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밀고 가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장이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정길수 IBK기업은행 과장(46·부산 신평동지점)이 걸어온 길은 한편의 파란만장한 드라마와 같다. 1991년 보일러기사로 IBK기업은행에 입사해 정식 은행원이 되기까지 꼬박 16년이 걸렸다. 지난 2007년 마흔을 목전에 두고 늦깎이 행원이 된 것이다.

같은 은행에 근무한다 해도 은행원과 여타 직군(기술직 등) 간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행원이 아닌 기타 직군일 경우 은행 업무의 중심이 되는 은행원을 동경하기 마련이다.


정길수씨 또한 그러했다. 가족들도 주변지인이 '은행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답을 주저하던 때가 있었다. 전문대학에서 전기학과를 졸업하고 별정직 보일러기사로 은행에 들어간 그는 "은행 지하실에서 보일러기사로 근무할 때 행원이 돼 은행의 주된 업무를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고 떠올린다.


 
그러던 그에게 행운의 여신이 손을 내민 것은 5년여 전. 운전기사, 보일러기사, 청원경찰 등 별정직 직원들이 그간 해오던 일이 용역회사로 아웃소싱되면서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IBK기업은행이 별정직 직원들의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 한편, 정규직인 행원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다만 은행원이 되기 위해서는 고객 상담에 적합한 자질을 인정받아야 했다. 그는 5급 행원 전환시험이 생기자 바로 도전해 오랜 꿈을 이뤘다.

행원이 된 뒤에는 그야말로 승승장구. 행원(5급)에서 과장(4급)이 되기 위한 최소연차인 5년여 만에 당당히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주경야독이 빛을 발한 결과였다. 증권펀드투자상담사, 부동산펀드투자상담사, 파생상품펀드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생명보험대리점자격증 등 무려 5개의 자격증을 따내며 금융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을 높인 점을 인정받아 은행장 표창을 비롯해 격려상 등을 수차례 수상했다. 그리고 한차례 고배를 마신 끝에 지난해 은행 내 책임자시험도 통과했다. 
 
◆ 보일러공에서 5년여 만에 금융전문가로 우뚝 

"요즘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하는 젊은 행원들은 다 똑똑하잖아요. 그 사람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건 열정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의 무기는 남다른 열정이다. 은행 업무 시간 외에도 그는 항상 전문성 향상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운전할 때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으로 금융관련 사이버동영상을 받아보고, 퇴근 후 휴식시간에는 실내용 자전거로 운동을 하면서 사이버학습을 한다. 


 
"우선 담당자가 잘 알아야 고객에게 만족스러운 상담을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업무시간에 접한 것 중 애매한 부분은 근무 외 시간에 책이나 사이버 교육자료, 경제신문 등을 보며 보완합니다."
 
행원이 된 뒤 그가 맡은 업무는 대출상담. 대출은 상담 후 곧바로 자금이 지급되는 것이 아니어서 차근차근 준비해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일을 배우는 시기에 큰 도움이 됐다. 대출의 경우 아무리 서비스가 좋아도 금리수준이 높으면 고객만족이 낮아지기 때문에 번거롭더라도 조금이나마 감면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또한 각종 정책자금 등 외부지원 안내도 빠뜨리지 않는다.

"앞으로 여신전문가가 되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어려운 업체들이 잘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고객의 입장에서 일을 처리하면 고객들이 고맙다고 계속 찾아오고, 또 다른 고객을 소개해주는데 그런 점이 궁극적으로 은행을 위하는 길인 것 같다고 덧붙인다.

이처럼 비전공분야에서 특유의 열정과 뚝심으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성공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현재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것일 뿐 지점장이 되겠다는 식의 목표는 따로 없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늘 머리에 맴돈다'는 그는 타고난 성실파다.

기실 그의 성실성은 보일러기사 시절부터 두드러졌다. 보일러 관리가 주업무였음에도 친절한 고객응대로 지역 내에 소문이 자자했다. 보일러 관리가 뜸할 때는 창구에 올라와 틈틈히 운전이나 교환 등의 지점 잡무를 도우며 고객과 직원들 사이에 신뢰를 얻었다.

과장 승진 발탁 후 부산 개금동지점에서 신평동지점으로 근무지를 옮길 때도 그가 회사에 요청한 사항은 단 하나였다. 일이 많은 곳으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일하러 나왔는데 일이 많아야 하지 않겠냐"며 웃는다.

그래서 좌우명도 간결하다. '매순간 열심히'다. 정씨는 어려운 근무환경에서 신음하는 젊은이들에게도 이를 강조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며 "앞이 잘 안 보이는 시기에도 묵묵히 열심히 하다보면 길이 찾아지고, 도와주는 사람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 IBK기업은행의 스펙파괴 인사 '눈길'
 
지난 1월 단행된 IBK기업은행 인사에서는 정길수 과장 외에도 '스펙파괴'의 주인공이 여럿 배출됐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IBK기업은행의 파격적 인사원칙이 적용된 것.
 
청원경찰 출신으로 지난해 7월 4급에 발탁된 김용술 과장(51·등촌역지점)이 6개월 만에 다시 출장소장(3급)으로 승진했다. 6개월 간 무려 4차례나 '신규고객왕'에 오르는 등 입지전적 영업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이는 통상적인 승진기간을 8년 이상 단축한 것이다.

이와 함께 창구텔러로 입행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후 영업점 직원을 가르치는 현장교수로 맹활약하는 등 '외환 고수'가 된 권인영 계장(35·삼성동지점)이 통상 일정보다 2년 앞서 승진의 기쁨을 맛봤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