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3명의 아들이 결혼하면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다는 뜻을 자주 내비쳤다고 한다. 그의 부친인 조홍제 효성 창업주가 “가정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회사를 다스리겠는가”라며 강조한 ‘진정가장’(眞正家長)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지난 2003년 9월 결혼한 조 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변호사가 본가가 있는 서울 성북동에 신혼살림을 꾸민 것도 부친의 뜻을 따르기 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조 회장-조 변호사의 부자관계가 심상치 않다. 조 회장은 지난해 2월 효성중공업PG 사장 자리를 내놓고 떠난 조 변호사의 노골적인 비리폭로에 난감해하는 모양새다. 조 변호사에 대해 “패륜이다. 배신이다”라는 소문이 나돈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 변호사는 반란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들 부자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아들인 조 변호사가 아버지인 조 회장을 상대로 “참을 만큼 참았다”며 달려드는 것일까.
◆아버지와 형제, 홍보실까지 숨통 조이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조현준 사장, 조현상 부사장 등이 불법행위들을 은폐하기 위해 나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다.”
지난 10월28일 조 변호사가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이 주장하면서 이들 부자관계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조 변호사의 일방적인 주장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조 변호사의 주장에는 그동안 그의 기행을 풀어낼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 관심이 쏠린다.
조 변호사에 따르면 조 회장은 지난 2011년 9월 효성그룹의 불법비리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이를 바로잡으려 한 조 변호사를 그룹에서 쫓아냈다. 이후 조 회장과 그의 장남인 조현준 효성 사장, 삼남인 조현상 효성 부사장이 나서서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조 변호사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려 했다. 게다가 그룹 홍보실까지 동원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조 변호사를 음해해 왔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 같이 전개되자 조 회장의 해명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조 회장 측에서는 “고령에 건강까지 좋지 않은 아버지에게 이처럼 대하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니다”라는 답변만 늘어놓고 있다. 또 조 회장 측은 조 회장과 조 변호사가 나눈 대화내용이 왜곡됐다고 반박하지만 어떻게 잘못됐는지, 진실은 무엇인지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조 변호사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조 회장이 “(비자금 계좌를 네게 뒤집어씌우려고) 그런 적 없어. 뒤집어씌우려 한 적 없어. 건방지게 왜 대들어. 불법비리 없어. 있든 없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이 집안은 내가 다스려. 나한테 맡겨”라고 말한 부분만 전해졌다.
결국 조 변호사 쪽으로 세가 기우는 모양새다. 조 변호사는 지난 7월23일 조 회장과 만난 후 다음과 같은 비리사실을 폭로했다. ▲검찰 수사에서 조 회장이 자신의 계좌를 조 변호사 계좌로 뒤집어씌우려 한 점 ▲형인 조 사장이 저지른 2000만달러 횡령 건을 조 변호사에게 뒤집어씌우려다 실패한 점 ▲조 사장의 잘못을 은폐하고 감싸기 위해 자신을 내쫓은 점 등이다.
/사진=뉴스1 최영호 기자
◆숨통 막힌 차남 결국… “참을 만큼 참았다”
조 회장이 아들의 비리폭로로 사면초가에 몰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조 회장은 조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세차례나 찾아가 대화를 청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 변호사의 이야기는 다르다. 조 변호사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출국금지를 당해 한국에서 검찰수사를 받는 수개월간 집에 거주하지 않았다. 조 회장은 집안을 다 돌아본 후 조 변호사가 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이것이 조 회장이 말하는 문전박대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 회장은 쫓아낸 조 변호사를 도대체 왜, 그것도 3년 만에 만난 것일까. 조 회장 측은 “병든 아버지가 아들이 보고 싶어서 찾아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 변호사는 “아버지는 소문과 달리 매우 건강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드러난 상황으로 종합해 볼 때 조 회장이 그룹 내 불법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진실을 알고 있는 조 변호사를 찾아갔다는 의문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요체는 조 변호사가 지난 7월 조 회장을 만났을 때 “그룹과 가족의 불법에서 자유롭고 싶으니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사면초가에 몰린 조 회장이 자신의 권위로 조 변호사를 입막음하려고 찾아갔다는 의혹에 관심이 쏠린다.
사실 조 변호사가 처음부터 반기를 든 것은 아니다. 조 회장과 조 사장이 지난해 1월 조세포탈과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고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수사가 이어지면서 조 변호사에 대한 악성루머가 떠돌기 시작했을 때도 그는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가 침묵할수록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사실인양 더욱 확산됐다.
결국 조 변호사는 “참을 만큼 참았다”며 서울 마포경찰서를 찾았다. 이후 지난해 10월 상대방을 비하하는 내용의 정보지를 만들어 유포한 혐의로 효성 홍보실 전무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이 선고됐다. 또 조 변호사는 지난 7월 효성그룹 계열사인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와 ㈜신동진의 최모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와 신동진은 효성그룹의 부동산 관리를 담당하는 계열사다. 각각 조 사장과 조 부사장이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이어 지난 10월 조 변호사는 조 사장을 고발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민·형사 소송을 낸 것. 조 변호사와 그가 지분을 증여한 교회 측이 효성그룹 계열사, 대주주, 경영진 등을 상대로 취한 민·형사 조치는 총 12건에 이른다.
이처럼 11월 현재 조 회장 일가의 집안싸움은 점입가경이다. 조 회장이 조 변호사를 그가 말하는 그룹과 가족의 불법에서 자유롭게 놓아줄지, 아니면 명쾌한 해명으로 조 변호사의 주장을 뒤집어 상황을 역전시킬지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프로필
▲1935년 11월19일 경남 함안 출생 ▲1959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1966년 미국 일리노이공대 대학원 화학공학 석사 ▲1966년 효성물산 관리부장 ▲1970년 동양나일론 대표이사 사장 ▲1975년 효성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1976년 효성물산 대표이사 사장 ▲1982년~ 효성그룹 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