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한국시장에 진출한 외국계은행들이 잇따라 지점 축소에 나서고 있다. 금융환경 악화 등의 영향으로 영업실적이 떨어지고 대면영업 비중이 감소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이에 따라 조만간 대규모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외국계은행의 한국철수설이 현실화 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외국계은행 측은 지점 축소는 사업부진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일 뿐 한국철수설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9월말까지 22개의 지점을 폐쇄했다. 지난해 말 218개였던 지점수가 9월말 현재 196개로 줄어든 것. 이는 수익성 하락의 원인이 컸다. 씨티은행의 지난 3분기 총수익은 3537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5.3% 감소했다. 이 중 3분기 순이익이 279억원으로 전년대비 절반(53.3%) 이상 쪼그라들었다.
이처럼 수익성이 급감함에 따라 씨티은행은 서민보다는 자산가 위주의 마케팅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일부 외신에 따르면 마누엘 메디나 모라 씨티은행 세계 소매금융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업설명회(IR)에서 내년에 한국 내 사업을 주요 대도시의 최상류층만 상대하는 쪽으로 재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도 국내 영업점 30%가량을 축소키로 했다. SC은행의 지점은 현재 350여개. 이 중 약 100개를 줄여 250여개로 운영할 방침이다. 수익성이 높지 않은 SC캐피탈과 SC저축은행은 매각하기로 했다.
리처드 매딩스 재무이사(CFO)는 최근 "중장기적으로 한국지점을 축소하고 소비자금융부문도 철수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재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SC은행의 사업축소도 수익성 악화 영향이 크다. 또 금융업계 침체와 정부의 금융규제 강화 등으로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된다.
SC은행의 순이익은 지난 2010년 3438억원에서 2011년 2719억원, 지난해 241억원으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그나마 올 상반기 순이익은 1292억원을 기록해 작년보다는 올랐지만, 여전히 2010~2011년 대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HSBC은행 한국지점도 지난 7월 소매금융사업 철수를 공식화했다. HSBC은행은 지난 2007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점 방문 없이 온라인을 통해 가입하는 다이렉트 뱅킹을 선보인 바 있다. 당시 금융권에서 적잖은 화제를 몰고 왔으나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외국계은행이 대출수요 부진과 당국 규제로 인해 한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먹튀·자금유출 논란 확산
물론 실적이 고꾸라진 것은 외국계은행만이 아니다. 국내 토종은행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체되고 있다. 다만 외국계은행들이 쟁점으로 떠오른 이유는 국내 자본유출과 대규모 구조조정, '먹튀'(먹고 튀다의 준말) 논란 때문이다.
점포 축소와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생겨나는 수익이 미국과 유럽 등 해외그룹으로 유출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는 것. 현재 씨티은행의 본사는 미국 뉴욕에, SC은행의 본사는 영국 런던에 위치해 있다.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처장은 "금융환경이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계은행들은 여전히 많은 수익을 내고 있다"면서 "특히 국내은행에 비해 안정적이고 수익이 높은 분야에만 대출해주는 얌체 행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금융환경 악화를 핑계로 지점 축소를 강행하고 여기에 구조조정까지 나설 가능성이 높아 향후 적잖은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홍 사무처장은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영국 등 외국계은행 본사에 국내자금이 유출되고 있지 않은지 국세청과 금융당국이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라며 "한국에서 고수익을 내고 철수한다면 또다시 먹튀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 지금에라도 금융당국이 (외국계은행에 대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문화 이해하고 선진시스템 구축해야
그렇다면 외국계은행들이 한국시장에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은행 스스로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데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또 수익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정서에 맞는 차별화된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권에서는 외국계은행이 한국시장에 진출한 초기만 해도 글로벌 금융기관의 선진화된 금융기법을 국내에 소개하고 차세대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금융권 내부의 시각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외국계은행들이 글로벌 금융기관이라는 브랜드에 비해 한국 금융시장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면서 "선진금융의 서비스와 문화적 이해, 소통 부재 등이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조 연구위원은 "(외국계은행들이) 국내 영업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또 금융소비자와 접촉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지 생각해볼 문제"라면서 "어쨌든 모든 결과는 실적이 말해준다. 실적이 좋으면 당연히 사업을 확장하고 지점도 늘리는데 지금은 반대로 가고 있다. 외국계은행이라는 특수성을 잘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철수설에 대해 씨티은행 관계자는 "사실과 무관하다"며 "앞으로 기업과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영업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SC은행 관계자 역시 "한국철수는 전혀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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