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장에서 외환은행 매각만을 남겨둔 론스타가 장기전에 돌입할 태세여서 하나금융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론스타는 지난달 16일 외환카드 주가조작 1차 공판에서 양벌규정에 대해 위헌심판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론스타의 이 같은 움직임은 하루 빨리 외환은행을 넘기고 한국을 빠져나가야 하지만 주가조작에 순순히 항복한다면 해외에서도 사모펀드로서의 위상이 크게 떨어질 수 있어서다.

결국은 시간싸움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양벌규정은 종업원이 잘못을 했든, 법인이 잘못을 했든 똑같이 법인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외환은행의 경우 양벌규정 심리가 간단하지 않다. 주가조작의 주범은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인데 이를 종업원으로 볼지, 대표로 볼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유 전 대표는 론스타코리아의 대표인 것은 맞지만 론스타 본사에서 보면 종업원에 해당한다. 이에 대한 법조인의 해석도 분분해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법원의 판결과 론스타의 상고가 계속 이어진다면,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역시 차일피일 미뤄지게 된다. 결국 기간이 길어질 수록 외환은행을 인수하려고 거대 자금을 차입한 하나금융으로서는 상황이 불리해진다. 이런저런 이자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수를 못할 시에 리스크도 상당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사진/ 류승희 기자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재 론스타 적격심사와 양벌규정 위헌신청이라는 두 가지 법적 문제가 맞물려 있어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주가도 3만5000원을 최저가로 보는데 지금은 더 떨어질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인 상태"라고 말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하나금융의 주가를 회복하려면 론스타의 지분 인수가 성사되야 한다"고 덧붙였다.
 
◇ 하나금융, "외환은행 인수 못해도 대안 있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이 외환은행인수에 갖는 포부는 크다. 외환은행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발판으로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또 M&A로 시너지를 창출해 시장점유율도 1, 2위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 11월, 외환은행과 인수계약 이후 지금까지 제자리걸음 중이다. 얽힌 워낙 사안들이 많은데다가 금융당국이 총대 매기를 거부하며 시간만 보내고 있다.

갈수록 불확실성이 가중돼 하나금융으로서는 속이 타들어가는 상황이다. 앞으로 론스타 대주주 적격심사와 양벌규정 위헌 신청 등 법적 문제들이 해결되려면 1~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매입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채 1조1476억원을 발행했고, 1조3353억원을 증자했다. 또 하나은행으로부터 2조2059억원을 배당 받았다. 론스타와 인수계약한 금액 총 4조6888억원을 확보한 것이다.

이렇게 실탄을 확보했지만 외환은행 인수가 물 건너가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우선 회사채 발행으로 인한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다. 금리가 약 4.5%대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하나금융 측은 연간 약 516억원을 이자 비용으로 지출해야한다. 외환은행 인수가 장기화로 갈 가능성이 높아 이러한 이자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황성훈 하나금융 팀장은 "론스타와 큰 틀에서의 협의는 마쳤으나 세부적인 조율만 남아있다"며 "(론스타 심리가)길게는 1~2년 걸릴 수도 있지만 외환은행 측과 협의한 내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황 팀장은 또 만에 하나 외환은행을 인수하지 못할 경우의 시나리오도 세워져 있음을 강조했다.

눈앞까지 온 인수가 선뜻 되지 않자 시장 상황도 좋지 못하다. 하나금융 주가 역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승유 회장은 지난 5월 긴급 이사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외환은행 인수에 실패할 경우, 해외 금융기관을 인수할 수도 있고 비은행부문을 강화할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 회장은 또 "외환은행 인수가 무산되면 주주 가치 훼손을 막기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 하나금융 발목잡는 론스타
 
하나금융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론스타가 대주주 적격심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고, 양벌규정 위헌 신청에서 위헌 판정이 나서 론스타에는 무죄 판정이 나는 것이다.  반대상황이 된다면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는 물건너 갈 가능성이 높다.
 
대주주 적격심사에서 산업자본으로 판명이 날 경우 6개월 내에 지분의 10%를 매각해야하는데 이 지분을 하나금융이 매입할 수 있을지 보장할 수 없다. 또 양벌규정이 인정되면 하나금융과 맺은 계약 자체가 파기될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외환은행의 주가도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도 투자자의 불안을 야기하는 요소다. 
하나금융이 론스타와 인수 계약을 할 당시 주가는 1만2000원~1만3000원에 거래됐다. 인수가 연기된 6월말 현재 주가는 9000대로 하락했다. 
 
이런 불안이 가중되자 국제 신용평가사 S&P는 최근 외환은행을 '긍정적 관찰 대상'에서 '안정적'으로 등급을 낮췄다. S&P는 "앞으로 3개월 이내에 하나금융의 성공적인 외환은행 인수가 불확실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진/ 류승희 기자

◇금융당국의 우유부단도 질타 대상

'변양호 신드롬'이란 말이 있다. 경제 관료들이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정을 미루는 것을 말한다. 2003년 론스타에 외환은행 매각을 결정했다가 헐값매각 혐의로 기소된 변 전 재경부국장을 빗댄 표현이다. 이 변양호 신드롬은 6월12일,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도 다시 한 번 나타났다. 금융당국이 적격성 판단과 지분매각 승인 결정을 무기한 연기한 것이다.

매각 기한이 길어질수록 론스타는 배당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챙기게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당국이 결정을 연기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처음 론스타에 여러 특혜를 줬던 당국이 이제와서 전혀 새로운 잣대를 들이대니 내부적으로도 판단이 서지 않을 것"이라며 "애초에 외국 투자자를 유치할 때 면밀히 따져 보지 않고 시작한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꼬집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에 가장 큰 장애물은 불확실성"이라며 "금융당국이 나서야 할 때 뒷짐만 지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