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3월14일 서태지와 아이들이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토토즐)에 출연하면서 세상 밖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은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앨범. /사진=스타뉴스
1992년 3월14일. 긴장한 모습이 뚜렷한 세 명의 남자가 처음으로 TV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이 가요계는 물론 문화계 전반을 지배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둔 한국은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랐다. 가요계에는 백두산·부활·시나위 등 헤비메탈 밴드가 대거 등장했고 이문세·이영훈·유재하로 이어지는 발라드 가수가 가요계를 주름잡기 시작했다.
서태지(본명 정현철)는 1990년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던 중 박남정의 공연을 보고 랩과 힙합, 댄스 뮤직에 빠져들었다. 그는 춤을 배우기 위해 양현석을 만났고 의병 제대를 마친 양현석과 함께 팀을 결성했다. 당시 바비 브라운의 영향으로 1명의 가수와 2명의 댄서가 무대에 서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에 1992년 2월 데뷔를 불과 한 달 앞두고 김완선·박남정 등 댄스팀을 거친 이주노를 추가 영입했다.
1992년 3월14일 서태지와 아이들은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해 데뷔곡 '난 알아요'를 선보였다. 분홍, 초록, 회색 등 각양각색의 정장을 차려입은 이들은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이 무대는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훗날 이 데뷔 무대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
'10점 만점에 7.8점'… 앨범은 170만장━
1992년 4월11일 서태지와 아이들이 MBC '특종! TV연예' 신인 발굴 코너에 출연하면서 10대 청소년들의 문화 대통령으로 자리잡는다. 사진은 당시 특종! TV연예에서 심사평을 기다리는 서태지와 아이들. /사진=뉴시스(월스트리트저널 웹사이트)
하지만 현장 방청객과 프로그램을 시청한 10대 청소년의 평가는 달랐다. 당시 X세대로 불린 10~20대 젊은층은 이들의 무대에 환호했다. 발라드로 도배된 기존 한국 가요계와는 다른 신선함을 느낀 것이다. 기성세대는 "이게 노래야"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X세대는 "우리가 기다리던 노래"라고 소리 질렀다.
다음날인 4월12일 청소년이 사랑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울려퍼진 '난 알아요'는 중·고등학생 등 10대가 모이는 장소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10대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선보인 회오리춤 열풍에 빠져들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후 노래 전체가 랩으로 이뤄진 '환상 속의 그대'를 발표하며 연이은 히트를 기록했다. 랩과 힙합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에 한국어는 랩에 적합하지 않다는 통념을 완벽하게 부순 것이다. '난 알아요' '환상 속의 그대' 등이 담긴 1집 앨범은 170만장을 판매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들은 데뷔 첫해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휩쓸었다.
1집 활동으로 가요계를 석권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돌연 자취를 감췄다. 당시엔 가수가 앨범 활동이 끝난 후 휴식기에 돌입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생소한 행태였다. 대중 앞에서 사라졌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수개월이 흐른 후 2집 앨범으로 컴백했다.
그들을 애타게 기다렸던 10대들은 학교 수업 도중 담을 넘어 레코드점으로 달려갈 정도로 환호했다. '활동→휴식→제작→컴백'으로 이어지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활동 방식이 현 아이돌 그룹의 활동 시스템을 만들어낸 셈이다.
━
4년 만에 막을 내린 '서태지 신화'… 여파는 여전━
2016년 1월31일 서태지와 아이들은 돌연 은퇴를 선언하면서 4년 만에 신화의 막을 내렸다. 사진은 지난 2017년 서태지의 데뷔 25주년 기념 콘서트. /사진=서태지컴퍼니
일각에서는 노래가 지나치게 실험적이라며 의문을 갖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2집 앨범은 220만장이 판매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 역사상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 2집 무대의 특징인 힙합 패션은 1990년대 초를 대표하는 패션 코드로 자리잡았다.
2집까지 대박을 터뜨린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4년 8월10일 공교육 등 사회적 비판을 담은 '교실이데아', 통일을 염원하는 '발해를 꿈꾸며' 등을 수록한 3집 앨범을 공개했다. 특히 '교실이데아'는 10대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받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95년 10월5일 서태지와 아이들은 4집 앨범을 발매했다. 타이틀 곡은 사회적 파급력이 상당했던 '컴백홈'(Come Back Home). 당시 노래를 들은 가출 청소년들이 방황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일화는 지금까지 전해질 정도로 유명하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은 가출 청소년 귀가 공익광고까지 찍었다.
그리고 1996년 1월31일. 그 누구도 예상 못한 소식이 전해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유림회관에서 그룹 해체를 발표한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팬은 물론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조윤진 역을 연기한 민도희가 식음을 전폐하는 장면이 연출될 정도로 수많은 팬들이 눈물을 흘렸다.
K팝의 시초를 만들며 가요계의 한 획을 그은 서태지와 아이들. 그들은 마치 4년 동안 꿈을 꾼 듯 완벽하게 세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은 20세기 아이콘에 머물러 있지 않다. 가요계를 넘어 대중문화계와 패션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그들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다방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