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에 나선 민간인 관광객이 북한군이 쏜 총탄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채널A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금강산 민간인 피격 사건 상황을 연출한 이미지. /사진=유튜브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캡처
2008년 7월11일 북한 금강산 관광에 나선 민간인 관광객 박왕자씨(당시 53세)가 북한군의 피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직후 정부는 금강산 관광 출발 금지 조치를 내렸고 이틀 뒤인 7월13일 전원 철수시켰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북 관계는 화해 무드에서 냉전 상황으로 급격히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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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된 금강산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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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에 나선 민간인 관광객이 북한군이 쏜 총탄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형 회장이 통일대교에서 소 떼를 몰고 방북하는 모습. /사진=유튜브 YTN 채널 캡처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의 소 떼 방북을 계기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의 산물이었다. 금강산 관광은 정 전 회장이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하면서 사업의 길이 열렸고 그의 아들인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실질적인 관광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금강산 관광에 나선 민간인관광객이 북한군이 쏜 총탄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금강산 관광을 하고 있는 민간인 관광객들의 모습. /사진=유튜브 YTN 채널 캡처
1998년 11월18일 남한의 민간인 관광객이 북한 여행을 시작한 획기적인 날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당시 관광객들은 금강산 관광지역 내 숙박시설이 없다보니 동해안에서 2만8000톤급 유람선(금강호)를 타고 금강산 앞바다에 위치한 장전항에 도착해 낮에는 육지를 관광하고 밤에는 유람선에 머물며 숙박을 했다.
이후 현대그룹은 2003년 9월 육로관광, 2004년 7월 금강산 단일 관광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7년뒤인 2005년 6월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은 어느덧 100만명을 돌파하며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순조로웠던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11일 민간인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역풍을 맞았고 남북 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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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피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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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에 나선 민간인관광객이 북한군이 쏜 총탄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삽화는 YTN에서 금강산 민간인 피격 사건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한 삽화. /사진=유튜브 YTN 채널 캡처
50대 주부 박왕자씨는 생일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금강산 관광을 떠났다. 친구들과 즐겁게 명소를 둘러본 박씨는 여행 마지막 날인 7월 11일 오전 5시쯤 해안가를 산책하던중 돌연 북한군 초병이 쏜 총탄 2발을 맞고 그자리에서 사망한다.
북측에 따르면 군 경계지역 안으로 들어온 것을 발견한 초병이 박씨에게 정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박씨가 이에 응하지 않고 달아나자 총을 쐈다는 입장이다. 당시 북한 금강산 사업 당국인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은 당일 오전 9시20분 현대아산에 사건 발생 사실을 통보했고 현대측은 직원과 금강산 병원장을 보내 현장을 확인하고 시신을 수습했다. 박씨 시신은 당일 오후 1시쯤 남북 출입사무소를 통해 남쪽으로 옮겨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당일 홍양호 통일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관계부처 합동대책반을 구성한 데 이어 7월12일부터 사건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우리 당국자의 현장 방문을 허용하라고 북한에 촉구했다.
그러자 북한은 7월12일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박씨가 군사통제지역으로 넘어온 것이 사건의 원인이며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측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하며 우리측에 명백히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전하며 우리의 현장 방문 요구를 일축했다.
이에 정부는 합동조사단을 꾸려 독자적으로 사건 진상 조사에 착수 7월25일 중간조사결과와 8월1일 모의총기실험 결과를 각각 발표했다. 조사단은 박씨의 피격지점이 북측이 애초 밝힌 지점과 100m가량 차이가 나며 북한이 박씨가 여성임을 식별할 수 있는 상태에서 총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북한을 압박했다.
또 정부는 7월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서 박씨 사건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등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그러자 북한은 8월3일 A4 용지 3장 분량의 '금강산 지구 군부대 대변인' 특별 담화를 통해 우리의 현장조사 요구를 재차 거부하는 한편 "금강산에 체류하는 불필요한 남측 인원을 모두 추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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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남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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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에 나선 민간인관광객이 북한군이 쏜 총탄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16일 북한의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폭파로 남북 관계가 완전한 단절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에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있는 전경. /사진=뉴스1
이후 현대그룹 측은 몇 차례 금강산 사업 재개를 위해 노력했지만 남북관계가 계속 악화일로로 전개되면서 남북은 박씨 피격사건과 금강산 관광 재개문제를 협의할 대화 채널을 만들지 못했다. 이후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 서부전선 포격 사건,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 북한의 도발과 핵실험 등으로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 관계가 화해모드로 돌아서는 듯 했다. 하지만 2020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으로 원점이 됐고 사건 발생일로부터 17년이 지난 현재까지 북한은 당시 사건에 대해 우리 관광객의 부주의에 의해 일어난 돌발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