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개그우먼 박미선(42) 씨에게 낯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기아대책기구입니다. 저희가 행복한 나눔이라는 자선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에 재단법인화하고 본격적인 독립단체로 활동하게 됐거든요. 박미선 씨를 대표로 선임하고 싶습니다."
다짜고짜 걸어 온 전화에서 자신들의 대표를 맡아달라니. 박씨는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한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어리벙벙한 채 서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한참을 생각한 후 박씨는 정중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좋은 일에 동참하고는 싶으나 방송활동이 바빠 제대로 대표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얼마 뒤 박씨는 녹화 현장에서 또 한번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 행복한 나눔의 직원들이 박씨를 설득하기 위해 직접 찾아온 것이다.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그는 사람들에 등떠밀려 행복한 나눔 전 대표를 맡고 있던 영화배우 고은아 씨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미선아 니가 대표 좀 맡아라." 박씨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대선배의 부탁을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좋은 일에 동참하는 거잖아요. 부족한 저에게 대표를 맡아달라고 직접 찾아와 준 행복한 나눔 식구들의 정성에 감동하기도 했고요. 어느날 갑자기 저를 찾아온 행복한 나눔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 됐습니다."
◆행복한 나눔 대표가 되다
그 이후 두달. 못쓰는 물건을 수거해서 필요한 이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가게인 행복한 나눔의 대표가 된 박씨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방송활동 짬짬이 행복한 나눔의 대표로서 돌보아야 할 업무가 만만치 않다. 얼마 전에는 속초점의 개장을 맞아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강원도 속초까지 직접 다녀오기도 했다.
"사실 이 일을 맡기 전에도 마음 속에는 항상 나눔에 대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가금씩 친구들과 봉사활동을 다니고 기부에 참여하긴 했지만 이것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보다 전문적이고 본격적으로 나눔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항상 바쁜 방송일을 핑계로 미뤄왔는데 이렇게 우연한 계기에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박씨는 막상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도 몇번씩 그만둘까 말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한창 방송일이 바쁜 이맘때 덜컥 대표직까지 떠맡고 나서는 자신이 맡은 일을 잘 수행해 낼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그는 그럴 때마다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언젠가 한번 꼭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 당장 내 일이 바쁘다는 건 핑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먹는 시간, 자는 시간이라도 줄여가며 좋은 일에 동참한다면 아무리 바쁜 중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거라 여겼습니다. 어차피 내가 대표직을 맡았다곤 하지만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행복한 나눔 식구들이 이끌어주고 도와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람을 믿고 시작한 일이었기에 끝까지 사람을 믿고 가보자 생각한거죠."
박씨가 행복한 나눔에서 처음으로 한 일은 '인감도장'을 건네주는 일이었다. 박씨는 여기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내 인감도장을 건네줬다는 건 나를 행복한 나눔에 온전히 내맡긴 것과 다름없다는 뜻입니다. 인감도장이 찍힌 일은 무엇이든지 분명히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고 나는 그 책임을 다해야 하는 거죠. 내가 단순한 홍보대사가 아니라 행복한 나눔이라는 조직을 이끄는 '대표'라는 건 바로 거기서부터 실감이 나더군요."
대표로서 박씨의 현재 목표는 전국에 행복한 나눔 가게 50개 점포를 개장하는 것. 3월 말 개장한 속초점은 행복한 나눔의 26호점이다. 박씨는 "아직도 목표를 이루려면 갈 길이 멀다"며 멋쩍은 듯 웃어 보인다.
"내가 행복한 나눔의 점포를 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 또한 다른 의미의 기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부라는 행위를 꼭 돈을 내는 데만 한정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개그맨 박미선이 다리가 되어서 더 많은 기업이 행복한 나눔의 좋은 사업에 동참하게 되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한 나눔을 알게 되는 것이 대표로서 내가 맡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떠맡게 된 직책이지만 한번 대표직을 맡은 이상 내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노력해야죠."
박씨는 요즘 '하프 앤 하프'라는 연예인들의 봉사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 박준규, 이홍렬, 송은이 등이 주축이 된 이 모임은 원래 친목도모를 위해 결성된 모임이었다. 친한 이들끼리 만나서 그저 노는 것으로만 시간을 때울 것이 아니라 좋은 일도 함께 하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이홍렬 씨의 제안에 따라 현재 모임의 절반은 친목을 도모하는 데 나머지 절반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할애하고 있다.
"언론에 몇 번 봉사단체라고 소개가 되긴 했지만 사실 연예인들끼리의 사적인 모임입니다. 반절은 놀고 반절은 좋은 일 하자는 뜻에서 이름도 '하프 앤 하프'로 정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독거노인을 돕는 모임을 가졌는데 그렇다고 하프 앤 하프가 독거노인만을 돕는 모임은 아닙니다. 그때그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 찾아가서 마음을 나누는 친목단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행복한 나눔의 대표로 활동하는 것만해도 바쁠텐데 그 와중에도 꾸준히 여러 봉사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박씨의 열정이 대단하다. 박씨는 "나눔의 기적은 누려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며 딱 잘라 말한다.
"봉사라는 건 놀라운 기적의 체험입니다. 흔히들 나누면 배가 된다고 말하지만 이는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평생 알 수 없는 기적입니다. 저는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자기만족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누군가를 도우면서 내가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되고 그 기쁨이 나를 또 다시 봉사현장으로 이끄는 힘이 되는 거죠. 그래서 봉사는 참 중독성 있는 일입니다."
박씨는 차분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일찍 가장 노릇을 해 왔습니다. 결혼을 하면 조금 나아질까 했는데 이후에도 남편의 사업자금을 대고 뒷바라지를 하느라 집안의 가장 역할을 도맡아 왔죠. 그게 알게 모르게 불만이었습니다. 나는 왜 항상 내가 열심히 모은 돈으로 남들을 도와줘야만 하는 걸까. 때로는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을 바꿔먹으니 세상이 달리 보이더군요. 어차피 내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면 내가 가진 것의 반을 남에게 주더라도 나에게는 절반이나 남아있는 게 되잖아요.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면 그 순간 나에게 남는 것이 더 많아진다는 진리를 깨달은 거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봉사활동에 열중할 수 있는 요즘이 박씨는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제2의 전성기'라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까지 받고 있으니 더 이상 바랄 바가 없다.
"연예인 박미선으로서 나는 한번 정상에 올라왔다 내려와 본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어디를 가도 대접받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면 요즘에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주고 웃어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면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봉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그 웃음이 행복한 나눔을 비롯한 봉사활동에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감사한 일이 없을 것 같다는 개그우먼 박미선. 그의 선한 웃음에 보는 사람마저 기분이 좋아진다. 봉사단체의 대표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만큼 앞으로도 그가 세상에 나눔의 기쁨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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