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보름달이 솟을대문 위로 솟아오른다. 집안으로 쏟아지는 맑고 밝은 달빛. 마당에도, 텃밭에도, 마루에도, 방안에도 교교한 달빛이 가득하다. 사랑채와 행랑채에 머물던 손님들도 밖으로 나와 마당을 거닌다. 달빛 물든 얼굴엔 편안한 미소가 번진다. 보름 무렵 고택의 밤은 이렇게 깊어간다.
밤이 이슥하도록 마당을 서성이다 사랑채로 돌아와 자리에 눕는다. 달빛이 희부연 창호지를 물들인다. 채광 조망 통풍 기능 말고도 다양한 미학을 보여주는 창호문이 더욱 돋보인다. 하늘에 붕 떠있는 것만 같던 고층 아파트에서 지내다 한옥에서 잠을 자니 마치 등을 땅바닥에 붙이고 있는 것 같다.
◆편하게 잠들고 아침 일찍 깨어난 고택
이튿날 아침, 송소고택(松韶古宅) 관리인의 안내로 집안을 둘러본다. 고택의 구조를 자세히 살피는 일은 고택에서 단지 하룻밤 묵어간다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 그건 바로 건축 당시의 사회상황, 집주인의 철학, 그리고 집을 지은 옛 장인들의 지혜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송소고택의 내력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이 집은 조선 영조 때의 만석꾼인 심처대(沈處大)의 7대손인 송소(松韶) 심호택(沈琥澤)이 1880년(고종 17년)경에 지은 대저택이다. 조선시대 궁궐을 제외한 일반 사가는 법도에 따라 아흔아홉칸 이하로 제한했다. 따라서 송소고택은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느 대갓집보다도 규모가 크다.
송소고택은 터 잡고 있는 마을 이름을 따서 ‘덕천동 심부자댁’이라고도 한다. 심처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9대 연속 2만석꾼을 배출했는데, 조선 8도 어디를 가나 자기 땅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영남 최고의 부호 집안이다.
덕천동 심부자댁 주인은 청송을 관향으로 삼는 청송 심씨다. 청송 심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조선 최고의 명문가. 조선왕조 500년을 통해 그야말로 쟁쟁한 권세를 누린 상류층으로 이 나라의 정계를 주름잡던 정승 13명, 왕비 3명, 임금의 사위인 부마 4명을 배출하는 등 조선 10대 명문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청송 심씨의 가계를 살펴보면 청송 등 영남지방에 기반을 둔 심씨들은 재력은 있으되 벼슬과 인연을 멀리했다. 청송 심씨는 시조 심홍부(沈洪孚)의 증손에서 크게 둘로 갈린다. 덕부(德符)와 원부(元符) 형제가 있었는데, 형인 덕부는 이성계를 도와 좌의정을 지내면서 자손들은 대대로 서울에 살면서 벼슬을 했고, 동생 원부는 두문동에 은둔하면서 자손들에게 이씨의 녹을 먹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다. 형제의 길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현재 청송에 살고 있는 이들을 비롯해 영남 일대에 퍼져 살고 있는 청송 심씨 대부분은 동생인 원부의 후손들이다.
◆건축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는 고택
대갓집의 위용을 자랑하는 솟을대문부터 시작한 설명은 행랑아범이나 과객이 머물던 행랑채를 거쳐 헛담으로 이어진다.
“큰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지은 이 담을 헛담이라고 합니다. 안채에 기거하는 아녀자들이 대문을 드나들 때 사랑채에서 잘 보이지 않게끔 일부러 만든 담이지요. 그래서 내외담이라고도 하지요.” 이처럼 고택은 담장 하나로도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던 조상의 지혜가 잘 드러나 있다.
안주인과 아이들이 머물던 안채를 구경하고, 집안의 바깥주인이 머물던 큰사랑채를 왼쪽으로 돌아가면 뒤란에 굴뚝이 나지막하다. 이 굴뚝에도 장인의 지혜가 있다. 굴뚝의 연기가 그냥 하늘로 퍼지지 않고 처마 밑을 따라 집을 한바퀴 돌면서 건물을 소독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정말로 특별히 청소하지 않아도 처마에 거미줄도 생기지 않고 벌레도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뒤란에서 안채로 이어지는 담장엔 눈여겨보지 않으면 존재를 모를 만큼 작은 구멍이 여러개 있다. “이건 바로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집안에 갇혀 있어 밖 사정을 잘 알 수 없었던 아녀자들을 위한 관찰용 구멍이랍니다. 그런데 그냥 직선으로 뻥 뚫렸다면 안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밖에서도 안이 잘 보일 테지만, 각도를 이렇게 사선으로 지혜롭게 조절하여 밖에선 안쪽이 잘 안 보이지요.” 정말 밖에서는 안쪽이 잘 안 보이는데, 안에선 바깥 쪽 동정이 눈에 쏙 들어온다.
시집 갈 나이의 딸이 머물던 별당도 궁금한 공간이다. 마당에서 별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 땐 문소리가 '끼이익'하고 유달리 크게 들린다. 이처럼 다른 문보다 여닫는 소리가 훨씬 큰 까닭은 별당으로 누가 드나드는지 잘 알아채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과년한 딸이 머무는 공간을 지키기 위한 지혜인 것이다.
이처럼 일반 사가에서 가장 큰 규모인 아흔아홉칸짜리 송소고택은 솟을대문, 행랑채, 사랑채, 안채, 별당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유기적인 연결성은 물론이고, 헛담, 굴뚝, 아궁이, 창살 등에서도 옛 선현들의 지혜로운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런 고택에서 보내는 하룻밤. 정말 특별하다. 물론 숙박을 하지 않아도 집안을 둘러볼 수 있다.
여행정보
●교통 서울→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서안동 나들목→34번 국도(영덕 방면)→진보→31번 국도(청송 방면)→송소고택(파천면 덕천리) <수도권 기준 4시간 소요>
●별미 달기약수터 주변엔 경남식당(054-873-4859), 서울여관식당(054-873-2177), 달기약수촌(054-873-2662) 등 약수백숙을 차리는 식당이 많다. 달기약수백숙 2만5000원, 오리백숙 3만원. 진보면에 있는 신촌약수탕에도 약수백숙을 차리는 식당이 여럿 있다.
●숙박 경북 청송의 송소고택은 일반 시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흔아홉칸짜리 대저택이다. 사랑채와 행랑채, 안채 등 대부분의 방을 일반에 개방한다. 하루 숙박비(2인 기준)는 행랑채 4만원, 사랑채 5만~9만원, 안채 5만~9만원. 독립된 별채는 18만원이다. 1인 추가 성인 1만원, 초중고생은 7000원, 미취학 아동은 무료. 아침 식사도 가능하다. 1인분 6000원. 점심 저녁은 제공하지 않는다. 예약 전화 054-873-0234~5 www.songso.co.kr
●참조 청송군청 문화관광과 054-873-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