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은옥 디자인 기자
◆기사 게재 순서
(1) 생숙 준주택 인정 안돼… 이행강제금만 유예되나
(2) [체험기] 생숙 청약금 '100만원', 입금할 뻔했다
(3) [인터뷰] "내 집 마련 막차 탔다 국가에 버림받아"
"힐스테이트 라군인테라스(3735실) 별내역 아이파크 스위트(1100실) 웅천 자이 더스위트(584실) 모두 '생활숙박시설'(이하 '생숙')입니다. 유명 아파트 브랜드와 똑같은 이름을 짓고 안산, 남양주 주택가 같은 곳에 신라호텔 객실 수(464실)의 몇 배가 되는 건물을 팔아놓고 호텔인 거 알면서 투자했다니요."
김인수씨(가명·40)는 2016년 부산 해운대구의 생숙 분양권을 16억원대에 샀다. 이때도 무주택자 신분이었고 현재도 해당 생숙 외에 보유 부동산이 없는 그는 30대 초반이던 당시에 아파트를 포함한 집값이 무섭게 치솟자 내 집 마련의 막차를 탑승할 각오로 생숙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김씨는 "그 당시 아파트값이 너무 비싸기도 했지만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부채상환비율(DTI) 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규제로 대출이 안됐고 자금조달계획서도 써야 했다"면서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르고 또 오르고 하던 때이니 큰 결심을 하고 가진 모든 돈과 30년 만기 상가담보대출 80%를 받아 샀다"고 설명했다.
한 달 이자만 300만원 이상씩 내고 있는 김씨는 오는 10월14일 생숙 이행강제금이 부과되면 은행으로부터 대출 상환 압력까지 받을까봐 불안에 떨고 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김씨 주변에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생숙을 분양받은 이들도 적지 않다. 당시엔 생숙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품들이 있어 분양 홍보에 이용됐고 실제 피해자 중 주담대를 받은 사람이 많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명백한 행정 착오다.
지난 9월19일 생숙 투자 피해자 1500여명이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 모여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피해자 대표 김씨는 집회 종료 후 국토부 해당 업무의 책임자인 이진철 건축정책과장을 만나 1시간 넘는 면담을 했지만 성과와 진전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얼마 전 국회에서 '다 알고 들어가 놓고 버티면 바꿔줄 것이란 잘못된 선례를 남겨선 안된다'는 발언을 했는데 이건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못된 말이었다"면서 "오늘 여기 나온 분 중 생숙에 실거주하지 않는 분이 없다. 공무원들의 행정 권위주의적인 태도에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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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가세요, 공정위 가세요"… 피해자 기만한 정부━
생숙 피해자 단체인 전국레지던스연합회에 따르면 전체 생숙 10만여실 가운데 실거주자는 1만2000실 규모로 파악된다. 주거형 오피스텔로 용도변경된 경우는 1170실로 전체 생숙의 1.1%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 역시 통계 착오가 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그는 "생숙 중 분양형호텔로 운영되던 곳이 코로나 때 영업활동을 못하게 되자 건물 통째로 대수선을 해 오피스텔 용도변경을 한 게 1.1%의 절반이고 5~6층 소형 건물 중 용도변경 후 재분양한 케이스가 많다"며 "실거주자가 구제된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빠져나가고 싶어도 빠져나갈 수가 없는 생숙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가적으로 대량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숙박업 신고를 권고한 데 대해 김씨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례가 적지 않고 이는 또 다른 불법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생숙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돼 당초 숙박업 용도로 설계·건축함에 따라 원룸 호텔과 유사한 형태를 띠기도 한다. 문제의 생숙은 아파트형 평면, 즉 방과 거실이 분리돼 있고 주방·욕실 등이 쉽게 말해 집처럼 설계돼 호텔로 운영 시 적정 가격에 임대해 수익을 낼 수가 없는 구조다.
김씨는 "애초부터 지은 자들이 집으로 팔 생각이었고 규제를 피할 목적으로 만든 생숙인데 건설사를 처벌하지 않고 계약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 정부 책임은 없느냐고 따지니 '사인 간 거래는 공정거래위원회로 가라는 답변을 들었다'며 정말 무책임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말"이라고 성토했다.
허위로 숙박업을 신고하도록 하는 편법까지 횡행하고 있다. 그는 "호텔 운영업체에 관리비를 내고 실거주해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정보들이 공유되고 있다"면서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 시점에선 불법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피해자가 결국 범법자가 되도록 내모는 상황에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이라고 분개했다.
만약 숙박업 신고를 하게 되면 생숙 사태는 보건복지부 소관으로 이관되게 된다. 복지부가 숙박업 신고를 명시한 '공중위생관리법' 담당 부처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금까지 해온 것을 다시 복지부를 상대로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빠진다"면서 "복지부에 민원 제기를 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가정해서 행정 처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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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피해자 구제 없고 투기꾼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
가짜로 숙박업을 등록해놓고 주거하거나 다른 형태로 사용하는 이들은 어떻게든 현재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겠지만 주거시설로 인정받아 세금을 내겠다고 주장하면서 자녀들을 인근의 학교에 진학시킨 이들은 빠져나갈 방법이 없게 됐다. 김씨는 "돈 벌려고 투기 목적으로 산 게 아니냐는 시각들이 있는 것을 안다"며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정작 피해는 지방정부가 전입신고를 허가해준 선량한 투자자가 당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처럼 거주 목적으로 한 채를 가졌거나 젊은 시절 성실히 경제활동을 하고 은퇴 후에 여유로운 생활을 위해 생숙을 선택한 이들이 가장 먼저 처벌을 받게 된 것"이라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2015~2017년 생숙 투자가 유행하던 시기에 각종 분양 광고에는 '숙박'이란 명시가 없었고 '서비스드 레지던스' '신개념 주거시설' 등의 표현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국토부 정책 자료에도 등장한 용어다. 피해자 단체는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정부 책임이 없느냐는 질문을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김씨는 "끝내 받은 국토부 공무원의 답변이 '서비스드 레지던스라고 표현했지 '건축법'상 생활숙박시설이라는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법령 안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니었다. 검토 과정이었을 것이다'라고 해 무책임함의 극치를 느꼈다"고 토로했다.
당장의 이행강제금 면제가 연장될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이는 실효성이 낮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김씨는 "불법 건축물로 낙인찍힌 부동산을 살 사람이 있을까. 50년 60년 남은 평생을 이 곳에서 살아야 하나 등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 "사고 팔 수 있어야 재산인데 재산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그는 "주거형 오피스텔처럼 준주택으로 분류해 종합부동산세도 내고 팔 때는 양도소득세도 낼 것이니 주거권을 인정해달라는 게 우리의 얘기"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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