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Z세대 사이 클래식 음악 감상과 전시 관람이 '힙'하고 '낭만'적인 취미로 주목받고 있다. 클래식은 그동안 중장년이나 문화적 소양이 높은 소수 애호가만 즐기는 장르로 인식됐다. 어렵고 지루하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고전 음악과 미술 전시가 젊은 세대 사이 새로운 유행으로 떠오르면서 '클래식'과 멋있다는 뜻의 은어 '힙하다'를 합성한 신조어 '클래식힙'(Classic-Hip)이 등장했다.
━
MZ세대 핫플이 된 미술관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젊은 세대 사이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경. /사진=곽우진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MZ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미술관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론 뮤익' 전시는 지난 4월11일부터 5월18일까지 일평균 5600명이 찾았다. 서울관 개관 이래 단일 전시로는 최다 관람객으로 한 달 만에 21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관람객의 70% 이상은 20~30대로 집계돼 젊은 세대의 압도적인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20~30대 사이 핫플레이스가 됐다. 사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세대별 핫플레이스 증가율 그래프. /그래픽=곽우진 기자
한국관광데이터랩의 세대별 핫플레이스 증가율은 20~30대 사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최근 3개월을 지난해 동기와 비교할 때 20대에서는 99.89%, 30대에서는 66.21%가 각각 증가했다. 전체 평균 증가율이 52.83%인 점을 고려하면 MZ세대가 전반적인 관람객 증가를 이끌었음을 알 수 있다.
'클래식힙'을 직접 체감해보기 위해 기자도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평일에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사진은 매표 창구에 줄 선 사람들(좌)과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 /사진=곽우진 기자
지난달 평일 오후에 방문했음에도 국립현대미술관은 입장권 구매 창구부터 인파로 북적였다. 입장을 기다리는 대부분의 관람객은 20~30대로 보였다. 기자는 최근 MZ세대에 인기가 가장 많은 론 뮤익 전시 관람권을 구매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이미 많은 관람객이 작품 앞에 모여있었다.
전시장에 관람객들이 많아 전시 관람을 위해 대기하기도 했다. 사진은 작품 감상을 위한 대기 줄(좌)과 영상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 /사진=곽우진 기자
관람객이 많아 온전히 작품만을 사진에 담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감상을 위해 5분 가량 대기가 필요한 작품도 적지 않았다. 영상 작품은 앉을 자리가 없어 기다렸다가 다른 관람객이 자리를 떠야 관람할 수 있었다.
━
'힙'한 한 컷, 전시장에서 건진다
━
카메라를 들고 작품들을 찍으며 혼자 전시를 관람하던 고현정씨(24·여)는 "미술 전공생이다 보니 전시를 주기적으로 관람하는 편"이라며 "론 뮤익 전시는 최근 친구들이 인스타에 올린 사진을 보고 관심이 생겨 보러 왔다"고 말했다.
론 뮤익 전시가 인스타그래머블한 작품으로 주목 받았다. 사진은 작품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곽우진 기자
전시장에서는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관람객의 모습도 쉽게 눈에 띄었다. 각각의 작품이 '인스타그래머블'하다는 점은 전시 흥행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유명하거나 '힙'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에 적합하다는 의미다. SNS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MZ세대에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나와 미술 작품은 모두 기록하고 공유할 콘텐츠다.
직장 동료와 함께 론 뮤익 전시장을 찾은 차현지씨(26·여)와 박주희씨(29·여)도 "친구들이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 궁금해져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주변에 전시를 관람하는 친구들이 많냐는 질문에 차씨는 "요즘 친구들이 전시, 공연 관람 같은 문화생활을 하고 SNS에 인증 사진을 많이 올린다"며 "바쁜 일상 속 가끔 미술 전시를 관람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힐링하는 느낌이라 전시장을 찾는 것 같다"고 답했다.
평소 전시 관람을 취미로 삼고 있다는 이가은씨(24·여)는 인스타그램에 작품 사진과 감상평을 올리는 편이다. 이씨는 "전시장에서 찍은 제가 등장하는 사진보다 인상 깊었던 작품과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게시물을 더 자주 올린다"며 "내가 어떤 문화를 어떤 시각으로 즐기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자기 표현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
제법 '힙'한 클래식
━
SNS와 클래식이 결합해 MZ세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은 KBS교향악단 화면 캡처. /사진=유튜브 캡처
클래식 음악도 SNS를 매개로 젊은 층에서 주목 받고 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과 결합하면서 클래식은 지루하고 격식 있는 음악이라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힙'한 음악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이씨는 일상에서 유튜브를 통해 클래식 플레이리스트를 자주 듣는다고 밝혔다. 그는 "작년 유튜브 알고리즘에 우연히 KBS 교향악단 영상이 떴는데 썸네일이 웃겨서 클릭했다가 흥미가 생겼다"며 "예전엔 클래식이 진입장벽 높은 교양의 영역이라 느껴졌지만 요즘은 다양한 클래식 유튜브 채널 덕분에 쉽게 접할 수 있다"고 전했다.
취미로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김채경씨(24·여)는 "건강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피아노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듣는 음악의 90%가 클래식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비전공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 유튜브 채널이 많아서 클래식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며 "예전에는 클래식이 중장년층의 취미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음악회에 가보면 20~30대 관객이 더 많을 때도 있다"고 언급했다.
클래식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유튜브 채널 클래식타벅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은 유튜브 채널 클래식타벅스 화면 캡처. /사진=유튜브 캡처
클래식을 자신만의 감각과 시각으로 재해석한 콘텐츠들이 MZ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유튜브 '클래식타벅스'는 '비달디 사계 계절 맞히는 법' '현악기에 물 주는 법' 등 클래식 음악과 이론을 쉽고 유쾌하게 풀어낸 콘텐츠로 주목을 받았고 현재 27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채널 운영자는 "시청자 중 20~30대 비율이 평균 60%에 이른다"며 "젊은 세대가 클래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클래식을 힙하다고 느끼는 MZ세대의 인식에 대해 그는 "힙하다는 건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클래식은 이미 충분히 힙한 콘텐츠"라고 설명했다. 이어 "클래식은 유행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트렌드나 문화와도 유연하게 어우러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치있는 썸네일과 제목으로 유튜브 채널 클래식좀들어라가 인기를 얻었다. 사진은 클래식좀들어라 유튜트 화면 캡처. /사진=유튜브 캡처
요즘 세대의 감성을 반영한 썸네일과 제목으로 이목을 끈 유튜브 채널 '클래식좀들어라'는 이달 기준 구독자 수가 12만명이다. 지난해 9월 대비 17배나 증가했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드보르자크 피아노 트리오 등을 담은 플레이리스트 '걍 살면 되지 않을까'는 80만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주목 받았다. 최근에는 책을 출간하고 클래식 음악회와 협업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클래식을 알리고 있다.
채널 운영자는 "구독자 중 80% 이상이 10~30대일 만큼 MZ세대의 관심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젊은 세대는 레트로 감성처럼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문화에도 습득과 공유가 빠르다"며 "그런 소비 방식이 클래식까지 확장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클래식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꾸준히 들릴 예술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힙'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