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병에 메스 꺼낸 정부
정부는 리베이트를 막기 위한 일환으로 지난 2010년 11월 ‘리베이트 약가연동제·리베이트 쌍벌제’를 시행했다. 하지만 당국의 영업 규제 강화에도 제약업계의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지난 7월 ‘리베이트 투아웃제’를 도입했다. 제약사들의 만연한 리베이트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내린 특단의 조치다. 리베이트로 적발된 의약품의 건강보험 적용을 중단하는 엄격한 규제로 제약사들을 처벌하겠다는 것. 정부는 사실상 해당 의약품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방침이어서 리베이트가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더구나 올해 제약업계가 대대적으로 기업윤리헌장을 선포하며 윤리경영에 박차를 가하던 터라 리베이트 병폐가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제약업계의 고질병은 완치되지 않았다. 정부는 제약업계의 곪은 상처를 도려내기 위해 결국 메스를 꺼냈다. 잠잠하던 리베이트는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촉발됐다. 지난 10월21일 서울서부지검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단은 고려대 안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의 리베이트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리베이트 사건에는 다국적 제약사를 포함해 총 6곳이 연루됐다. 특히 국내 유명 제약사 3곳은 리베이트 금액이 컸다. 심지어는 이미 리베이트 건으로 처분을 받았던 제약사도 포함됐다. 게다가 최근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다다른 것으로 전해지면서 제약사들은 리베이트 투아웃제의 첫 적용 대상이 될까봐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세청, ‘상품권’ 정조준
제약업계에 긴장감이 팽배한 상황에 국세청까지 팔을 걷어붙이자 제약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제약사들의 상품권 사용 내역 조사에 나선 것.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 11월21일 국내 제약사 100여곳에 4년간 구매한 상품권에 대한 소명자료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상품권은 현금화가 가능한 금품이다. 지난해에는 한 제약사 직원이 수천만원어치 상품권이 들어 있는 가방을 잃어버렸다가 되찾는 사건이 발생해 그 용도에 관심이 쏠렸다.
국세청이 제약사들의 상품권 거래내역에 돋보기를 들이댄 것도 세금을 탈루하거나 병원 또는 약국에 리베이트를 제공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제약사들은 국세청이 요구한 내역을 밝히지 못할 경우 상품권 구매금액의 35%가량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상품권을 리베이트 용도로 사용한 제약사는 실적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해당 제약사는 내년 영업을 시작하는 시점에 추징금으로 인한 영업손실을 떠안게 된다. 과거 세무조사를 받고 추징금을 납부했던 동아제약과 대웅제약은 추징금을 납부한 분기의 실적이 저조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최근 세무조사 대상자로 이름이 거론된 제약사에는 주주들의 리베이트 사실 여부 확인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리베이트 수사 및 조사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제약업계는 수사 및 조사 장기화로 선의의 피해를 보는 제약사들이 생겨나는 점을 우려한다. 출처불명의 리베이트 연루 제약사 명단과 상품권 세무조사 대상 명단이 나돌면서 제약사들이 한바탕 곤혹을 치르고 있어서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사정기관이 시간 끌기, 물 타기, 여론 떠보기 식으로 (리베이트 연루) 정보를 흘리면서 제약사들은 영업활동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지난 3분기 실적이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는데 사정한파까지 몰아치고 있다”며 “주요 제약사들은 내년 사업계획의 윤곽조차 잡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분기 실적을 공시한 분기 매출 1000억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 7개 제약사의 3분기 영업이익이 평균 31% 감소했다. 때문에 많은 제약사가 내년 ‘고강도 긴축’ 사업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화하는 ‘변종 리베이트’
국세청의 이번 세무조사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상품권을 노린 점이다. 이른바 ‘변종 리베이트’ 형태인 상품권 사용을 겨냥한 것. 제약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제약사들이 리베이트를 현금 위주로 제공했지만 몇년 전부터 단속이 강화되면서 상품권을 사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세무당국은 상품권을 리베이트로 사용하는 관행이 제약업계에 널리 퍼진 것으로 보고 조사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변종 리베이트 수단은 상품권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2년 동아제약(현 동아ST)이 의사들에게 동영상 강의를 부탁한 뒤 대가를 제공한 부분도 변종 리베이트의 한 형태다. 동아제약의 동영상 강의료 리베이트는 1심에 이어 지난 11월27일 항소심에서도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김상준)는 지난 1심에서 동아제약이 판매 촉진 목적으로 동영상 강의를 제안했다는 것을 의사들도 알고 있었다고 판단해 벌금형과 추징금을 선고했다. 다만 항소심에서는 일부 의사들의 경우 제약사에게 적극적으로 리베이트를 요청하지 않았고 양질의 동영상 강의를 제작한 점 등을 인정해 형량을 다시 선고했다.
지난해 10월 대웅제약의 ‘의료기관 홈페이지 지원’을 통한 리베이트도 변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대웅제약은 자사 의약품 위주의 처방을 대가로 엠써클을 통해 의료기관 홈페이지를 구축했다. 대웅제약은 홈페이지 구축비용을 지불하는 형태로 100억원대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또한 CJ제약사업부는 의사 수백명에게 법인카드를 주는 수법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경찰 수사망에 걸렸다.
이외에도 수금할인, 식사접대, 골프접대, 물품지원 등 리베이트는 다양한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의료인은 환자에게 적합하고 효과가 좋은 약을 처방해야 한다. 그러나 리베이트로 소모되는 비용 때문에 효능이 떨어지더라도 유사한 성분의 약을 처방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리베이트가 의약품 가격에 반영돼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생명을 담보로 한 거래’로 변질된다는 지적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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