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혜원 기자
몇주 전,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1층 주차장에 빈자리가 생겨 주차를 하고 내리는 순간 주차요원이 다급히 뛰어왔다. "고객님 이곳은 VVIP고객 전용 주차장입니다."

뒤늦게 주변을 살펴보니 국산 소형차는 기자의 차뿐이었다. 주차장 1층은 3000cc이상 되는 수입차 일색이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급한 마음에 무심코 빈자리에 주차했는데 '내가 못 올 곳을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상 1층에 주차공간이 있음에도 차를 돌려 20분 이상 대기한 후에야 지하주차장에 겨우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국내 백화점이 각종 서비스로 무장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서비스를 온전히 누리는 것은 VVIP고객뿐인 듯 보인다. VVIP고객은 백화점 전체 고객의 단 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주차장 6개 층 중 1개 층을 모두 VVIP고객에게 내주고 심지어 주차장이 텅 비어있어도 일반고객들은 얼씬도 못하게 하는 것은 과한 게 아닐까.

이런 대다수 고객의 소외감에도 백화점의 VVIP마케팅은 날로 정교해진다. VVIP고객을 위한 전용 라운지는 물론, 매장을 신규오픈하거나 세일을 열기 전 우수고객만 따로 초청해서 쇼핑기회를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백화점업계가 이렇듯 VVIP고객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짐작은 간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결국 지갑을 여는 것은 VVIP 고객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민들에게 아직 불황의 늪은 깊기만 한데 백화점의 실적은 점차 오르고 있다니 VVIP고객의 파워를 짐작할 만하다.


날로 강화돼가는 VVIP마케팅은 일본의 백화점과 비슷해져가는 모습이다. 일본의 백화점 역시 소수의 VVIP고객을 위한 마케팅 기법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이나 유럽의 백화점은 VVIP고객을 위한 특별한 마케팅이 없다. 한국에 파견된 한 이태리 명품업체의 지사장은 한국의 VVIP마케팅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 백화점의 VVIP마케팅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한마디로 "민주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들은 "특별한 서비스가 없다(Can retain customers but nothing special)"고 덧붙였다.

백화점업계는 해외직구(직접구입)족의 급증과 더불어 오는 3월부터 시작되는 정부 주도의 병행수입 활성화 방안으로 큰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백화점 고객층은 더욱 얇아질 것으로 보여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는 증권가의 분석이 잇따라 나오는 실정이다.

업계도 이를 알고 있다. 이미 수익성에서 한계에 다다른 백화점으로부터 눈을 돌려 아웃렛이나 온라인쇼핑몰로 사업을 확장하는 추세다. 따라서 백화점들은 지금라도 여전히 VVIP고객만을 위한 마케팅을 지속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나마 남아있는 '호갱님'들마저 떠나기 전에 말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합본호(제315·3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