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소비자물가동향에서 사과가 전년 동월 대비 88.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사과 가격에서 유통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을 62.6%로 분석했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사과를 고르고 있다. /사진=뉴스1
◆글쓰는 순서
①'88.2% 상승' 역대 최고로 뛴 사과값, 이면 들여다보니
②"사과값 5000원에 유통비는 3130원"… 도매상만 배불리는 '소비지 경매'
③"금사과인데 돈 번 농민 없다"… 떠오르는 '온라인 도매'


따뜻한 봄에도 장바구니에는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1% 올라 두 달째 3%대 상승 폭이 이어졌다.
통계청이 지난 2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94(기준년도 2020년을 100으로 계산)로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정부에서 가장 많이 신경 쓰고 있는 사과는 같은 기간 88.2%로 다시 올랐고 배 역시 87.8%의 상승률을 보였다. 사과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80년 1월, 배는 1975년 1월 이래 가장 큰 상승률이다. 귤(68.4%) 토마토(36.1%) 파(23.4%) 등도 크게 뛰었다.

물가 중에서도 농산물 가격이 지속해서 오르자 일각에서는 "유통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수백억이 아니라 수천억원을 쏟아부어도 물가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 사과와 배 값이 유난히 뛴 것은 지난해 탄저병과 냉해 등으로 인한 작황 부진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전년비 사과 생산량은 30%가량 줄었다. 다만 사과값이 올라도 농민들의 소득은 크게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일당이 6만~7만원이던 외국인 인건비가 13만원으로 올랐고 유가, 장비 가격이 모두 치솟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사과값은 유통 과정에서 통상 생산자 가격의 3배 이상 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조사에 따르면 2022년 사과의 생산자 판매 가격은 kg당 2200원이었으나 공판장, 도매시장 등을 거치며 소비자에게는 6000원대에 판매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사과 가격에서 유통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을 62.6%로 분석했다. 소비자가 사과 1개를 5000원에 구입한다면 그중 3130원이 유통비용이라는 뜻이다.


한국과 일본 농산물만 유난히 비싼 이유
미국과 프랑스는 상품의 수집과 분산을 모두 시장도매인이 담당하는 것에 반해(그림 위) 한국은 수집과 분산을 각각 다른 상인이 맡는 이원적 거래 구조를 띠고 있다. /그래픽=한국농촌경제연구원
기본적으로 유통 구조는 출하자(생산자)→도매상→소매상→소비자로 되어 있다. 이를 일원적 거래 구조라 한다. 도매시장에서 매수와 위탁, 대형 유통업체 및 소매상 연결을 모두 담당하는 방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21년 발행한 '농수산물도매시장 주요 쟁점과 정책적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중간 단계에서 도매시장법인과 중간도매상(중도매인)으로 나뉘어 유통 구조가 좀 더 복잡하다. 농산물 수집은 도매시장법인이 하고 소매상이나 유통업체 연결은 중도매인이 하는 식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수수료가 발생한다.

미국과 프랑스는 중간 상인이 도매사업자로 일원화되어 있는 데 반해 한국과 일본은 수집과 분산을 담당하는 중간 상인이 도매시장법인, 중도매인, 시장도매인, 매매참가인 등으로 다양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럽에 가면 다른 물가는 높아도 농산물은 저렴하지 않느냐"면서 "한국과 일본만 유난히 농산물이 비싼데 그 이유는 우리 유통 구조가 과거 일본의 사례를 그대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러한 구조가 낙후됐다는 것을 파악하고 2000년대 이후 장기간에 걸쳐 시스템을 개선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구시대 (유통구조)에 머물러 있다"고 털어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보고서는 가격 결정 방식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 출하 며칠 전, 혹은 몇 달 전부터 물량과 가격을 미리 협상하는 예약형 상대매매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가락시장 등 소비지에서 경매를 통해 가격이 결정된다. 대형마트 등에서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예약형 상대매매를 도입했지만 이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시중에 유통되는 물량의 80%가 소비지 경매를 통해 가격을 결정하고 대형마트 역시 이를 기준으로 상품을 매입한다.

도매법인 입장에서는 경매시장에서 가격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이는 곧 가격변동성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적으면 내리는 경매제 특성상 가격 안정은커녕 폭등과 폭락이 일어나기 쉽다. 동시에 생산자보다는 중간상인이 이득을 취하기 쉬운 구조라는 뜻이기도 하다. 경매를 대행하는 도매시장법인은 이런 식으로 상품을 판매하고 4~7%의 수수료를 받는다.

불공정 행위 판치는 경매 시장… 민생 안정은 어디에
전국 32개 공영도매시장이 취급하는 총거래량의 40%가 가락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 사진은 가락시장 과일 경매 현장. /사진=뉴스1
업계 관계자들은 경매 시장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불공정 행위도 문제점으로 꼽는다.
현재 전국에서 가장 유통량이 많은 곳은 가락시장이다. 서울특별시농수산식품공사가 밝힌 가락시장의 거래 규모는 연간 230여만톤, 하루 7500여톤이다. 전국 32개 공영도매시장이 취급하는 총거래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가락시장은 오래전부터 단 6곳의 도매시장법인의 경매를 통해서만 유통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농업과 직접 관련 있는 곳은 농협공판장뿐이라는 점도 지속해서 지적되어 온 부분이다. 나머지는 고려제강(서울청과 인수), 태평양개발(중앙청과), 신라교역(동화청과), 코리아홀딩스(한국청과), 호반그룹(대아청과) 등 농업과 전혀 상관이 없는 기업이다.

중도매인들은 이 중 하나의 법인에 속해 경매에 참여한 뒤 낙찰받은 상품을 마트나 소매점에 납품한다. 6개 독점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 간의 유착 관계도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보고서는 "경매사(도매시장법인)가 특정 중도매인에게 낮은 가격에 입찰시켜 주거나 좋은 품질의 상품을 독점적으로 낙찰받게 해주고 경락 가격을 조작하는 등 불공정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어 "2019년 9월 거래된 주요 13개 품목의 전체 거래 중 단독 응찰이 1.79%, 경매 개시 뒤 3초 이내 낙찰 건수가 33.28%로 나타나 경매 공정성에 대한 의혹이 고조됐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그들이 농민이나 기업의 이윤, 물가 안정 중에 무엇을 먼저 챙길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한했다. 그러면서 "이커머스가 발달한 요즘은 선진국형 일원적 거래 또는 농민→소비자 (직거래)구조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근원적으로 물가를 낮추려면 불필요한 중간 과정으로 유통 비용이 늘어나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