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크립토 위크'가 시작된 가운데 '지니어스 법안'의 의의와 미국과 스테이블코인의 관계를 분석했다. 표는 '지니어스 법안'의 주요 내용. /표=김은옥 기자


속도를 내던 트럼프 행정부의 가상자산 관련규제 법제화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 하원에서 지니어스 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규칙을 정하는 표결이 찬성 196표, 반대 223표로 부결되면서다. 상원은 지난 6월17일 찬성 68, 반대 30으로 통과한 만큼 하원의 동의만 남은 상태였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가상자산 주간'(Crypto Week)을 선포하고 모든 공화당 의원들에게 "찬성표를 던질 것"을 촉구했다. 하원도 가상자산 규제법안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어서 절차상 지연이 발생하더라도 법제화는 무난히 이뤄질 전망이다.

오는 18일까지인 이어지는 크립토 위크에서는 지니어스 법안 외에도 클래리티 법안,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금지 법안이 중점 심의된다.


논의되는 3가지 가상자산 관련 법안 가운데 클래리티 법안은 디지털 자산의 법적 정의와 감독 권한을 구분하는 시장구조 법안이다. 규제 공백과 중복을 제거해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CBDC 금지 법안은 연준이 CBDC 발행·운영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이는 세계 주요국 가운데 최초로 CBDC를 입법적으로 배제하는 사례다.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은 글로벌 결제 시스템에서 가상자산을 앞세워 달러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본격화한 영역이어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다. 지니어스 법안은 달러화 등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한 디지털 자산인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최초로 포괄적인 규제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달러 패권 지키려는 미국… 엄격한 법적 장치 도입

사진은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7월27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행사에 참여한 모습. /사진=로이터


미국이 지니어스 법안을 마련한 이유는 스테이블코인의 시장 성장과 함께 달러 영향력 확대 가능성을 인식해서다. 미국 경제와 달러 패권을 강화하는 전략적 기회로 삼는다는 것.


스테이블코인 대부분은 미국의 달러화를 기반으로 삼는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준으로 삼은 가치와 교환되는 만큼 일종의 상품권과 비슷한 개념으로 통용된다. 코인 발행사는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올린다. 미국 정부 입장에선 국채 소화 채널이 생기는 셈이다. 게다가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법안을 통해 연방 차원 규제를 마련하게 되면 시장을 키울 수 있고, 후발주자들은 해당 규제를 따를 수밖에 없어 달러 패권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지니어스 법안의 주요 조항을 살펴보면, 발행 주체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허가된 결제 스테이블코인 발행인이 아닌 자는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 행위가 금지된다. 전통 금융권이나 특별 라이선스를 취득한 신설 비은행사만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고 무허가 상태 기업이나 개인은 관여할 수 없도록 했다.


준비자산 1대1 지급준비 의무를 둬 스테이블코인 발행인은 유통 중인 모든 코인에 대해 항상 100% 동등가치의 준비자산을 보유하도록 한다. 현금, 연방 예금, 만기 93일 이하의 미국 국채 등 고유동성 안전자산으로 한정된다. 각 발행사가 매월 공시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발행사는 이용자로부터 받은 자금과 자체 운영자금을 분리해 관리, 이용자 자금에 대해 파산 격리를 적용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영위 업무는 엄격히 제한된다. 스테이블코인으로 예치 이자를 제공할 수 없다. 발행사는 별도 이자나 인센티브를 토큰 보유자에 제공할 수 없고 오직 토큰 발행, 상환 관련 업무만 수행할 수 있다.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시장 남용을 막기 위한 조항도 포함됐다.

주 감독기관은 은행계 자회사인 경우 연준과 연방 예금 당국, 연방 비은행 특허의 경우 OCC(통화감독청), 주 인가의 경우 해당 주 금융당국으로 설정한다. 연방 차원의 일관된 규제를 받아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안정과 통화정책 관점에서 중앙은행이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니어스 법안이 글로벌 통화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스테이블코인을 도구로 하는 새로운 결제 시스템을 마련하는 가운데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앞서서 가장 먼저 형태를 갖추고 등장했다는 점에서 글로벌 표준 작용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연구원은 국내 외환 시장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봤다. 그는 "미국 입장에서 스테이블코인에 주력하는 건 글로벌 결제 시스템에서 달러 패권을 지키려는 의지"라며 "원화 입장에선 결제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하면 불편해질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까지 달러가 약세 흐름을 보이다 약간 고개를 드는 가운데 지니어스 법안은 달러 강세 요인, 즉 원화 약세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이라는 특성상 '자금 세탁' 우려가 존재한다. 이에 대해 황 연구원은 "이번 크립토 위크에서 논의되는 법안에서 자금 세탁 우려를 막으려는 장치가 보인다"며 "엄격한 법적 장치를 통해 우려를 최소화해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안착시키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미국 재정위기 근본적 해결책… '대체 준비자산' 스테이블코인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을 선점하려는 이유가 뭘까. 해시드오픈리서치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필요성과 법제화 제안' 보고서는 현재 미국은 심각한 재정위기를 직면했다고 설명한다. 미국 재정 위기는 기축통화(달러) 공급의 구조적 모순, '트리핀 딜레마'에서 비롯됐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관세 부과, 국채 구입 의무화 등이 논의됐다. 재정 위기의 근본적 해결책으로 '대체 준비자산'의 필요성이 부각된 상황이다.

미국의 암호화폐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전체 시장에서 미국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와 써클이 시가총액 기준 각각 62.5%, 24.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압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시장의 약 99%가 미국 달러 기반이다.

데이비드 삭스 미국 크립토 차르는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를 창출해 장기 금리 하락에 기여 가능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달러의 지배력 강화와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 창출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스테이블코인 법안이 통과되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확대되고 준비자산으로 미 국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보유한 미 국채 규모는 약 1670억달러(약 230조2930억원)로 한국(1220억달러(약 168조2380억원))의 보유량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이어 "TBAC(미국 재무부 차입자문위원회)에 따르면 2028년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이 8배 이상 증가한 2조달러(약 2758조4000억원)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는 2조달러 상당의 미 국채 수요가 증가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김 연구원은 "크립토 위크는 스테이블코인을 위시한 디지털 자산이 테마를 넘어 트렌드가 되는 하나의 과정"이라며 "미국 하원에서 논의될 3개 법안은 각각 통과 가능성이 상이하지만 명확한 규제 체계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글로벌 기준을 제시하면 한국도 이에 맞춰 규제를 제도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