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국가였던 조선의 후신이라 그런 것일까. 조선이 맹모삼천지교의 고사를 나라 전체로 받아들인 것처럼 대한민국은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지난 2007년 국내의 한 라디오에서 "한국의 학생들은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세계 유수의 석학이 ‘경고’할 정도로 학생들이 공부에 몰입하는 것은 대학의 간판과 서열에 집착하는 한국의 사회적 경향 때문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대학입시는 국내 최고의 관심사다. 그리고 입시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잡기 위한 ‘정석’은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하는 대학을 골라서 갈 수 있는 0.1%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학생은 입시 전형을 잘 살피고 이에 맞는 준비도 해야 한다. 대학들의 수시합격 비중이 정시 대비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2015학년도 입시에서 전국 4년제 대학교의 수시 비중이 64.2%인 반면 정시 비중은 35.8%에 불과하다.
상위권 대학들은 이 차이가 훨씬 크다. 예를 들어 2015학년도 서울대학교 전형을 보면 수시모집의 비중이 75.1%(2364명)로 24.9%(777명)인 정시보다 월등히 높다. 주요 대학들은 학생부와 논술, 특별전형 등을 통해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수시모집을 선호한다. 성적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은 분명 있다.
<머니위크>는 유진투자증권의 교육 담당 애널리스트이자, '교육의 정석' 시리즈를 통해 학부모들 사이에서 ‘교육의 신’으로 이름난 김미연 애널리스트의 도움을 받아 남다른 입학 사례 3가지를 소개한다.
다만 유의할 점은 이 사례들은 최근 2~3년간의 ‘과거’ 사례라는 점이다. 입시전형은 매년 바뀌고 있다. 최근 정부의 대입전형 간소화 정책에 따라 2015학년도 대입전형에서 수시는 ▲ 학생부 교과 ▲ 학생부 종합 ▲ 논술 위주 ▲ 실기 위주(특기 등) 4가지 전형으로 압축됐다. 정시는 수능 위주와 실기 위주로 구분되나 대부분 수능 위주로 재편된 상태다.
◆ 동물애호가 소년, 자기추천으로 수의대 가다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꿈을 꾸고 화려함만 좇는 세태에 불만을 가진 한 학부모가 있었다. 이 학부모는 자신의 쌍둥이 아들인 진수(형)·진우(동생) 군에게 획일화된 교육을 시키기 싫어 어린시절부터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게끔 여행을 많이 다녔다. 방학 때면 산천초목이 우거진 시골 할아버지 댁에 보내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형제는 동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잠깐 스쳐갈 줄 알았던 이들 형제의 동물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커서 동물병원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으로까지 발전 한 것이다.
이후 형 진수 군은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기관의 인턴십에 참가해 수의학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그러면서 최상위권의 학생부 성적을 받아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
쌍둥이 중 동생인 진우군은 운동을 좋아하고 악기에도 관심을 가지는 등 활발한 성격으로 다양한 교외활동에 참여했다. 학업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형에 비해서는 부족했다. 정시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 느낀 진우 군은 K대의 입학사정관 전형인 자기추천전형에 지원했다. 다행히도 학생부 성적 그 자체는 우수한 편이었고 유기견 센터에서 2년간 자원봉사를 한 활동을 인정받아 형과는 다른 대학이지만 원하던 수의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 노마드족, 영어로 대학 가다
외교관의 아들인 정민군은 '글로벌 유목민'(노마드족)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뉴질랜드와 중국, 캐나다, 미국 등 전세계를 떠돌며 살아온 것이다. 선천적으로 활발한 성격이었기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잘 지내왔다. 초등학교 후반부터 중학교 때까지 1년 반 동안 잠시 한국으로 귀국해 학교를 다니던 시기도 별 문제 없이 지냈다.
성적만 놓고 본다면 수학이나 과학 등 이공계 과목에서는 뛰어나지 못했지만 여러 나라를 다닌 덕분에 어학능력에서는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영어와 중국어는 거의 완벽한 정도로 구사할 수 있게 됐다.
2009년 아버지가 한국으로 귀국명령을 받아 캐나다에 있던 정민군은 한국으로 돌아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국내 문화 적응을 위해 일반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정민군은 이전에 잠시 귀국했을 때처럼 빠른 적응능력을 보였다.
문제는 대입이었다. 나름대로 해외에서 수학과 과학을 공부했지만 처음으로 본 모의고사에서 외국어 영역을 제외한 언어와 수리, 사회탐구영역에서 모두 4등급을 받은 것이다. 명문대는 고사하고 '인(IN)서울'은 할 수 있을지 부모님이 걱정할 정도였다.
부모님은 언어와 수리·사회탐구영역을 집중적으로 공부시켰지만 성적은 쉽사리 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뛰어난 어학능력’ 하나만 가지고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외국어밖에 없었던 정민 군은 여기에 걸어보기로 했다. 이후 토익과 토플시험 모두에서 만점을 받았고 어학성적 70%, 에세이 30%를 입시요소로 하는 외국어대학교의 수시전형에 지원, 영어 하나만으로 대입에 성공했다.
◆ 지방 일반고에서 학교 열심히 다녀 명문대 합격
'인생에 있어 공부가 전부는 아니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서영 양은 지방에 있는 일반 고등학교에서 평소 교과 성적과 동아리·봉사활동 등을 통해 명문대에 입학한 케이스다.
어린 시절부터 <걸어서 세계 속으로>,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던 서영양은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PD를 꿈꿨다. 중학교 시절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영화판에 뛰어들겠다고 소리치고, 학생회장을 하며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진보적 변혁 사상 등을 학습하고 연구하는 이념서클에 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중학교 시절에는 공부에서 멀어져 내신성적이 하위권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서영양은 이후 ‘다큐멘터리PD가 돼 소외된 자들의 삶을 위해 살겠다’는 꿈을 키우게 됐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부라고 생각한 서영 양은 고등학생이 된 후 마음을 다잡고 공부해 전교 1~2등 석차를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방송반에 들어가 다큐멘터리를 직접 찍어보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병행했다.
이후 고3때 우수한 학생부 성적을 바탕으로 학교장추천을 받아 명문대의 학교장추천전형에 지원, 당당히 합격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