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까지 이긴 30년 주방생활… "앞으로 30년이 더 중요"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날 잠을 설치고, 과자와 음료수는 가방에 잘 들어 있는지 또 한번 들여다보잖아요. 저는 항상 그런 마음으로 요리합니다."

박효남 밀레니엄 서울힐튼 총주방장(상무)은 싱가포르 세계요리대회를 포함한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 대통령 표창, 프랑스정부 훈장 등을 받은 최고의 스타셰프 중 한명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그가 있기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놀랍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의 첫 직장은 하얏트호텔이었다. 주방보조로 하얏트호텔에 입사할 당시 그가 이력서에 적은 것은 초등학교 졸업, 중학교 졸업, 조리사 자격증 세줄뿐이었다. 어린 시절 형편이 좋지 않아 연탄가게를 시작한 아버지를 도왔고, 또 3명의 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자연스레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그러다보니 내세울 만한 기술이 없었던 그는 학교 앞에 위치한 수도요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처럼 남들과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그는 당시를 아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기술을 배워서 부모님을 편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한다. 또 그는 스스로 스펙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 뿐만이 아니다. 박 총주방장은 오른손 검지 두마디가 없다. 8살 때 친구 집에 놀러가 소 여물을 주다가 다쳤다. 요리를 위해서는 칼을 비롯한 각종 조리기구를 손에 쥐어야 하는데 치명적인 핸디캡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시크'했다. "나머지 손가락 아홉개가 멀쩡하니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박 총주방장의 요리실력은 이미 한국을 벗어나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다. 밀레니엄 서울힐튼의 프랑스식당 '시즌즈'가 미식가들이 선호하는 곳 중 하나로 뽑힌 것도 외국요리를 그대로 따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내걸 만큼 새로운 요리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사진_류승희 기자

◆ 재능은 만들어가는 것

어떻게 보면 박 총주방장은 부족한 스펙으로 인해 많은 시련을 겪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그를 보면 스펙은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요리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천재는 아닐까. 엄밀히 말하면 그는 노력파이다. 그는 요리를 배우게 된 계기도 특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냥 수도요리학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중 남자들은 머뭇거리는데 여자들은 떳떳하게 들어가는 걸 보고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당시에는 남자가 요리를 배운다는 게 자랑거리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요리에 소질도 없었다. 그래서 주방보조 일을 할 때도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히다보니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많았고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야 했다. 그리고 요리에 대한 열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리를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계속 새로웠어요. 그러다보니 제가 쏟아부을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을 요리하는데 쓴 것 같아요."

올해는 박 총주방장이 밀레니엄 서울힐튼에서 근무한 지 꼭 30년째가 되는 해다. 이 정도면 긴장을 풀어도 좋으련만 그는 여전히 바쁘다. "지금까지의 30년보다 앞으로의 30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사진_류승희 기자
 
사진_류승희 기자
 
◆ 먼저 웃음 주면 되돌아온다

"밀레니엄 서울힐튼에 들어오고 몇년 안 됐을 때 제가 만든 요리가 주방으로 되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요리 재료가 잘못된 줄 알고 다시 만들었지만 여전히 고객은 퇴짜를 놓았죠. 결국 고객에게 직접 물어봤더니 간이 맞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1980년대 중반, 고객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기본 중에 기본임에도 그는 스스로의 입맛에 맞춰서 요리를 만들었다. '내가 맛있으면 다른 사람도 맛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확실히 알게 됐다. 고객마다 입맛이 다르다는 사실을. 그는 그 뒤부터 고객들의 입맛을 수첩에 꼼꼼하게 적어놨다가 다시 찾아왔을 때 그 고객의 입맛에 맞춰서 요리를 만들었다.

박 총주방장은 상대방에게 웃음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먼저 웃어주면 상대방도 웃어준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요리를 할 때도 그는 고객에게 먼저 한발 다가간다. 그렇게 고객에게 맞추다보면 자연스레 인정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그는 모든 고객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부족한 스펙을 뒤로 한 채 성공신화를 쓰게 됐다.

그의 이름 앞에는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1983년 오픈 멤버로 입사한 이후 1995년 차장 승진, 1997년 부장 승진, 샐러리맨으로서는 '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사의 자리도 1999년에 꿰찼다. 당시 38세였던 그는 업계 최연소로 승진한데 이어 2001년에는 힐튼 본사에서 부임한 외국인 주방장들의 전유물이었던 총주방장의 자리에 한국인 최초로 임명됐다. 한국인이 총주방장으로 임명된 것은 힐튼 인터내셔널 체인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 박효남 총주방장에게 배우는 '성공노하우'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라.
 끌려가지 말고, 끌고 가라.
 업무시간 외의 투자에 관대하라.
 과거보다 미래에 열성을 쏟아라.
 상대방보다 먼저 웃음을 건네라.
 재능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모든 일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라.


<주요 경력>
1996년 싱가포르 세계 요리대회 5개 부문 금상 수상/1999년 대우그룹 최연소 이사 승진/2001년 총주방장 승진/2001년 관광의 날 기념 '대통령상 표창'/2006년 프랑스 국가 농업공로 훈장 '메리뜨 아그리꼴'(Merite Agricole) 수상/2010년 스위스 다보스 포럼 '한국의 밤' 총괄 조리팀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