현재 협상 테이블에서 빠졌다. 이에 대한 책임은 결국 미국 측에 있다. 북한과의 안보보장 관련 대화를 거부하는 쪽은 미국이다. 북한은 지난 2018년에도 미국과 관계 정상화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북한의 신호를 외면했다. 북한이 협상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명할 때마다 미국은 이를 '북한이 힘이 빠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압박을 되레 더욱 강화했다. 현재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가 열려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북한의 일방적인 비핵화와 이에 따른 사회·정치 체제 교체에 관한 협상으로 들린다. 제재와 강압을 통해 북한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 앞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함으로써 핵무장을 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윤석열 정부도 미국과 핵협의그룹을 창설하는 대신 독자적 핵무장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문 정부의 대북정책과 윤 정부의 담대한 구상 모두 북한 측에 제재 완화를 제안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호응하지 않는다. 북한이 원하는 안전보장안이 무엇인가.

▶러시아도 북한의 마음을 완벽히 알 수는 없다. 북한만이 '적절한' 안전보장안을 알고 있다. 다만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에 대한 적대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모스크바에서 아시아 1국장을 역임할 당시 북한 관료들에게 '북한이 말하는 적대적인 정책이 무엇인지' 물어보곤 했다. 하지만 단 한번도 답변 받은 적이 없다. 다만 한국 정치권에서 자주 언급되는 '독일식 통일'에 대해서는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서독·동독, 흡수통일… 과연 이상적인가"
사진은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 /사진=장동규 기자
- 독일식 통일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인가.
▶한국이 독일의 사례를 통일 모델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독일 통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것이다. 북한도 이를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 측에선 한국인들이 독일식 통일을 언급하면 "흡수통일을 원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독일 문제가 어느 정도 한반도 문제와 비슷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독일 통일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사람들은 흔히 지난 1990년 독일 통일만 언급한다. 하지만 서독일과 동독일은 20여년동안 교류 없이 공존했다. 지난 1972년이 돼서야 동독과 서독은 기본조약을 체결하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유럽에서는 소련과 유럽 간의 긴장 완화 프로세스가 시작됐다. 그 결과로 지난 1975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헬싱키 협약'이 체결됐다. 유럽 내 긴장이 완화된 시점이다. 이처럼 독일식 문제 해결에는 크게 두가지 부분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주로 1990년대 흡수식 통일만 언급하는 것 같다. 지난 1970년대 체결된 수많은 협정과 긴장완화 프로세스는 언급하지 않는다.

- 문재인 대통령은 '베를린 선언'을 통해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대사는 한국의 정책이 흡수통일을 지향한다고 생각하는가.

▶한번 생각해보자. 문 대통령이 베를린까지 가서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며 독일 사례를 언급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동독은 서독에 흡수통일됐다. 이해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2014년 드레스덴 연설도 그렇다. 또 독일이 나온다.

- 마지막으로 머니S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오늘 인터뷰는 현장에서 묻고 답하는 자연스러운 형식으로 진행됐다. 러시아는 이처럼 개방된 국가다. 러시아의 소중한 협력국인 한국과 협력이 지속되길 희망한다. 또 한국 독자들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 양측(러시아·우크라이나)의 입장에 귀 기울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