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은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예부터 개성과 함께 상업이 발달한 도시다. 여기저기 사람이 몰리니 자연스럽게 장사꾼과 상인도 생기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목을 축이고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곳도 있어야 했으니 주막을 비롯한 음식점들이 수원을 중심으로 즐비해 있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 지역의 음식점들은 옛 명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나마 수원갈비가 맛 역사의 뼈대를 잡고 있을 뿐. 그러한 가운데 화성 성곽 둘레를 중심으로 숨은 맛집을 찾았다. 제법 오랜 시간 고기를 만져온 육류전문가 우건제 대표가 운영하는 <육미옥>이다
◇ 성공비결 01
참숯화로에 구운 불맛 작렬 수제돼지갈비
한 동안 진행했던 블로그 마케팅으로 최근 와서야 수원 지역 맛집으로 부상한 것뿐이지 사실 <육미옥>은 15년이나 된 고깃집이다. 강산이 한 번 하고도 절반이 바뀌는 시간 동안 자리를 옮긴적이 없다.
수원으로 무대를 바꾸면서 대중 외식 아이템인 돼지갈비를 메인으로 내세웠다. 한우갈비의 경우 마진율은 좋았으나 돼지고기만큼 방문 문턱이 낮지는 않다.
작업과정이나 공급문제에도 적잖이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수원에서의 시작은 양념돼지갈비가 좋겠다고 판단했다.
주력 구이메뉴는 수제돼지갈비(250g 1만4000원)와 한우생갈비, 한우양념갈비(각각 200g 2만8000원)다.
우선 국내산 참숯을 가득 넣은 큼직한 화로를 도입했다. 직화의 매력은 고기에 은은하게 배는 불맛과 숯불화로 자체의 임팩트 있는 모습이다.
불판은 일반 구리석쇠 대신 실실이 석쇠를 사용한다. 양념갈비가 불판에 쩍쩍 들러붙지 않아 노릇하게 잘 굽히기도 하고, 불판을 일일이 갈아줘야 하는 번거로움도 덜하다.
갈비 양념은 단출하다. 파인애플과 배, 양파, 키위 등 과일을 많이 넣어 천연 단맛을 낸다. 인위적인 단맛과 색깔을 내기 위해 캐러멜 소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심플한 양념이지만 고기를 이틀가량 푹 재놓기 때문에 간이 적절하다. 고기 결 사이사이 달착지근한 양념이 골고루 깊게 뱄기 때문이다.
돼지갈비는 목살과 갈비 부위를 5대5 비율로 낸다. 갈비 쪽은 쫄깃하면서도 고소하고 목살은 기름기가 적어 담백하고 부드럽다. 이 둘을 같이 내면 풍미나 식감이 더욱 풍부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우 대표의 설명이다.
서비스로 내주는 돼지껍데기도 별미. 사실 원가 얼마 되지 않는 돼지껍데기를 1만원 대에 판매하는 집들을 보면 야박하단 생각이 드는데 <육미옥>에선 안주용 구이거리로 서비스한다. 받는 손님은 기쁘고 주는 업주 입장에선 거의 공짜로 생색낼 수 있는 기회 아닌가.
◇ 성공비결 02
쉽지 않은 평양냉면을 제대로 완성했다
돼지갈비 예찬을 실컷 늘어놨지만 사실 요즘 맛있는 돼지갈비를 파는 곳은 많다. 중요한 건 선육후면을 얼마만큼 전략적으로 끌고 가느냐다. 그만큼 고깃집의 중요한 경쟁력이 됐다. 그러나 서울·경기 지역의 몇몇 고깃집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선육후면 콘셉트를 제대로 갖춘 곳이 잘 없다. 그전에 맛있는 냉면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
어떤 분야든 제아무리 열심히 해도 타고난 감을 지닌 사람을 따라잡기란 힘든 법. 다행히 우 대표는 맛난 냉면에 대한 진짜 추억이 있다. 메밀면에 대한 감이있는 것. 강원도 평창이 고향인 그는 어릴 적부터 메밀 면을 먹고 자랐다. 집 근처가 전부 메밀밭이었다.
