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부산시의원(오른쪽)이 14일 부산시설공단 행정사무감사를 진행하고 있다./사진=부산시의회
부산시설공단이 관리하는 주요 터널의 제연설비가 성능 미달 판정을 받았음에도 이 사실을 최대 2년간 부산시에 통보하지 않고 방치해 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통보가 지연되는 기간에 해당 터널에서 화재가 2건이나 발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한 '안전불감증'이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부산시의회 해양도시안전위원회 소속 박종철 의원(기장군1, 국민의힘)은 지난 14일 부산시설공단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 터널 제연설비 관리 부실 문제를 지적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시설공단이 관리하는 21개 터널 중 14개가 제연설비 성능검증 대상이며 이 가운데 구덕·제2만덕·황령·백양터널 등 4곳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개좌터널 역시 '부분 미흡'으로 확인됐다.

제연설비는 터널 화재 시 발생하는 유독가스와 연기를 신속하게 외부로 배출해 운전자의 시야를 확보하고 대피 시간을 벌어주는 핵심적인 안전시설이다. 이 설비가 제 기능을 못 할 경우 작은 화재도 질식, 연쇄 추돌 등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부산시설공단이 이러한 성능 미달 사실을 인지하고도 부산시에 공식적으로 알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허비했다는 점이다. 박 의원에 따르면 황령터널은 2023년 7월 제2만덕터널은 2024년 12월에 이미 성능 미달이 확인됐지만 공단의 공식 통보는 뒤늦게 이뤄졌다.

공단이 안전 문제를 방치하는 동안 실제 위험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6월 황령터널과 8월 제2만덕터널에서 연이어 차량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제2만덕터널 화재는 성능이 저하된 제연설비 탓에 검은 연기가 터널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장시간 극심한 교통 정체를 빚고 운전자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화재 당시 터널을 지나던 한 시민은 "10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가득해 불빛만 보고 움직였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증언했다.

박 의원은 "성능 미달을 알고도 늑장 통보하는 사이 두 차례나 화재가 발생한 것은 심각한 행정 공백"이라며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그 기간 동안 시민들은 아무런 대비 없이 잠재적 위험이 도사리는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제연설비가 미달된 4개 터널과 부분 미흡 판정을 받은 개좌터널을 이용하는 차량은 하루 평균 34만 대에 이른다. 수많은 시민이 매일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박 의원은 "내년 재난안전기금에 기본설계비만 편성해두고 수년을 기다리라는 것은 시민 안전을 뒤로 미루겠다는 것"이라며 "예비비나 추경을 활용해 즉시 개선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