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판례와 관련해 검찰과 법원이 요구하는 안전보건확보의무 수준에 맞춰 기업이 내부 가이드라인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법조계 조언이 나왔다. 사진은 정유철 율촌 중대재해센터 변호사가 발표하는 모습. /사진=이화랑 기자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 시행된 후 기업의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실태를 바탕으로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구체화되고 있다. 검찰과 법원이 요구하는 안전보건 확보의무 수준에 따라 기업이 내부 가이드라인을 정비하고 근로자 보호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법조계의 조언이 나왔다.

한국건설기술인협회와 법무법인 율촌 중대재해센터는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파르나스타워에서 '경영책임자와 실무자를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안전보건 확보의무 대응 실무 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세미나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주요 판결과 수사 사례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조상욱 율촌 중대재해센터장을 비롯해 박종면 한국건설기술인협회장, 양희동 한국경영학회장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법원 "시공 순서 어긴 하청 책임"
발제자로 나선 정유철 율촌 중대재해센터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주요 판결과 시사점을 제시했다. 정 변호사는 "사고 발생 후 기소까지 10~12개월가량 소요되는데, 1차 사고가 마무리되기 전 2·3차 사고가 발생해 문제가 된다"며 "사고 직후 점검과 안전관리 조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중 검찰은 22건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법원은 46건의 1심 판결에서 무죄와 실형을 각각 5건씩 선고했다. 이와는 별도로 3건은 구속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5건의 무죄 사례 중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과 관련된 사안은 3건이다. 이 중 건설업은 1건이었다.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사고가 사전에 예견되기 어려웠다는 점에 있다. 지난 5월16일 전주지방법원이 선고한 판결은 이러한 판단 기준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로 지목됐다.

정 변호사는 "책임주의의 원칙상 원청은 무죄, 하청은 유죄로 판단된 최초 사례"라며 "법원은 원청이 공사시방서, 안전관리계획서, 위험성평가서 등 정기·수시 평가의 안전 의무를 이행한 점을 들어 사고 인과 관계나 예측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통상 원청과 하청의 책임이 동일하게 취급됐으나 형사상 책임주의 원칙을 확인시킨 판결"이라며 "협력업체에 대해 관리 감독을 한 원청이 시공 순서를 이행하지 않은 사고에서 형사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사건의 원청 현장소장은 작업 전 굴착 깊이나 시설 설치 순서 등을 강조했으나 하청업체는 공기를 맞추기 위해 계획을 위반한 채 무리한 작업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 사건에서 근로자 의견을 반영한 실질적인 안전보건조치의무 이행과 사전 점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가 발표하는 모습. /사진=이화랑 기자
설문·면담 등 실질 점검 필요… 열사병 유죄 첫 판결도
무죄 선고와는 달리 실형이 선고된 사건에서 ▲과거 유사 사고의 반복 발생 ▲복수의 안전 의무조항 위반 ▲안전조치 미이행 반복 ▲시정명령 불이행 등이 지적됐다.

정 변호사는 "중대재해 사건에서 실질적인 안전보건 조치의무 이행과 사전 점검 여부가 중요하다"며 "근로자가 참여할 수 있는 설문조사, 면담 등 대비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의 세부 이행 방안에 대해 발표한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도 실제 근로자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각종 평가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위험요인을 찾아 업무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내 기업 특성에 맞는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는지 살피고 설문조사, 면담, 익명 피드백 시스템 등 다양한 방법·채널을 활용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지난달 13일 열사병이 중대재해로 인정, 유죄가 선고된 사례도 나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정 변호사는 "당시 온도가 33.5도를 넘어 폭염특보가 내려지는 등 무더운 날씨에 근로자가 사망한 데 대해 법원은 휴식시간 보장과 그늘 장소 제공, 소금·음료 비치 등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작업 중단과 휴식시간 부여 등 관련 매뉴얼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