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온라인 사이트에서 명령어 자동 반복 입력 프로그램 ‘매크로’를 이용해 프로야구 관람권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웃돈을 얹어 판매한 암표상 일당이 검거됐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이미지투데이
온라인 암표 거래가 활개치면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티켓베이에는 지드래곤 콘서트 티켓이 44만원부터 많게는 1000만원까지 거래되기도 했다.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웃돈을 취득하는 암표상의 수법은 더욱 지능적이고 악랄해졌다.
얼굴 없는 암표상, 온라인서 기승
명령어 자동 반복 입력 프로그램 '매크로'를 이용해 프로야구 관람권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웃돈을 얹어 판매한 암표상 일당이 지난 20일 검거됐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입장권 210매와 트로트 가수 콘서트 입장권 19매를 판매해 6400만원 상당을 취득했다. 1980~1990년대 야구장 앞에서 표를 팔던 암표상과 달리 현대의 암표상은 온라인으로 넘어와 그 실체를 숨기고 있다.

지난해 8월까지 프로스포츠 암표 신고센터에 접수된 암표 거래 건수는 5만1405건으로 2020년(6237건)의 8배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암표 모니터링센터 통계에 따르면 공연 분야 암표 신고 건수는 ▲2020년 359건 ▲2021년 785건 ▲2022건 4224건으로 꾸준히 증가세다.
암표 거래는 정상 가격으로 티켓을 살 수 있는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하고 시장 질서를 저해하는 불공정 행위다. 구매자에게 티켓값만 받고 잠적하거나 가짜 티켓을 보내는 등 사기 행위까지 더해져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판치는 암표상은 적발하기 어려울뿐더러 처벌도 약해 악순환은 반복된다.
야구팬 '신분제'… 암표 거래 부추기는 사전예매 제도
프로야구계에도 온라인 암표 거래가 횡행한다. 지난달 23일 개막한 2025 시즌 프로야구는 KBO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개막 시리즈 두 경기가 전 구장에서 매진됐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을 방불케 하는 열기에 야구팬들의 예매가 더욱 어려워졌다. 티켓베이에 올라온 지난 28~30일 티켓 판매 글은 400여 건이 넘었다. 특히 30일 경기의 표 1장당 가격은 최대 60만원으로 치솟기도 했다. 정가의 10배를 웃도는 터무니 없는 가격이지만 암표상은 팬의 심리를 악용해 계속해서 가격을 불린다.
대구경찰청은 19일 올해 프로야구 개막에 따른 암표 행위를 단속하기 위한 전담수사팀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5 신한 SOL 뱅크 KBO 리그' SSG 랜더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시범경기. /사진=뉴스1
야구팬 박모씨(25·대구 달서구)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티켓을 구하는 게 지금만큼 어렵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평일에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경기를 위해 온라인으로 암표를 거래한 적도 있다. 박씨는 "정가가 3만원이었는데 암표는 그 3배인 9만원에 거래했다"며 "가격이 비쌌지만 경기를 보고 싶은 마음에 어쩔 수 없이 구매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 구단들의 때아닌 유료 멤버십 제도가 뭇매를 맞고 있다. 구단은 유료 멤버십에 가입한 관중만 먼저 예매할 수 있는 '선예매 제도'를 운영해왔다. 올 시즌부터는 유료 멤버십 내에서도 등급을 세분화해 최대 한 시간 단위로 예매 시간을 나누는 '선선선예매 제도'까지 도입했다.

이 같은 제도는 횡행하는 암표 거래에 오히려 기름을 부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멤버십 권한으로 인기 좌석을 예매한 뒤 웃돈을 얹어 되파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실제로 선예매 때문에 멤버십에 가입한 친구가 많다"며 "경기를 보기 위해 멤버십 가입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각 구단은 티켓 판매처와 공조해 아이디당 구매 횟수와 수량을 제한하고 매크로 의심 아이디를 적발하는 경우 차단하는 등 조치하고 있지만 많은 암표 거래상을 색출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비정상적인 리셀가… 그래도 살 사람은 산다?
대중음악 공연계도 오래전부터 암표와의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암표상은 오히려 조직적으로 진화했다. 인기 아이돌 콘서트는 티켓팅 대기 번호가 100만번 대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10만원대 콘서트 티켓이 현재는 1000만원대까지 불어났다. 최모씨(25·대구 달서구)는 콘서트 암표를 구매하기 위해 원가의 3배에서 10배까지 지불한 적 있다.


최씨는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 가는 게 좋은 추억이자 열심히 살아갈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암표라는 것을 알지만 구매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팬의 간절함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암표 거래는 근절돼야 한다"며 "플미 티켓 가격도 점점 올라가 돈 없는 팬들은 구매 시도조차 못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티켓 거래 사이트에서 아이돌 세븐틴 팬미팅 티켓이 1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캡처=X(옛 트위터)
지난달 열린 아이돌 세븐틴의 팬미팅은 조기 매진됐지만 정작 당일에는 빈 좌석이 없지 않았다. 매크로를 이용해 좌석을 대량 구매한 암표상이 리셀가 시세를 유지하고자 표가 팔리지 않아도 취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불이 불가능하더라도 한 좌석만 고액에 팔리면 손해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공연을 준비한 아티스트와 팬 모두에게 피해가 막심하다. 실제로 나모씨(25·서울 성동구)는 콘서트장에서 입장 팔찌를 여러 개 나눠주는 현장을 목격했다. 나씨는 "암표상이 여러 장의 표를 구매해 팬들에게 판매하는 것 같았다"며 "SNS에도 암표 사기 호소 글이 자주 올라온다"고 밝혔다.
'유명무실' 현 제도… 정작 소비자는 사각지대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으로 암표 거래를 단속하고 있지만 실효성 없다는 지적은 줄곧 이어지고 있다. 현재 운동경기와 공연의 입장권을 부정 판매하는 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암표상을 적발해야 처벌할 수 있다.

암표상들은 주로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거래해 적발이 어렵다. 결국 소비자만 사각지대에 노출되고 있다. 2023년 김모씨는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암표 업체에 사기를 당했지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암표 거래와 사기 범죄가 횡행한 데 비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은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씨는 "부정 판매 적발 시 팬클럽 영구정지 등 적극적인 방법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콘서트장에 입장하지 못하게 막는 등 여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씨 역시 "팬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게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암표 근절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건강한 공연 문화를 위해 암표상을 적극적으로 검거하고 이로 인한 문제 역시 근절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한 관계자는 "작년에 매크로 프로그램을 통해 부정거래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 수위를 상향 조정하는 등 법을 개정했지만 현실적으로 완전히 근절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계속해서 법을 개선하고자 연구고 진행하고 또 다른 관련 법안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