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인 신흥증권 회장과 박병재 영창악기 부회장이 그들이다. 자동차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지만 그들은 지금 컨베이어 벨트가 아닌 유가증권 계약서와 오선지가 더 익숙할 터다.
박정인 회장은 올 3월부터 현대차IB증권(옛 신흥증권)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고 박병재 부회장은 2002년 현대기아차 부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현대정보기술로 옮겼다가 지난 2006년부터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영창악기를 이끌고 있다.
◆20대 청년들 30대에 포니 탄생 주역이 되다
박병재 부회장은 1968년, 박정인 회장은 1969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현대차에 입사했다. 박 부회장이 27세, 박 회장이 26세이던 때(나이는 박병재 부회장이 2살 위다)였다. 고속도로와 댐 건설, 중동특수 등을 앞세워 현대건설을 일궈가던 정주영 회장이 평생의 숙원이던 자동차회사를 세운 것이 1967년이니 초창기 중 초창기에 이들이 합류한 것이다.
현대차 경영의 기초를 다진 사람은 왕회장(정주영 회장)의 동생 고 정세영 회장이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형의 권유로 현대차의 초대 사장을 맡았던 것. 처음에는 미국 포드자동차의 기술로 '코티나'를 조립생산했지만 포드와의 제휴가 틀어지며 독자모델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갖은 어려움을 헤치고 1975년 독자적으로 개발한 '포니'가 세상에 나왔고 이듬해 양산이 시작됐다. 중간 간부쯤으로 박병재 부회장과 박정인 회장도 포니 출시에 힘을 보탠 것은 물론이다. 포니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던 1978년 이들은 나란히 기업의 꽃이라는 임원을 달았다. 하지만 몸담은 곳은 엇갈리게 된다. 박정인 회장이 이사가 처음 된 회사는 현대정공이었던 반면 박병재 부회장은 현대차의 이사가 된 것.
당시 현대정공 사장은 정주영 회장의 아들로 현재의 현대기아차를 이끄는 정몽구 회장이었고 현대차는 정세영 회장이 직할하고 있었다. 정몽구 회장은 1970년 현대차와 인연을 맺었고 자재과장 등을 거쳐 1974년 설립된 현대자동차써비스 사장이 되면서 본격적인 자동차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정몽구 회장이 1977년부터 자동차 부품 계열사였던 현대정공 사장을 맡았던 만큼 박정인 회장은 초기부터 정몽구 회장과 함께 해 온 것이다.
◆쏘나타ㆍ그랜져ㆍ갤로퍼..50대에 자동차 역사를 쓰다
자동차산업의 본고장 미국에 수출돼 기록적인 판매기록을 세운 포니 엑셀의 시대는 박병재 부회장이 일에 미쳐있던 때였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전무로 또 캐나다현지법인 사장으로 미주 수출에 큰 기여를 했다.
컨테이너 제조ㆍ완성차 생산ㆍ철도차량 제작ㆍ공작기계 제조 등 사업영역이 다양했던 현대정공에서 박정인 회장은 상무와 전무 등으로 회사가 우뚝 서는데 큰 기여를 했다. 또 1991~1996년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갤로퍼', 국내 첫 미니밴 '싼타모'가 나왔을 당시 박정인 회장은 전무와 부사장으로 경영의 최전선에서 뛰었다.
1999년 기아차 인수와 함께 출범한 현 '정몽구 체제'는 현대차의 제2의 창업이라 불릴 만하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정몽구 회장을 향후 현대차를 발전시킬 적임자로 판단했고 그는 과감한 공격경영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실력을 키워가며 도약의 기반을 다졌다. 현대차는 국제적인 각종 품질평가에서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으며 고급차 메이커로서의 이미지를 굳혔고 미국ㆍ중국ㆍ인도ㆍ터키공장에 이어 체코공장을 짓는 등 글로벌 생산기지를 빠르게 늘려갔다.
박정인 회장은 현대모비스 회장으로 승진했다가 2006년부터 현대기아차의 기획총괄 담당 부회장으로 옮겨왔다. 정몽구 회장식 경영이 현대기아차에 성공적으로 접목돼 만개하는 상황에서 30여년간의 동료이자 참모였던 박정인 회장의 힘이 필요했던 것.
◆60대에 피아노의 건반과 주식에 미치다
박병재 부회장은 환갑인 61세 되던 해에 자동차 분야에서는 한발 비껴나게 됐다. 63세가 되던 해에는 IT업체인 현대정보기술 회장을 지냈고 지난 2006년부터는 전혀 새로운 일을 맡게 됐다. 그가 국내의 대표적인 피아노 등 악기제조업체인 영창악기 대표이사가 된 데는 영창악기를 인수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그는 정세영-정몽규 부자와 40여년간 손발을 맞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 CEO답게 피아노 생산공정에도 자동차 생산방식을 접목시켰다. 기본형과 주문형을 교차 제작해 라인의 낭비도 절감했고 대당 생산일수도 취임 전보다 30 ~ 40% 정도 줄였다.
박정인 회장은 60대 초중반에 현대기아차 부회장에 이어 현대제철의 부회장도 겸임했다. 또 올해 3월부터는 현대차IB증권의 대표이사 회장도 맡았다. 그룹 전략상 증권업에 진출한 정몽구 회장의 '특명'에 따라 금융시장에서 추가 인수ㆍ합병(M&A) 등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으로 규모나 시장 지배력에서 최강의 능력을 갖춘 증권사를 조기에 육성하는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20대에 발을 디딘 자동차 산업에서 평사원부터 부회장까지 지낸 CEO 박병재와 박정인은 60대 중반인 지금 새로운 분야에서 매일 경적을 울린다. 그들 자동차의 전조등은 피아노의 건반과 증시의 전광판을 향해있다. 세대를 뛰어넘은 전문경영인의 무한도전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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