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개월. 올해 63세가 되는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가 100세가 되기까지 남은 개월 수다. 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14시간씩 4㎞ 속도로 걸으면 지구를 13바퀴 돌 수 있다. 지구를 돈다는 표현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면 이건 어떨까. 이 대표는 지금부터 100세가 될 때까지 24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1만시간을 투자하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100세가 될 때까지 남은 기간은 458개월, 시간으로 환산하면 33만5208시간입니다. 전공을 24번 바꾸고 전문가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죠."


이 대표가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100세까지 남은 기간을 세기 시작한 건 직장을 그만두기 3년 전부터다.

사진=머니위크 류승희 기자

"정년퇴직을 앞두고 30년 동안 몸 담았던 직장을 그만두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앱을 알게 됐는데 100세까지 남은 기간이 꽤 되더라고요. 고민 끝에 얻은 대답은 지금 하고 있는 전공을 계속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는 일이라는 건 바뀌지 않았죠."

그렇게 잘 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연결해 찾게 된 것이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다. 막연히 미래를 알아보는 일을 하자고 결심하던 어느 날 문득 '탐험'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 '미래탐험가'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포스코 산하 산업과학연구원인 '리스트'에 재직 중이었을 때도 명함에 '미래탐험가'를 새기고 다녔다. 2010년 리스트를 퇴직한 후 이듬해 포항공과대학교 철강대학원 교수를 그만두면서 미래탐험연구소를 설립했다.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 찾기
이 대표는 누구나 말하듯 "행복해야 잘 늙을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선뜻 하지 못하는 건 사회의 편견과 사람들의 눈을 너무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제가 처음 명함에 '미래탐험가'를 새겨 넣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두가지였습니다. 제 또래는 부러워했죠. '아, 저 사람은 새로운 일을 찾았구나'라는 눈빛이었어요. 그런데 아직 은퇴가 한참 남은 이들은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습니다. '저 사람은 뭐하는 건가' 했겠죠. 하지만 제가 연구원을 그만두고 미래탐험연구소를 설립해 이 일을 꾸준히 이어가자 그들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제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거죠."

현재 그는 생명과학, 인공지능기술, 에너지, 자원, 로봇 등 5가지 트렌드를 지속적으로 분석해 미래 세상의 변화를 살펴보는 일을 한다. 그리고 이 정보를 페이스북을 통해 포스팅하고 글을 써서 언론사에 기고하며 강연을 나간다. 이를 위해 각 분야에서 발표되는 논문을 매일 읽은 후 정리해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고 트렌드를 진단한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한정된 분야의 사람들만 아는 지식과 정보를 확장시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더 행복해진다고 덧붙였다.

"제 전 직장의 근속연수는 30년입니다. 어마어마하죠. 한 직장에서 30년을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니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인생은 길어요. 60살이 넘은 저도 앞으로 40년은 더 살 겁니다. 하물며 저보다 나이가 어린 젊은 사람들은 더 긴 여정이 남았죠. 그 시간을 건강하게 살려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 대표는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요소를 3가지로 요약했다. 사람이 그 첫번째다. 만나서 불편한 사람이 아닌, 즐겁고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라는 것이다. 다음은 장소다. 머리가 아프고 스트레스를 받는 장소가 있다면 그 곳은 자신과 맞지 않는 공간이다. 마지막은 일이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몸이 피곤하며 즐겁지 않다.

돌다리 너무 두드리지 마라
하루하루가 행복하면 늙는 것도 두렵지 않다는 게 이 대표의 지론이다. 반대로 고민과 걱정이 많으면 더 쉽게 늙는다고 말했다.

"늙음의 개념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나이를 먹는 것과 나이와 상관없이 삶에 치여 신체와 정신이 낡아버리는 늙음이 있어요. 후자의 경우 너무 고민이 많아서 발생하는 문제죠. 요즘 젊은 사람들은 걱정과 고민이 많잖아요. 간혹 한 아이를 키우는데 얼마가 들기 때문에 아이를 낳는 게 두렵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이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제가 미래를 탐험하지만 미래는 단정 지을 수 없거든요."

그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계획을 고착시킬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세상은 일자가 아닌 갈지자처럼 비틀비틀 간다는 것이다.

"세상은 아주 빠르게 변합니다. 5년 후에는 새로운 지식이 생겨나고 그에 따른 환경이 조성될 겁니다. 그러면 지금 세운 계획이 무용지물이 될 확률이 99%입니다. 제일 중요한 건 계획이 아니라 행동하는 겁니다. 오늘 10시간 계획하는 것보다 1시간 행동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오늘을 즐겁게 사세요."

아울러 모든 걸 내려놓으란다.

"저는 종교가 없지만 살아보니 불교의 가르침 중 하나인 '모든 걸 내려놓으면 마음이 편하다'는 말이 맞다는 걸 깨달았어요. 못 가진 걸 아쉬워하고 탐내다 보면 시간을 허비하고 불행해집니다. 제 친구들은 내로라 하는 대학교 교수고, 대기업 사장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거나 자격지심을 갖지 않습니다. 모임에도 당당히 나가 명함을 내밀죠. 그들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닐지 몰라도 얼굴은 항상 어둡고 찡그린 상태예요. 걱정과 고민이 많은 거죠. 저는 2002년 산 디젤차를 몰고 다니지만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너무 재미있습니다."

그는 이제 '2040아이언맨'을 목표로 살고 있다. 90살이 되는 2040년에도 40세의 정신을 유지하자는 다짐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합본호(제315·3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