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위축과 정부규제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업태는 단연 대형마트였다. 매출액 둔화뿐만 아니라 이른바 '골목상권 죽이기'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여론의 비판까지 감수해야 했다. 또 다른 대형점포 업태이면서 2011년까지 소비양극화 현상에 따라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던 백화점도 최근 합리적 소비트렌드에 따라 성장세가 둔화됐다.
대형점포의 부진 속에 소형점포와 무점포소매업도 소비위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중소상인 위주의 전문소매점은 감소세가 지속됐고 양호한 성장을 나타내던 편의점과 무점포소매업(홈쇼핑·인터넷쇼핑 등)도 둔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 성장둔화 속에 국경 넘나드는 치열한 경쟁
소매유통업의 전체 성장은 둔화됐으나 업종 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업종이나 국가 간의 경계를 초월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제한된 성장 속에서 기존의 영역과 방법을 고수해서는 우위를 점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업태의 변화를 통한 확장과 침투, 차별화가 활발해지고 있다.
백화점은 이제 '보세옷'을 판매하고 아웃렛사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편의점·드럭스토어·알뜰폰 등 다방면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편의점에서는 신선식품을 판매한다.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들은 온라인쇼핑몰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성숙기 시장에서의 확장 경쟁은 시장 중복을 동반하고 시장 중복은 경쟁을 심화시킨다. 이제는 경쟁업체뿐만 아니라 계열사의 점포도 경쟁상대가 되면서 자기잠식(카니발리즘) 우려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상인 간의 시장이 중복되면서 이른바 '상생'과 관련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확장과 침투는 소매업종 내부로 국한되지 않는다. 소매업체가 제조업이나 도매업에 진출하기도 하고 제조사에서 유통을 겸하기도 한다. 즉, 대기업이 식자재 공급업 등 도매업에 진출하고 유통업체는 의류브랜드를 인수하거나 PB용품을 출시해 제조업 영역에 진출한다. 반대로 의류·화장품업체는 SPA, 브랜드숍을 중심으로 유통 영역에 침투하고 있다.
또한 그 범위가 국내로 한정되지도 않는다. 홈쇼핑·마트를 중심으로 국내업체의 해외진출이 증가하고 있으며 해외업체의 국내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유니클로 등 해외 SPA(제조·유통 일괄 의류회사)가 들어오면서 명품뿐 아니라 중저가 의류시장에서도 해외브랜드의 국내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베이가 이미 옥션과 지마켓을 인수했으며 아마존의 한국진출도 예상되고 있다. 해외직구의 증가와 병행수입 활성화 정책으로 경쟁의 범위가 확장되는 추세다.
이러한 변화는 올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백화점·대형마트와 같은 기존 주력 업태는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규제 적합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외형성장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통업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다. 또한 점유율 하락은 교섭력 하락을 의미한다. 확장비용을 감내하고서라도 시장지배력을 유지하려는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확장은 시장중복에 의한 투자효율성 감소, 상생 이슈에 따른 정부규제 등의 우려를 동반한다.
◆ 커지는 투자부담 속 소비환경 빠르게 변화
과거 일본에서는 유통규제, 부동산 가치하락과 내수소비 침체, 가구구성원 감소와 같은 소비환경 변화 시기에 백화점·대형마트의 자리를 신유통업체들이 대체해 나갔다. 국내에서도 유통업체들에게 영향을 미칠 만한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첫째, 1~2인 가구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량구매보다 근거리 소량구매로 트렌드가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대형마트에는 부정적이겠지만 슈퍼마켓·편의점에는 긍정적인 변화다. 따라서 대형마트는 1~2인 가구에 적합한 가정간편식 판매를 활성화해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둘째, PC 인터넷뿐만 아니라 모바일 인터넷도 일상화됐다. 인터넷의 발달은 소비자와 유통업체간 정보비대칭을 감소시키고 오프라인 매장을 단지 쇼룸으로 전락시킨 쇼루밍 현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면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업태인 'e-커머스'와 'm-커머스' 시장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셋째, 기술의 발달과 지속되는 불경기로 합리적 소비 트렌드가 확산됐다. 가격을 낮추더라도 만족할만한 수준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SPA·브랜드숍·온라인몰·아웃렛 등 중저가 채널 확산, 제조 및 물류비용 하락과 정보공유 활성화는 중저가시장을 확대시키고 있다.
넷째, 이제는 규제 적합성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유통업 관련 정책의 실효성 논란은 존재하지만 상생이라는 가치 아래 정부의 규제정책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규제 친화적인 무점포소매업이 성장하고 편의점이 늘어났지만 최근에는 편의점도 규제대상에 포함되며 성장이 둔화됐다.
국내 소매시장에서도 국제 경쟁력이 요구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 할인 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에 한국 소비자가 관심을 가지는 시대다. 해외직구, 병행수입의 비중이 커질수록 국내 유통업체들의 가격결정력은 점차 약화된다. 그리고 해외 유통업체들의 지속적인 진출로 경쟁 강도는 높아지고 있다.
◆ 올해 '제한적 회복'의 열매는 어느 업체에 돌아갈까
올해는 정부의 내수 활성화 정책과 국내외 경기회복으로 소비시장이 살아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지난 2012년부터 강화되기 시작한 대형 유통점 규제도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 예상돼 더 이상 성장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만 하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 가계부채와 자산 가격 불확실성, 평균수명 증가에 따른 노후자금 등은 소비여력을 감소시킨다. 또한 합리적 소비트렌드는 양적성장을 더욱 제한할 수 있다.
이처럼 제한된 회복세에서 업체들의 변화 노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환경 변화에 적합한 업체에게는 회복세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고, 그렇지 못한 업체에게는 더욱 제한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올해는 변화하는 소비자, 심화되는 경쟁강도, 그리고 지속되는 정부규제를 고려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한해다.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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