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4시49분. 서울 종로구 중학동 The-K 트윈타워 A동에 위치한 우리카드 본점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내정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금융 회장 내정자로 발탁된 후 처음 모습을 보인 그는 다소 겸연쩍어하면서도 시종일관 밝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평소처럼 겸손한 자세로 임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덕담을 주고 받았다.
말단 행원에서 국내 금융지주 회장에 오른 첫 주인공. 그가 금융지주 '4대 천왕'에 오르면서 2만2000여명이 넘는 우리금융 및 계열사 직원에게 꿈과 희망의 발판을 마련해줬다는 게 금융계의 공통된 평이다.
◆우리금융 민영화 해결사 발탁
이순우 회장 내정자가 우리금융 수장에 오른 것은 민영화 해결사로 가장 적격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는 36년간 우리은행에 근무하면서 내부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민영화를 앞두고 흔들리기 십상인 우리금융 조직을 다독이는 데는 이 행장이 가장 적임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 회장 내정자는 기자회견에서 "(내가) 민영화에 걸림돌이 된다면 언제라도 물러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이어 "10여년 간의 숙원사업인 우리금융 민영화를 조속히 이뤄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민영화 원칙에 대한 로드맵도 공개했다. 그는 ▲빠른 시일 내 매각 ▲투입된 공적자금 최대한 회수 ▲금융산업 기여 등 3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또한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를 위해 "그룹 계열사 간 시너지 확대가 필요하다"면서 "계열사의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고 선진화된 그룹 지배구조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성공적인 민영화를 위해 계열사 인사도 조만간 마무리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회장 내정자는 "회장이 모든 계열사를 통제하는 것보다 전문가 집단인 계열사 CEO들에게 맡기면 더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계열사 인사를 조속히 시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금융 회장과 우리은행장을 겸임한다. 정부의 우리금융 민영화 완성을 위해 사실상 그에게 올인한 셈이다.
이처럼 정부가 그를 강하게 신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회장과 행장 겸임의 경우 다른 후보를 회장에 앉히면 행장 선임 절차를 따로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 회장 내정자는 이런 절차를 생략한 채 곧바로 조직을 '민영화 체제'로 가동할 수 있다.
이팔성 회장에 비해 '정치색'이 옅은 점도 그의 장점 중 하나다. 대구고와 성균관대 법대를 나온 이 회장 내정자는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의 고교 선배, 정홍원 국무총리의 대학 후배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과는 뚜렷한 접점이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두터운 친분이 부각돼 '금융권 4대천왕'이라는 별칭이 붙었던 이 회장과는 대비된다.
송웅순 우리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장은 "이 회장 내정자는 금융업 전반에 폭넓은 경험과 식견을 쌓았으며, 소탈한 성품과 원만한 대인관계로 내부조직 장악력을 갖췄다"며 "가장 큰 현안인 우리금융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친화력·화합의 大家, '4대 천왕'에 오르다
이순우 회장 내정자는 친화력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금융은 물론 정치계의 '마당발'로 통한다. 또한 배려심이 깊은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이 회장 내정자를 처음 만난 사람도 마치 수십년을 알고 지낸 것처럼 허물없는 사이가 될 정도로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게 지인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직원들과의 유대관계도 끈끈하다. 특히 그의 강력한 스킨십은 직원들과의 소통으로 연결된다. 이 회장 내정자는 직원 회식자리마다 참석해 직원들을 독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늘 웃는 얼굴로 직원들의 등을 토닥이는 것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가 이처럼 친화력과 겸손·전문성을 갖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낙제'가 오늘날의 그를 만들었다.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 입시까지 모두 낙제했다. 심지어 재수학원 시험에도 떨어졌다. 그는 재수를 했음에도 목표한 대학에 낙방하고 후기 지원대학인 성균관대 법학과에 들어갔다.
그는 은행장 시절 한 대학교 특강에서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이 웃었기 때문"이라며 "많이 웃고, 욕도 잘하고, 약간 모자란 놈처럼 보인 게 비결"이라고 전했다.
소탈하고 격의 없는 농담에 따르는 직원들도 많다. 노조와의 관계도 원만하다는 평이다. 특히 우리금융 회장에 도전하기 위해 서류를 낸 직후엔 이팔성 회장과 이종휘 신용회복위원장, 이덕훈 키스톤PE 대표에게 일일이 '신고'할 정도로 윗사람을 깍듯이 모신다.
그렇다고 모든 상황을 웃음으로 넘기는 것은 아니다. 그는 말단 행원시절부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인물로 유명하다. 임직원들이 입바른 소리를 할 때,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라며 1등 은행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 간부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행장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그는 "이 과장 같은 사람이 바른 말을 해줘야 한다"며 비서실로 발령냈다는 후문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과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신 위원장은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과장으로 일하며 우리은행 기업금융단장으로서 실무를 맡았던 이 회장 내정자와 손발을 맞췄다.
십여년이 지나 다시 만난 금융위원장과 우리금융 회장 내정자. 두 인사의 호흡이 앞으로 우리금융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내게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프로필
▲경북 경주 ▲대구고 ▲성균관대 법학과 ▲상업은행 홍보실장 ▲인사부장 ▲기업금융단장 ▲우리은행 경영지원본부장 ▲개인고객본부장 ▲수석부행장 ▲우리은행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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