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롯데월드타워 건립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롯데그룹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1층에서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4기 추도식이 열렸다. 기일을 하루 앞둔 시점이다. 신 명예회장은 2020년 1월19일 99세의 일기로 영면했다.
"외국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세계 최고의 그 무엇이 있어야 외국 사람들이 즐기러 올 것 아닙니까."
추도식이 열린 롯데월드타워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그의 명언과 퍽 어울리는 장소다. 기업인으로서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자 애썼던 신 명예회장의 업적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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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으로 시작해 종합제과 기업으로 우뚝... 편견과 차별을 이겨낸 값진 성공━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혈혈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굴지의 종합제과 기업을 일구어냈다. /사진=롯데그룹
1948년 롯데를 설립한 그는 초기에 껌이라는 단일 품목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초콜릿, 캔디 등으로 분야를 넓히며 불과 20여년 만에 종합제과업체로 우뚝 선다. 가진 것 없는 외국인 신분으로 편견과 차별을 이겨내고 사업을 성공시킨 것이다.
신 명예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던 혁신가였다. 그를 움직이는 동력은 고국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이었다. 1970년대에 호텔 건설을 제안받았을 때 흔쾌히 사업을 추진한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과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호텔 분야는 성공이 불투명한 사업이었지만 신 명예회장은 1000실 규모의 호텔에 더해 백화점과 오피스타운 동시 건설이라는 전무후무한 복합개발을 구상했다. 1970년대 일류 호텔의 규모가 300실 정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계획은 엄청난 파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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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한국인"… 마지막까지 대한민국 주민등록 유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된 123층 롯데월드타워도 신 명예회장의 혁신적 사고와 추진력을 바탕으로 건립됐다. 소공동 롯데타운, 잠실 롯데월드, 롯데월드타워는 '가족 모두가 함께 즐겁게 지낼 행복한 공간'을 꿈꾼 신격호 회장 특유의 복합개발 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신 명예회장의 근본을 이루는 정서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일본에서 성공한 한국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귀화하지 않고 끝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했다. 그로 인해 일본에서 겪은 고난이나 불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본명: 신격호, 국적: 대한민국'이라고 뚜렷이 새겨진 주민등록을 끝까지 유지했고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서 기억되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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