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식품류 가격 인상에 우리만큼 저항이 세지 않다. 우리는 라면값 50원만 올라도 정부와 소비자로부터 '물가 인상의 주범'으로 비판받는다. 이러한 반발을 모두 감안하고서라도 가격 인상을 결정하는 건 '최후의 수단'이라는 뜻이다. 기업은 환율과 원부자재 가격, 인건비 등을 모두 계산해 최소 인상 폭을 설정한다."

식품 가격 인상 이슈가 한창일 때 한 식품업계 관계자가 했던 말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들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최근 탄핵 사태에 따른 국정 공백 기간에 가격 인상이 이어졌을 때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이달 초만 해도 라면(오뚜기·팔도), 맥주(오비맥주), 햄버거(롯데리아·노브랜드 버거·KFC) 가격이 올랐다. 정부의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일부 식품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자 '하필이면 이때냐' '기습 인상이다' 등 비판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탄핵 정국으로 혼란한 틈을 타 그동안 정부에서 진정시켜 온 가격을 기습 인상했다는 지적이다.

식품 업계는 원재료 가격과 환율 등 불리해진 대내외적 환경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이른바 가격 인상 도미노 현상을 두고 '터질 게 터졌다'고 한다.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인하했던 가격을 원래대로 되돌린 기업도 있다.

환율과 원재료 가격 상승은 기업들을 지속해 압박해왔다. 2023년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1305.4원, 지난해엔 1365.1원 수준이었으나 최근 국내외 정세 불안과 관세 전쟁 등 영향으로 1470원대를 찍었다. 원재료 가격이 동일하더라도 기업 입장에선 2023년보다 원료 수입 가격이 12.6% 오르는 셈이다.


일부 주요 원재료 가격은 지구 온난화와 병충해 등 영향으로 계속 오르고 있다. 이달 들어 커피(아라비카)의 톤당 평균 가격은 8426.2달러로 전년 동기(4866.4달러) 대비 73.2% 높아졌다. 최근 아메리카노 가격 인상폭은 ▲스타벅스 4.4% ▲투썸플레이스 4.4% ▲메가커피 13.3% ▲컴포즈커피 20.0% 등이다. 원두 가격 증가 폭에 비해 가격 인상 폭은 낮은 수준이다.

정부는 국정 공백에도 기업에게 물가 안정 협조를 구해 왔다. 농식품부 송미령 장관과 박범수 차관이 식품기업 간담회를 열고 물가안정 노력에 동참해달라고 당부하고 있지만 관리가 쉽지 않다. 정부는 주요 원재료 할당관세 적용, 수입 부가가치세 면제, 원료구입 자금 지원 등을 다각적으로 돕고 있다는 입장이나 기업들 입장에서는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본질적으로 물가 안정화를 위해서는 환율, 원재료 가격, 관세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그저 기업에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고 압박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기업들도 가격 인상에 따른 후폭풍을 감안하고서라도 가격을 올리는 것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지 않을까. 조기 대선 이후 컨트롤타워가 생기면 물가 안정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책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