질리도록 먹은 탓에 스무 살을 넘기고부터 메밀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그가 외식업을 시작한 후 옛적 어머니가 말아주던 삼삼한 메밀국수 향을 떠올리며 평양냉면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냉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육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면과 육수의 어울림이다. 우 대표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육수를 내기 위해 끓이는 동안에는 화장실도 한 번 가지 않는다고 한다. 끓으면서 위로 뜨는 기름기를 그때그때 제거해 줘야 깔끔한 맛과 육향이 생긴다. 매장에 있는 시간의 팔할은 묵직한 가마솥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데 보낸다.
그렇게 사골과 잡뼈, 소고기 사태와 양지 부위를 넣고 12시간 이상 끓인 육수에 투박한 메밀 면과 고명을 정갈하게 올린 심심한 평양냉면은 그의 야심작이다. 면은 주문과 동시에 뽑는다. 일반 냉면집보다 10분, 20분 이상 늦게 낼 수 밖에 없다. 서울·경기 지역의 나름 전통 있는 평양냉면 명가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다.
정식 메뉴로는 9000원에 판매하고 고기 손님에 한해서는 5000원에 맛보기로도 제공한다. 초창기만 해도 밍밍해서 맛없다는 반응이 태반이었으나 시간 지날수록 수제돼지갈비를 먹고 난 후 냉면을 주문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선육후면 키워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 성공비결 03
단돈 만원에 불고기도 주고 산나물비빔밥도 주고~
점심 장사도 제법 선전하는 편이다. 그러나 시행착오가 많았다. 오픈 초창기였던 2002년에는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골고루 손님이 많았다. 330.58㎡(100평) 규모 매장에서 일 평균 4회전 이상 가능했다. 근처에 각종 기업들과 관공서, 야구단 등 주요 시설이 들어서 있어 저녁에는 늘 단체 회식손님으로 만석이었다.
점심은 육개장과 갈비탕, 김치찌개 등과 같은 간단한 탕반 위주의 한식 메뉴를 구성했다. 큰 특색은 없지만 비교적 무난하고 먹을 만한 수준이라 점심시간 단골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2002년 이후 주요 야구단과 기업들이 이전하면서 고전하기 시작했다.
점심이 어려우니 저녁까지도 힘에 부쳤다. 우 대표는 과감하게 기존 점심메뉴보다 두 배 비싼 1만원짜리 불고기정식을 구성했다. 오랜 시간 양념육을 판매해왔기 때문에 불고기 양념은 자신 있었고, 한우 불고기를 다양한 찬과 구색을 잘 맞춰 푸짐하게 제공하면 전망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기업과 오피스가 떠났으니, 타깃은 직장인이 아닌 주부가 된 셈이다.
1인 기준 1만원에 한우불고기 180g과 7가지 산나물이 들어가는 산채비빔밥, 수제떡갈비, 채소 위주의 웰빙찬과 맑게 끓인 한우탕국, 튀김을 제공한다. 한정식에 가까울 만큼 한 상 가득 푸짐하다.
사실 점심 가격으로 지불하기에 1만원은 다소 무겁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우불고기와 산채비빔밥 정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건 분명한 강점이다. 더구나 주부손님을 상대한다면 5000원에 허접한 밥상을 차리느니 1만원에 제대로 된 한 상을 구현하는 편이 낫다.
불고기는 한우 목심 부위를 사용한다. 방짜유기에 정갈하게 차려내는 산채비빔밥은 고급스럽다. 방풍나물과 민들레, 취나물, 참나물, 콩나물 등 제철 나물을 계절별로 바꿔가며 낸다. 고슬고슬한 밥에 삼삼한 산나물과 달착지근한 불고기를 올려 비비면 그럴듯한 불고기비빔밥이 완성된다. 매실 효소와 간장으로 만든 새콤한 특제소스도 비빔밥의 감칠맛을 배가시킨다.
짭짤한 한우탕국을 서비스 하는 부분도 매력적이다. 4대가 이어가고 있는 울산 <함양집>도 대표메뉴인 육회비빔밥을 주문하면 해물과 한우고기를 넣은 탕국을 제공하는데 일반 음식점에서 보기 드문 서비스인 만큼 독보적이다.
한우불고기정식은 오후 3시까지만 판매한다. 불고기와 산채비빔밥을 먹으러 오는 손님만 점심에 100팀 이상 받을 정도로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