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레랑스 혹은 모럴리스트...프랑스 영화 속 매력찾기
파스텔 톤으로 그린 인간 심연의 性情
데이트 코스, 비오는 날 분위기 잡고 싶을 때, 이별하고 혼자이고 싶을 때,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을 때…영화는 더없이 훌륭한 핑계의 도구가 된다. 연인과 함께 공포영화를 보면서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기도 하고, 울고는 싶은데 그 변명거리가 마땅치 않을 때 슬픈 영화 한편으로 속이 후련할 정도로 눈물을 흘리고 나오기도 하고, 솔로인 친구들과 로맨틱 코미디로 연애의 기술을 배워보기도 한다. 영화가 지닌 '일곱빛깔' 매력이다.
이렇듯 일생일대의 중대사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심심풀이 땅콩이라고 하기에는 우리 일상에 너무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 '영화'는 도대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처음 만들어 진 것일까.
1894년 프랑스에서 뤼미에르라는 성을 가진 두 형제가 45초의 짧은 시간동안 공장 노동자들의 퇴근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내면서 영화는 처음 세상에 태어났다. 비록 지금의 영화처럼 스토리를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1초에 14개의 화면을 연결해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뤼미에르(Lumiere)는 프랑스어로 '빛'을 뜻하는데, 영화를 '빛의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우연적으로 영화를 탄생시킨 사람의 이름과 일치한다.
그 후 최초의 극영화가 탄생된 것 역시 프랑스에서였다. 1902년 멜리에스가 <달나라 여행>이라는 영화를 제작했는데, 의도를 갖고 허구적으로 구성된 영화로는 이 달나라 여행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본고장 프랑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 '프랑스 영화'라고 하면 고개를 내저으며 '너무 심미적고 말이 많아 머리가 복잡해.'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많은 프랑스영화들이 말 많고 머리 아프게 만드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 대부분이 쾌활하고 화려한 분위기의 해피엔딩을 지향한다면, 프랑스 문화의 큰 특징 중 하나가 '모랄리스트(moraliste)', 즉 '인간성을 탐구하는'데에 중점을 두고 있어 프랑스 영화는 대부분 중후하고 심오한 얘기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이 프랑스 영화에 대해 어려워 하거나 거리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프랑스 영화의 속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온통 매력투성이인 것을 발견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프랑스 영화 싫어요!'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흥미롭고 의미있는 장르별 프랑스 영화 몇편을 소개한다.
#Anime애니메이션
-Le prince et la princesse '왕자와 공주' (2000, 미셸 오슬로)
'왕자와 공주'라는 다소 상투적이지만 이상적인 제목의 이 애니메이션은 실루엣 기법을 이용하여 개봉 당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소심하고 겁이 많지만 마법에 걸린 공주를 구하기 위해 111개의 다이아몬드를 찾으려는 왕자, 순수하고 진실 된 소년의 무화과에 감동받은 거만한 이집트 여왕, 마녀의 성을 무너뜨리려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겸손한 자세로 마녀의 성에 초대받아 사랑에 빠지는 청년, 어리석은 도둑과 힘이 넘치는 노파, 살인을 즐기는 미래여왕과 그녀의 고독을 치유해준 조련사, 마법의 키스로 온갖 동물로 변하게 되는 왕자와 공주' 이렇게 총 여섯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가 주인공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일어나는 간단한 듯 복잡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통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미래의 남자와 여자의 관계와 고독'에 대한 고민을 해보도록 만든다. 환상적인 색의 조화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Drame드라마
-Les choriste '코러스' (2004, 크리스토프 바라티에)
단조로운 색채와 뛰어난 표현력을 지닌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직후 'fond de l'etang' 우리말로 '연못의 밑바닥'이라는 이름의 기숙학교에서 일어나는 마티유 선생과 그의 제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음악으로 시작하여 음악으로 완성되는 사제간의 교감을 추억하는 이야기이다. 액자형식을 품고 있는 이 영화를 볼 때에는 마티유 선생의 진심이 제자들을 얼마나 많이 변화시킬 수 있었는가에 주목을 해야 할 것이다. 영화 속 음악때문에 열혈 마니아들이 생겨났을 정도였다. 프랑스의 정신을 상징하는 똘레랑스(toleramce·관용)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Action액션
-Taken '테이큰' (2008, 피에르 모렐)
2004년 영화 '13구역'으로 데뷔한 피에르 모렐 감독의 영화이다. 얼마 전 피에르 모렐 감독의 새 영화 'From Paris with love'가 개봉되기도 했지만, 테이큰의 '딸을 향한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과 책임감'을 그린 이야기가 인간성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도록 만든다.
파리로 여행을 갔지만 인심매매 범들에게 납치를 당한 딸을 구하기 위해 그들과 맞서 싸우는 전직 특수요원 아버지의 액션을 그린 영화다. 프랑스영화라는 것을 모르고 본다면 할리우드 액션으로 착각하기 쉬울 정도로 영화의 분위기나 흐름이 기존 프랑스 영화에 비해 덜 무겁다. 액션이나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꼭 맞는 영화이다.
#Amour멜로
-Un homme et une femme '남과 여' (1966, 클로드 를르슈)
'멜로영화의 전형,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이 이 영화를 말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남자와 여자는 둘 다 배우자를 잃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우연히 아이의 학교에 갔다가 서로를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서울여대 정재곤 교수(불어불문)는 '수채화마냥 매우 순수하고 빼어난 영상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면들에 힘입어, 관객들 마음에 내재하는 사랑의 순결성을 일깨우는 좋은 영화입니다.'라고 이 영화를 표현했다. 그들의 사랑을 그리며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주옥같은 노래들이다. 단 오래된 영화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야 할 것이다.
#Comedie코미디
-Les Visiteurs '비지터' (1993, 장 마리 프와르)
프랑스의 코미디를 보면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웃으라는 거야?'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만큼 우리의 웃음 코드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비지터'는 보는 내내 프랑스 영화 특유의 복잡함과는 거리가 먼 웃을 거리를 제공해 준다.
서기 1123년 루이6세 시대, 용감한 투사 고드프로이가 실수로 예비 장인을 죽이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 마법사를 찾아가지만 또 다시 실수로 미래로 오게 되면서 겪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담고 있다. 신선한 발상과 재미로 무장한 영화를 감상하면서, 많은 것이 변화한 요즘 시대의 우리 모습까지 돌아볼 수 있다면 '비지터'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재미있고 감동적인 프랑스 영화는 많이 있다. 한국 영화나 할리우드 영화에만 국한되어 있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의 많은 영화를 통해 보다 더 넓은 눈을 갖게 되길 바란다. 조금 부지런하면 프랑스 문화원(www.france.or.kr)에서 상영하는 다양한 프랑스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한희준 대학생기자 miss.han88@y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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