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윈트럽 주한아일랜드 대사는 아일랜드가 외국인투자를 끌어들인 비결로 세율보다 정책의 일관성과 확실성을 강조했다. 사진은 머니S와의 인터뷰를 진행중인 미쉘 윈트럽 주한 아일랜드 대사. /사진=임한별 기자
"외국 기업들이 아일랜드에 남은 이유는 세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진짜로 원했던 건 몇 퍼센트의 혜택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제도 환경이었죠."

미쉘 윈트럽 주한 아일랜드 대사는 최근 머니S와의 인터뷰에서 아일랜드가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허브로 자리매김한 비결에 대해 이같이 단언했다. 단기적인 세율 경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믿을 수 있는 확실성을 주는 것, 그것이 아일랜드가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허브로 자리잡은 비결이라는 설명이었다.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 아일랜드 대사관에서 만난 윈트럽 대사는 큰 안경 너머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막힘이 없었다. 어떤 질문에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감 있는 어조로 답을 이어갔다. 특히 '확실성'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아일랜드 경제 모델의 본질을 짚었다.

전문 외교관 출신으로 2023년 한국에 부임한 윈트럽 대사는 "한국과 아일랜드는 분단의 아픔, 외세 침략, 식민지배, 독립운동 등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며 "한국은 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는 한국에서 배울 점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윈트럽 대사는 부임 이후 한국 문화에 푹 빠져 '반한국인'이 됐다. "한국식 바비큐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깔끔한 곳보다는 차라리 낡고 허름한 곳을 가라"고 주변에 조언할 정도로 삽겹살 마니아다. 시간이 날때면 단골인 북촌의 오설록 찾집에 들러 제주 차를 즐긴다. 언젠가 직접 제주 농장을 찾아가 차 향기를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법인세 인상으로 떠난 기업, 한 곳도 없다"
미셸 윈트럽 주한아일랜드 대사는 아일랜드가 기업 경쟁력의 기반은 세제 혜택이 아니라 인재 육성과 교육 투자라는 점을 거듭 밝혔다. 사진은 머니S와의 인터뷰를 진행중인 미쉘 윈트럽 주한 아일랜드 대사./사진=임한별 기자
한때 아일랜드는 12.5%라는 낮은 법인세율 덕분에 '기업 천국'으로 불렸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도한 글로벌 최저한세가 추진되면서 기업들이 떠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세계 어디서 사업을 하든 최소 15% 법인세를 내야 하는 이 제도는 아일랜드에도 적잖은 시험대였다.

기업들은 지난해 글로벌 최저한세 시행 후에도 아일랜드에 머물렀다. 윈트럽 대사는 "제가 아는 한 세율 인상 때문에 떠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고 강조했다. '확실성'이 아일랜드의 가장 큰 경쟁력이었다는 주장이다.


법인세율 논란이 한창이던 시기에도 기업들의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윈트럽 대사는 "기업들로부터 '우리가 아일랜드에 있는 이유는 낮은 세율 때문이 아니라, 인재, 정부 지원, 그리고 장관과 직접 만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용이성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아일랜드가 매우 간소화되고 명확하며 일관성 있는 규제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덕분에 사업하기 좋은 환경 평가에서도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해 왔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세계은행의 '기업 경영 준비도'(Business Ready·B-READY) 평가에서 아일랜드는 조사 대상 54개국 가운데 5위를 차지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큰 틀의 경제 정책은 합의 아래 이어졌다. 정치가 달라져도 경제의 기본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던 셈이다. 윈트럽 대사는 "한국도 정치적 갈등이 있지만 경제 운영의 큰 틀에 합의가 있듯이 아일랜드도 마찬가지였다"며 "그 일관성이 기업 신뢰를 지켜냈다"고 자신했다.
"정부는 파트너"…보조금 넘어 '전략'을 지원하다
미셸 윈트럽 주한아일랜드 대사는 아일랜드는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균형감각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머니S와의 인터뷰를 진행중인 미쉘 윈트럽 주한 아일랜드 대사./사진=임한별 기자
아일랜드가 '자원 빈국'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은 건 교육 덕분이기도 하다. 독립 직후부터 '국민이 유일한 자원'이라는 생각으로 교육에 과감히 투자했다. 윈트럽 대사는 "산업계·정부·학계가 삼각 협력 구조를 갖췄기 때문에 대학 과정이 산업 요구와 맞물린다"고 설명했다. 유럽 최초로 AI 대학원을 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일랜드 교육 모델의 핵심은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을 즉시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바이오공정 연구교육기관 NIBRT(National Institute for Bioprocessing Research and Training)처럼 특정 기업이 아닌 산업 전체를 위한 인재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주는 게 대표적이다. 한국이 송도에 'K-NIBRT'를 세운 것도 이 모델을 따른 것이다.

아일랜드는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는 동시에 자국 기업을 세계 무대로 도약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엔터프라이즈 아일랜드(EI·Enterprise Ireland)를 운영한다. 현지 대사관과 해외 기관을 활용해 시장 정보를 제공하고 네트워크를 연결해 준다. 윈트럽 대사는 "EI 한국 팀은 100% 현지인으로 구성돼 있어 한국 기업과 원활히 소통한다"며 "이 같은 구조가 지식경제 시대의 경쟁력을 높인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한국과 아일랜드가 공통의 전략 산업에서 협력 기회를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윈트럽 대사는 "제약·생명과학, 반도체는 모두 빠른 기술 진화와 인재 수요가 맞물려 있어 양국이 서로의 강점을 보완할 수 있다"며 "연구개발 공동 프로젝트와 인력 교류를 확대한다면 한국과 아일랜드 모두 글로벌 무대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