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1일 오전 대전광역시 유성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방문해 이용호 초전도양자컴퓨팅시스템연구단장으로부터 '초전도 양자컴퓨팅 시스템 연구시설'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1나노미터(nm) 초미세 공정의 비용이 급증하며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전 세계는 컴퓨팅 패러다임을 바꿀 '퀀텀 점프'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바로 양자(Quantum) 기술 개발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출범을 앞둔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와 20조원의 한국형 국부펀드가 이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반도체 강국 한국이 차기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양자 기술 선점이 시급하지만, 막대한 초기 비용과 불확실성을 감당하며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민간 자본만으로는 건너기 어려운 탓이다.
"슈퍼컴 '수억 년' 난제, 단숨에 해결"... 연산 혁명이 2000조 시장 연다
양자컴퓨팅은 기존 컴퓨터의 0과 1(비트)이라는 이분법적 한계를 깬다. 양자 역학의 '중첩(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 현상을 이용하는 큐비트(Qubit)는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이는 연산 속도의 차원이 다른 폭증을 의미한다.

실제로 구글이 2019년 '양자 우위'를 선언한 데 이어 최근 IBM은 수천 큐비트급 프로세서를 통해 '양자 유용성(Quantum Utility)' 단계를 증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역시 오류를 스스로 수정하는 '논리적 큐비트' 구현에 성공하며 상용화 시계를 2030년에서 수년 더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기술이 가져올 파급력은 단순한 '빠른 계산'에 그치지 않는다. 맥킨지(McKinsey) 등 주요 글로벌 컨설팅사들은 양자 기술이 AI와 결합하며 시장 개화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2035년까지 창출할 가치가 2000조원을 상회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가장 기대되는 분야는 '물질 시뮬레이션'이다. 예컨대 전기차 배터리의 효율을 극대화할 새로운 양극재 분자 구조를 찾거나 수년이 걸리는 신약 후보 물질 탐색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양자컴퓨터는 비료 생산 공정을 개선해 전 세계 탄소 배출을 줄이고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반도체를 넘어선 전 산업의 제조 혁신을 의미한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퀀텀 코리아 2025'에서 관람객들이 IBM '퀀텀 시스템 원(Quantum System One)' 양자컴퓨터 모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2025.06.24. bluesoda@newsis.com /사진=김진아
'창과 방패'의 대결... 국가 안보의 키(Key)
양자 기술은 미래 안보 분야의 열쇠도 쥐고 있다. 현재의 RSA 암호 체계가 양자컴퓨터의 연산 능력(쇼어 알고리즘) 앞에서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지난 2024년 '양자 내성 암호(PQC)' 표준을 확정하고 전 정부 기관에 도입을 의무화하며 '암호 교체'를 서두르는 이유다.
보안 전문가들은 'HNDL(Harvest Now, Decrypt Later)' 공격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해커들이 현재의 암호화된 국가 기밀이나 금융 데이터를 미리 탈취해 저장해두고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는 순간 일시에 해독하는 시나리오다. 결국 양자 기술을 먼저 갖는 자가 전 세계의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창'을 쥐게 되는 셈이다.



국민성장펀드·국부펀드, '데스 밸리' 건널 구명줄이자 생태계 화수분
현재 글로벌 양자 기술은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등에 따르면 한국의 기술 수준은 선도국 대비 약 85%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뒤처져 있지만 반도체 미세 공정 노하우를 살린다면 여전히 선도 그룹에 합류할 '골든 타임'이 남아 있다고 진단한다.

문제는 기술이 산업이 되기까지 버텨야 할 시간과 비용이다. 아이온큐(IonQ) 등이 고성능 칩(예: 템포 등)을 내놓으며 기술력을 입증했지만 막대한 R&D 비용 탓에 여전히 적자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펀드 만기가 5~7년인 벤처캐피털(VC)이 10년 이상의 적자를 감내하며 딥테크 기업에 투자를 지속하기란 구조적으로 어렵다.

업계가 국민성장펀드와 한국형 국부펀드에 기대를 거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민간이 유망 기업 발굴과 초기 검증에 집중한다면 이들 국가주도펀드가 대규모 자본 투입이 이뤄지는 '스케일업(Scale-up)' 구간에서 자금 공백을 메우는 전략적 투자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10년 단위의 시간을 견디는 '인내 자본'이 있어야 유망 기업이 데스 밸리를 넘어 '산업'으로 안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국가주도펀드가 인프라 투자나 인수 금융과 같은 전통적인 자본 운용 방식을 통해 생태계 조성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예를 들어 양자 팹(Fab)·전용 테스트베드 같은 필수 인프라를 구축하면 자산 가치를 확보하면서 스타트업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고, 핵심 기술을 보유한 해외 기업 인수 딜(deal)에 참여하면 투자 수익과 기술 격차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