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한국 미술시장은 여전히 침체를 보였다. 글로벌 미술시장이 각종 신기록을 만들어 내며 활력을 되찾은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 미술시장에서도 경매 낙찰률이 상승하고 인기작가의 그림값은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미술시장은 전반적인 침체를 면치 못했다. 전문가들은 미술시장 저변 확대와 미술작품의 다변화, 기업과 정부의 미술시장 육성을 위한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상반기 미술시장 374억원…작년만 못해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월간 아트프라이스와 함께 조사한 상반기 국내 미술 거래량 분석 자료에 따르면 9곳의 미술품 경매회사에서 거래된 총거래액은 374억1291만원으로 나타났다. 낙찰 작품 수는 3536점이었다.

협회는 서울옥션, K옥션, 꼬모옥션, 옥션단, 에이옥션, 마이아트옥션, 아이옥션, 헤럴드아트데이옥션, 썬옥션 등 활발한 미술품 거래가 이뤄지는 경매사 9곳의 경매 결과를 분석했다. 서울옥션의 경우 지난해 153억6700만원 어치의 미술품을 거래했고 K옥션은 144억5300만원어치를 거래했다. 두곳의 총거래량이 전체 거래의 약 80%를 차지했다.

올 상반기 미술시장 규모를 지난해와 비교하면 더욱 초라해진다.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 규모는 920억원 수준이었다. 최고 호황기였던 2007년엔 1900억원을 웃돈 바 있다. 금융위기를 겪었던 지난해에 비해서도 나아진 게 없고 2007년 실적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시장규모를 보이고 있다.
 

박수근 '아이를 업은 소녀와 아이들'
Oilon canvas_45.5 x 38cm

◆ 최고가 기록, 샤갈의 '부케'…김환기 인기↗


상반기 국내 낙찰가격 기준 1위는 17억원에 낙찰된 마르크 샤갈의 '부케'였다. 서울옥션이 지난 6월 메이저 경매에 부친 작품이다. 같은 날 경매에 나온 박수근의 '아이를 업은 소녀와 아이들'도 15억2000만원에 낙찰돼 상반기 최고가 기록 2위를 차지했다.

야요이 쿠사마의 대형 작품 '인피니티스타스'는 12억원에 낙찰돼 3위에 랭크됐고 중국작가 정판쯔의 '자화상'도 9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각각 K옥션이 주관한 메이저 경매에서 팔린 작품들이다.

상반기에 가장 인기를 끈 작가는 김환기였다. 김환기는 상반기 10대 낙찰가 작품 중 4개에 이름을 올렸다. K옥션이 3월과 6월 경매에 부친 김환기의 작품은 5억~6억2000만원에 팔렸다. 이외에 르누아르의 '장미꽃다발'과 작자미상의 '관운장도' 등이 높은 값에 팔렸다.

작가별로 낙찰 총액을 보면 역시 김환기가 가장 많이 팔린 작가였다. 김환기 작품은 24점이 출품돼 20점이 낙찰됐다. 낙찰 총액은 38억원에 달했다. 뒤를 이어 박수근이 30억원어치, 이우환이 23억원어치, 야요이 쿠사마가 18억원어치를 기록했다.

미술시가감정협회는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박수근의 작품이 희소해지면서 거래 빈도가 낮아졌다"며 "블루칩 작가인 김환기의 작품이 거래량과 낙찰가를 높이며 인기를 끌었다"고 평가했다.

◆ 글로벌 시장은 회복했는데…

한국시장과 대조적으로 상반기 글로벌 미술시장은 활황을 보였다. 올 상반기 글로벌 미술시장에선 각종 신기록이 쏟아졌다. 지난 5월 뉴욕에서 진행한 크리스티 경매는 낙찰률 87%를 기록하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낙찰률을 보였다. 경매 규모는 6억1600만달러에 달했다. 소더비도 5월 경매에서 7억달러(한화 약 8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두 회사 모두 역대 최대규모의 경매를 성사시켰다.

이외에도 글로벌 미술시장에선 풍성한 기록들이 쏟아졌다. 5월 소더비 경매에서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가 1억1992만달러에 팔리며 미술 경매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종전 최고가 기록은 2010년에 팔린 피카소의 '누드 녹색잎과 상반신'이었다.

'절규'의 새 주인은 미국의 갑부 블랙 리온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를 모았다. 블랙 리온은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인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의 멤버이자 뉴욕메트로폴리탄 미술박물관과 현대미술박물관 이사다. 블랙 리온은 부모의 영향으로 10살부터 미술품을 사 모았다고 한다.

경매를 통하지 않은 사적 거래에서도 최고가 기록이 나왔다. 카타르 왕족인 알마야사 공주는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을 2억5000만달러(약 2800억원)에 구입했다. 이 그림은 카타르가 재개관을 예정하고 있는 국립미술관에 걸릴 예정이다.

중국 미술시장도 급부상해 글로벌 미술시장의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작가들의 작품이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최고가 기록과 최대 규모 거래량을 보이기도 했다.
 


◆ 스캔들의 연속, 한국 미술시장

한국 미술시장과 글로벌 미술시장이 대조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미술시장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다. 올 상반기 한국 미술시장은 스캔들의 연속이었다. 이번엔 영업정지를 당한 저축은행 스캔들에서 미술품이 등장했다.

지난해 말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을 관리하는 예금보험공사는 수십점의 미술품을 압수했다. 예보는 이들 작품을 서울옥션에 매각 의뢰해 '예보콜렉션'이란 웃지 못할 이름이 붙여졌다. 예보콜렉션은 올 하반기에도 미술시장에 나올 예정이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도 미술품 구매에 열을 올렸다. 김찬경 회장은 고객의 돈 100억원을 빼돌려 미술품 23점을 산 것으로 전해졌다. 앤디 워홀의 '플라워'를 비롯해 박수근의 '노상의 사람들'과 같은 고가의 작품들이다.

미술품이 각종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미술을 바라보는 인식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기업이나 정부가 미술문화사업 지원에 나서려 해도 선뜻 나서기 힘든 이유다.

이외에 고가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한국 미술시장의 침체 요인 중 하나다. 미술품 거래 양도세법은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미술품 양도세가 도입되면 1억원 이상 고가 미술품에 대해 차익의 2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미술품에 양도세가 부과되면 신분 노출을 꺼리는 미술 애호가들이 미술시장을 떠날 것이란 게 미술계의 중론이다.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해 저변을 넓혀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를 위해 미술 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미술시장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또 미술을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고 육성하는 정부의 지원도 절실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