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미래 투자를 통한 경영 전략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열린 창립 56주년 행사에서 기념사를 하던 조 회장.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이 호반그룹의 한진칼 지분율 확대로 경영권 분쟁 우려가 제기됐지만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흔들림 없이 경영 전략 추진에 몰두하고 있다. 조 회장은 기업 결합 마무리 단계인 아시아나항공과의 시너지 창출과 신규 투자 확대를 통한 글로벌 불확실성 타개에 집중할 계획이다.

최근 한진그룹에 경영권 분쟁 우려가 제기된 건 호반그룹이 사모펀드 KCGI로부터 대한항공 지주사 한진칼 지분을 사들인 이후 추가 매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진칼은 대한항공과 진에어 등을 거느린 한진그룹의 지주사다.


호반그룹이 경영권 분쟁 우려가 제기된 한진칼 지분 매입 목적에 대해 '단순 투자'라고 일축했음에도 잡음이 가시지 않는 건 꾸준히 지분율을 늘려 조원태 회장과의 지분 격차를 좁히고 있어서다.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20.75%지만 우호 지분을 포함하면 의결권은 46.23%에 달해 경영권 방어는 안정적이다. 대한항공과 함께 글로벌 항공동맹 스카이팀에 속한 델타항공(지분 14.9%)도 우군이다.

호반그룹 계열사 대한전선과 소송 갈등을 빚고 있는 LS그룹도 한진그룹 지원 대열에 합류했다. (주)LS는 지난 16일 대한항공을 상대로 65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교환사채는 발행기업이 보유한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회사채다. (주)LS 자사주를 한진그룹이 사고 LS그룹도 한진칼의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두 회사가 서로 협력할 수 있게 됐다.

10.58%에 달하는 KDB 산업은행 지분은 유동적이다. 산업은행은 2020년 말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자금을 지원할 당시 한진칼 주식을 사들였지만 통합 대한항공이 공식 출범하면 차익을 회수하며 지분을 점차 줄여나갈 가능성도 있다.

항공업계는 부실한 아시아나항공을 떠넘겨 대한항공에게 국내 항공업 도약과 재편의 부담을 준 산업은행이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시장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미래 투자'로 외풍 떨친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대규모 미래 투자를 통한 경영 전략 구상에 한창이다. 사진은 지난 3월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격납고에서 열린 '라이징 나이트'(Rising Night) 행사에서 새 CI를 입힌 보잉 787-10 항공기 내부를 살펴보던 조회장. /사진=공항사진기자단(뉴시스)
"대한민국 대표 국적항공사로서 세계 유수 글로벌 항공사와 당당히 경쟁하고 국내 항공산업의 위상을 전 세계에 뿌리내리겠다."

지난해 12월 글로벌 14개 경쟁당국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절차를 마무리 한 뒤 조 회장이 내놓은 첫 다짐이다. 대한항공 경영권 분쟁 우려에 대한 방어보다 조 회장은 스스로의 다짐처럼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시너지' 창출에 집중하고 있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사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면 기업가치 확대를 통한 경영 성과로 이어질 것이란 확신에서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을 통한 외형 확대를 대비해 기단 확대에도 나섰다. 통합 항공사 출범에 맞춰 기단을 늘리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최신형 항공기 도입을 결정했다.

지난 3월 글로벌 항공기 제작사 보잉(Boeing)과 세계 최대 항공기 엔진 제작업체 GE에어로스페이스(GE Aerospace) CEO(최고경영자)를 만나 적기 항공기 도입을 논의했다. 최신형 항공기 수요가 높아지는 가운데 항공기 공급분을 조기에 확보해 중장기 기재 계획을 차질 없이 수행하겠다는 포석이다.

조 회장은 보잉 777-9 20대와 보잉 787-10 20대를 2033년까지 도입하고 비슷한 조건으로 항공기 10대를 추가 구매할 수 있는 옵션도 협의했다. GE사의 예비 엔진 8대(옵션 엔진 2대 별도) 구매와 보잉 777-9 항공기용 GE9X 엔진 관련 정비 서비스 계약도 조속히 마무리해 항공기 및 엔진에 대한 제작사 지원도 강화하기로 했다.

3사 협력 규모는 항공기 구매 249억달러(약 34조4000억원), 예비 엔진 구매 및 엔진 정비 서비스 78억달러(약 10조8000억원)로 총 327억달러(약 45조2000억원)에 달한다.

조 회장은 캐나다 2위 항공사인 웨스트젯 지분 10%(2억2000만달러, 약 3079억원) 인수도 결정하며 글로벌 항공사 도약을 위한 영향력 확대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웨스트젯 지분 인수 뒤 캐나다 항공시장에서의 강력한 파트너십 구축을 발판 삼아 북미와 중남미 시장까지 영역 확장을 꾀할 방침이다.

세계 최대 항공사이자 대한항공의 우군인 미국의 델타항공도 웨스트젯 지분 15%(3억3000만달러, 약 4618억원)를 인수한다. 델타항공이 보유한 웨스트젯 지분 가운데 2.3%는 에어프랑스-KLM에 매각·양도할 권리도 갖는다.

이밖에 총 5780억원을 투자해 인천 영종도 운북지구에 구축 중인 엔진 정비 클러스터 역시 미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조 회장의 핵심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