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대한민국의 살고 있는 청소년이라면 대부분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야 할 시간. 하지만 이들에게 교복과 책가방은 없다. 이들은 고등학교를 다니며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쓰는 평범한 학생이 아니다. 앳된 얼굴에 가진 것도 없지만 젊음과 패기로 사회에 나와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이다. 자신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들은 또래 친구들보다 더 빨리 자신의 미래를 정했다. 여타의 친구들과는 다른 삶,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용기있게 헤쳐나가는 세상을 만나봤다.

◆ 내 꿈에 학교는 없다… 춤바람 난 나영


춤추는 것을 유독 좋아하던 나영(19·가명)이는 다른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학교 대신 연습실로 출근하고,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리는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춤을 춘다. 그리곤 성적표 대신 돈을 받는다.

나영이는 어렸을 때부터 춤에 소질이 있었다. 춤 경연 대회에서 수차례 상을 받기도 했다. 대신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아무리 책을 보고 공부를 해보려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덕분에 성적은 늘 하위권. 이러한 그녀에게 학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나영이는 지난해 8월 일생일대의 결심을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춤으로 돈을 받는 프로 춤꾼이 되기로 한 것. 부모님에게 큰 맘 먹고 상의를 드렸다. 의외로 부모님은 나영이의 의사를 존중했다. 학교를 그만둔 다음날부터 홍대에 있는 연습실로 출퇴근을 하며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자신이 춤추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기에 나영이는 더욱 열심히 춤을 췄다. 그리고 지금은 어엿이 이 바닥에서 자리를 잡았다. 유명 가수들의 안무를 가르치기도 하고 백댄서로서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그녀는 이렇게 번 돈을 최소한의 생활비만 제하고 무조건 저축한다. 때문에 동료들 사이에서는 스크루지로 불린다. 이 별명이 맘에 들진 않지만 나영이에게는 돈을 아껴야 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바로 자신의 연습실을 갖는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춤을 가르칠 계획이다. 춤꾼으로의 삶을 선택한 그가 가진 최종 목표다. 나영이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교복 입고 학교에 가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워요. 하지만 내가 선택한 삶에 후회는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 행복하고, 이 행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 삿포로에서 맛본 케이크… 파티시에 꿈꾸는 준철

아버지 직장 때문에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준철(19·가명). 지금은 서울에 있는 한 고등학교(3학년)에 재학 중이지만 그는 친구들과는 다른 학교생활을 한다. 친구들이 야간자율학습을 하거나 학원에 다닐 때 그는 다른 곳으로 향한다. 바로 케이크 가게다. 준철이는 이곳에서 케이크 만드는 법을 배우는 한편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매년 방학이면 일본 삿포로로 떠난다. 그가 학생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학업을 포기한 채 빵집과 일본을 들락거리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준철이가 11살 때 부모님과 함께 들른 삿포로에 위치한 조그만 스위츠(sweets·달콤한 디저트) 전문점. 이곳에서 먹은 스위츠가 그의 꿈이 됐다. 담백하고 고소하며 부드럽고 쫄깃했던 그 맛에 흠뻑 빠져 들어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님을 졸라 이곳을 찾곤 했다.

하지만 14살이 된 준철이가 돌아온 한국에는 삿포로의 스위츠가 없었다. 스위츠를 파는 가게는 많았지만 맛이 달랐다. 이때 준철이는 결심했다. 한국에 정말 맛있는 스위츠 가게를 열어야겠다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부모님에게 자신의 꿈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말씀드렸다. 하지만 보수적이었던 아버지는 쉽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 준철이는 부모님 몰래 제빵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기술을 배우며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케이크를 부모님께 보여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정말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자신 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케이크 맛을 보신 아버지가 결국 허락해 주셨다. 단, 대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하지만 준철이는 수능을 보지 않는다. 대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대로 일본에 있는 츠지제과전문학교에 입학할 계획이다. 그리고 스위츠 전문점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면서 일을 배울 요량이다. 준철이는 자신이 꿈꾸는 계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대학에 진학하고 회사에 들어가서 수동적인 삶을 살기는 싫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능동적으로 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싶습니다. 이것이 내가 파티시에를 꿈꾸는 이유입니다.”

◆ 어려운 가정형편… '내 가게' 차리는 현수

현수의 나이 올해 열아홉. 그의 하루 일과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해가 뜨기도 전인 이 시간에 첫 버스를 타고 학교가 아닌 서울 가락동 시장으로 향한다. 현수는 이곳에서 배달 일을 하고 있다. 하루 동안 리어카에 채소를 가득 싣고 10~20대씩 배달을 한다. 다리가 아프지만 아픈 만큼 돈이 들어온다. 때문에 현수는 다리가 아플수록 신이 난다. 이곳에서 일한 지 어느덧 3년. 내년에는 현수의 꿈이 이뤄진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어머니가 식당일을 하며 자신과 3살 터울의 동생을 보살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이때만 해도 그럭저럭 행복했다. 하지만 현수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어머니가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이로 인해 어머니는 신체의 왼쪽 부분에 마비가 왔다. 당장 생계가 문제였다. 이때부터 현수는 일자리를 알아봤다. 치킨집 오토바이 배달도 해보고 주말에는 결혼식장에서 음식도 날랐다. 하지만 이 돈으로 어머니 약값과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딱한 사정을 알고 있는 동네 아저씨가 시장의 배달 일을 소개해 줬다. 당시 17살. 육체노동을 해본 적이 없는 현수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그만둘 수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때부터 현수는 무조건 돈을 벌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사실 현수에게는 꿈이 없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집안 사정에 의해 사회로 나왔고, 주변 또래 친구들을 보면 가난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내 가게’라는 꿈도 만들었다. 이때부터는 부끄럽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내년 그 꿈을 이루게 된다. 현수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 가게라는 꿈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감당하기 힘든 가족으로부터 도망칠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꿈이 있어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내 자신과 이 일 그리고 가족을 사랑합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