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1일 (현지시각)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열린 천무 공급 계약식에서 손재일(왼쪽)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와 카트리 라우셉 에스토니아 방산투자청(ECDI) 청장 대행이 계약서를 살펴보던 모습.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지난해 사상 최대 수주잔고를 쌓은 K방산이 올해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연초부터 60조원 규모 해외 방산사업 수주 결과 발표가 예고되면서 작년 양적 성장을 바탕으로 올해 질적 도약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3일 국내 방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주요 국내 방산기업의 수주잔고는 약 103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넥스원 등이 폴란드·중동·동남아 시장에서 일감을 쌓은 결과다. 통상적으로 수주잔고가 3~5년치 매출을 가늠하는 지표라는 점에서 중장기 실적은 확보됐다는 평가다.

최기일 한국방위산업연구소 소장은 "방산업계 수주잔고가 100조원을 넘어섰다는 것은 단기 호황이 아니라 일정 기간 안정적인 생산과 매출이 가능한 단계에 들어섰다는 의미"라며 "현재의 호조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올해 최대 변수는 오는 3월 캐나다 차기 잠수함 획득사업(CPSP) 결과 발표다. 잠수함 도입 비용과 앞으로 30년간 유지·보수·운영(MRO)을 포함한 사업 규모는 최대 60조원에 달한다. 캐나다 해군이 3000톤급 디젤 잠수함을 최대 12척 도입하는 프로젝트로 단일 방산 수출 계약 기준 세계 최대급이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같이 참여한 한국 컨소시엄은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TKMS)과 경쟁한다.

김호성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은 "캐나다 사업은 덩어리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결과에 따라 올해 전체 성적표가 좌우될 수 있다"며 "긍정과 부정 전망이 엇갈리는 만큼 결국 뚜껑을 열어봐야 할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해외시장인 미국 시장 진입 여부를 가를 시험대도 예고됐다. 연내 우선협상자 윤곽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미 해군 차세대 고등훈련기(UJTS) 사업은 약 40억달러, 한화로 6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도입 물량은 145~220대로 매년 25대 안팎을 장기간 공급하는 구조다. KAI는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T-50 계열의 해군형 기종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미군이 한국산 항공기를 채택할 경우 K방산의 위상이 한 단계 올라설 기회라는 평가도 나온다.


대형 방산사업 수주 경쟁은 성능 경쟁을 넘어 현지 생산, 산업 협력, 금융 지원을 포함한 국가 간 '패키지 경쟁'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캐나다 CPSP 역시 기술력 못지않게 산업 협력과 외교적 신뢰가 핵심 평가 요소로 꼽힌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도 부각되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해 지난해 세 차례 대통령 방산특사가 파견됐고 정상·장관급 외교 채널이 총동원되면서 방산 수출이 개별 기업의 영업을 넘어 국가 전략 산업 차원에서 관리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최 소장은 "대통령 비서실장을 방산 특사로 파견하는 사례는 과거 정부에서는 없던 일"이라며 "방산 특사라는 용어 자체가 현 정부 들어 등장한 만큼 대통령의 방산 리더십과 탑 매니지먼트 의지가 수주 경쟁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수요 여건은 한국에 우호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의 방위비 증액 압박과 안보 불확실성 확대로 유럽 각국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이상으로 늘리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심승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실장은 "러우전이 종전되더라도 러시아발 위협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만큼 유럽의 재무장 기조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유럽 내 생산능력은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어려워 그 틈새 수요를 K방산이 채울 여지는 충분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