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경기 수원시 한 버스정류장에서 시민들이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서지영 기자
"정류장에 도착해서 보낸 버스만 6대예요."
지난 18일 오전 7시30분 경기 수원시 한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이지현씨(여·27)는 "30분째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평일마다 서울행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는 직장인 이씨는 광역버스 입석금지 시행 이후 출근길이 '지옥길'이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입석 금지 이후로 출근 시간이 30분가량 늘어났다"며 "출근 스트레스 탓에 아침마다 예민해진다"고 토로했다.


지난 18일 경기 수원시 한 버스정류장에서 만석인 버스가 정차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고 있다. /사진=서지영 기자
지난 2022년 11월 경기 광역버스에 입석 승차가 금지되면서 출퇴근길 교통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승객이 몰리는 출근 시간대에는 대부분의 버스가 만석인 채로 도착하기 때문에 무정차로 정류장을 통과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에 경기 주민들은 아침 시간 30분 이상을 길바닥에 버리고 있다.
기자가 서울행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30분. 일찍 왔다고 생각했으나 버스 대기줄은 이미 길게 늘어선 상태. 줄을 선 시민들은 만석인 버스가 그냥 지나가자 멍하게 쳐다보거나 한숨을 푹 쉬는 모습이었다.

지난 18일 오전 버스 앱에서 7780번을 검색한 모습. 운행 중인 버스의 잔여석이 모두 0석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서지영 기자
7시45분. 줄이 꽤 줄어들어 '그래도 다음 차만 타면 지각하진 않겠다'고 안심했다. 그러나 다음에 도착한 버스는 야속하게도 기자 바로 앞에서 만석이 되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지각은 뻔한 상황. 회사에 "일찍 나왔지만 버스 자리가 없었다"고 말해볼까. "그럼 더 일찍 나왔어야지"라는 상사의 말이 들려오는 듯해 이내 휴대전화를 내려 놓았다.

이날 7시30분부터 줄을 선 기자가 버스에 탑승한 시간은 7시55분. 그 사이에 눈 앞에서 보낸 버스만 5대였다. 결국 기자는 회사에 3분 지각했다.

지난 2022년 이태원 참사 이후 버스회사들은 안전을 이유로 광역버스 입석금지를 시행했다. 이에 국토교통부가 버스를 증차해 시민 불편을 해소하겠다고 나섰지만 시민들은 "그정도로는 어림도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씨는 "버스가 많이 다녀도 (만차여서) 정류장에 멈추지 않으니 아무 소용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버스가 많아지니 출근길 도로 정체만 심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버스 '오픈런'을 아시나요
지난 18일 경기 수원시 한 버스정류장에서 시민들이 오랜 기다림 끝에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서지영 기자
이러한 출퇴근 대란에 '버스 오픈런'이 등장했다.
수원시 정자동에 거주하는 장영진씨(남·28)는 아침마다 집 앞 정류장 대신 도보 15분 거리에 위치한 다른 정류장으로 향한다. 장씨는 "집에서도 멀고 방향도 반대지만 출발지에서 가까운 정류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출근 시간을 맞출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준형씨(남·30)도 "가까운 정류장에서 20~30분씩 발이 묶이느니 여기서 타는 게 낫다"고 토로했다.

버스 라운지, 예약버스 내놨지만…
지난 18일 사당역 인근 버스 라운지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사진=서지영 기자
광역버스 입석 금지에 따른 시민의 불편이 가중되자 여러 대책이 등장했다. 지난 2020년 경기도는 버스를 편하게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며 정류장 근처에 버스 라운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시민은 "버스 대기줄을 서야 타는데 누가 거기(버스 라운지)서 한가하게 기다리냐"며 "버스를 타본 적이 없는 사람이 제안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또 다른 시민도 "라운지를 지을 돈으로 버스라도 한 대 더 늘려라"라고 쏘아붙였다.

오전 8시30분 기자가 방문한 사당역 인근 버스라운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닫힌 문에는 평일 운영시간이 10시부터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대다수의 시민은 출근 시간대에는 이용조차 불가한 셈이다.

버스 좌석을 미리 맡을 수 있는 '예약 버스'도 호응을 얻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예약이 수강신청에 버금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18일 기자가 광역버스 예약 애플리케이션(앱) '미리'의 예약 내역을 확인한 결과 이용률이 높은 노선(7780·7770·3003)은 이날 출근 시간대 전석 매진된 상태였다. 예약에 실패한 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정류장에서 30분가량 대기해야 하는 셈이다.

"출퇴근 시간 단축, 저출산·집값 안정 등 사회적 해결 실마리 될 것"
시민들은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출근길에서 만난 한 30대 남성은 "버스만 증차할 것이 아니라 버스 전용도로를 늘리고 지하철 배차를 조정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출퇴근 시간 단축은 저출산과 집값 안정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경기도에 살면 인생의 3분의1을 도로에서 보낸다"라는 말이 '밈'이 됐다. 또 "경기도민은 차 없으면 연애와 결혼을 못한다"란 말이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지자체와 당국, 교통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진지한 대책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