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현재의 환율 시장을 두고 대외 변수보다 국내 구조가 환율을 끌어올리는 국면이라고 입을 모은다. 달러 강세나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한국 안에서 달러를 계속 사들이는 수급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진단이다.
이에 동행미디어 시대는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환율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현재 환율 시장의 구조적 원인과 2026년 방향을 점검했다.
이번 인터뷰에는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이코노미스트,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 연구원이 참여해 고환율의 본질과 향후 경로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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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가 강해서가 아니다… 환율은 한국 안에서 결정된다" ━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 연구원은 "팬데믹 이후 대미 직접투자 확대와 개인의 해외주식 투자 증가로 달러 실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지속적인 1400원대 환율 환경 속에서 수출기업이 원화 환전을 미루는 현상까지 겹치며 환율 하방이 경직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외 요인도 영향을 미쳤지만, 비중은 대내 요인이 더 크다"고 못 박았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수치로 설명했다. 그는 "올해 1~10월 경상수지 흑자는 895억8000만달러였지만, 같은 기간 달러 수요를 의미하는 직접·증권투자 수지는 947억9000만달러로 달러 수요가 공급을 52억달러 이상 웃돌았다"며 "단순 수급 논리만으로도 올해 환율은 크게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실제 글로벌 외환시장 벤치마크 지수인 달러인덱스(DXY)와 원/달러 환율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올해 달러인덱스는 원/달러 환율 변동의 36%를 설명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달러인덱스의 환율 설명력이 66%에 달했던 것과 대비되는 수치로 올해 들어 대외 요인이 원/달러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약화되고 국내 요인의 비중이 한층 확대된 것으로 해석된다.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이코노미스트는 "개인·기업·기관 등 국내 경제 주체들의 자본이 일제히 해외에서 투자 기회를 찾으면서 외환 수급상 달러화 매수 수요가 매도 수요를 압도하고 있다"며 "국제수지 기준으로 외국 자본의 국내 투자 규모가 국내 자본의 해외 투자 규모에 크게 못 미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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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 종착지는… 1300원대 후반~1400원대 중후반 '박스권'━
그렇다면 고환율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은행권 환율 전문가들의 답은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은 "1400원대 환율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지만, 하반기에는 한·미 통화정책 탈동조화와 반도체 경쟁력 회복,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자금 유입 등이 환율 하단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반면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이코노미스트는 "2021년 이후 연평균 환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해왔고, 2026년에 꺾일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경제가 글로벌 경기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달러화 자산에 대한 선호는 여전히 높다"며 "정책 대응 역시 결국 달러화 수요 우위로 쏠린 외환 수급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라고 덧붙였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2026년에도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이상의 고환율 구간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 지속과 달러화 수요 우위의 외환 수급 구조가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미국보다 낮은 점이 원화 약세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인구 감소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추가로 낮아질 수 있는 반면, 미국은 이민자 유입과 AI 산업 성장으로 장기간 우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연구원은 "내년에는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다이버전스로 엔화 강세가 나타나고 고용시장 둔화에 대응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가 가속화되면서 달러화는 약세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다만 "원화의 경우 구조적인 외환 수급 변화로 달러 실수요가 늘어난 만큼 과거처럼 약달러 흐름을 그대로 추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환율 레벨 자체는 점진적으로 하향 안정화되는 흐름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거주자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와 기업의 생산기지 이전에 따른 달러 매수세를 중화하기 위해서는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와 제조업 중심의 수출 다변화 지원 등 중장기적으로 매수 우위로 굳어진 외환 수급 환경을 중립으로 되돌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행권 환율 전문가들의 전망을 종합하면 2026년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 후반에서 1400원대 중후반을 중심으로 움직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은 내년 하반기 기준 1380원 전후까지의 하락 여지를 제시했고,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 연구원은 1320~1460원의 비교적 넓은 변동 범위를 예상했다.
반면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이코노미스트는 2026년 연평균 환율을 1430원으로 전망했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 역시 연평균 1420원, 연간 레인지 1380~1500원을 제시하며 환율이 낮아지더라도 하락 폭은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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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안정이 먼저"… 조건 달린 금리 인하 전망━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은 "지난 11월 한국은행의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가 금융안정에 방점을 둔 매파적 기조를 보였다"며 "이 같은 기조가 유지된다면 2026년 연준이 두 차례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한은이 비교적 매파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내수 부진과 물가 둔화만으로는 금리 인하를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부동산 가격의 안정 또는 하락 전환이 금리 인하의 핵심 트리거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 연구원 역시 "부동산 가격과 수입물가의 안정이 확인되지 않으면 금리 인하 여력은 없다고 판단된다"고 선을 그었다.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이코노미스트는 2026년 상반기 중 한 차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도 조건부 전망을 달았다. 그는 "서울 부동산 가격이 안정될 경우 내수 부진을 감안해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면서도 "원화 약세가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금리 인하 결정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2026년 4분기 중 0.25%포인트 인하를 예상했다. 그는 "부동산 가격 상승세에 따른 금융 불안 요인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반도체 수출 호조 등으로 국내 경기가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금리 인하 명분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부동산 가격 안정이 확인되거나 반도체 경기 둔화, 내수 회복 지연 등이 나타날 경우 인하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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