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신격호 총괄회장)이 하신 일이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으로 출국한 지 3일째인 지난 13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0)이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세간의 관심은 온통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61)의 해임에 대한 동생의 입장에 쏠린 상황. 공항에 진을 친 취재진을 향해 신 회장은 “아버지가 결정하신 일”이라고 짧게 답했다. ‘신동주 해임’ 사건에 대한 첫 입장표명이었다.


◆ 신동빈, 일본롯데 관여 정말 안할까


그런데 이날 발언이 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당초 신 전 부회장이 이탈한 상황에서 신 회장의 일본출국을 놓고 한국롯데와 일본롯데를 동시에 경영하기 위한 첫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이 짙었다. 하지만 신 회장의 ‘잘 모르겠다’는 표현에 대해 롯데 측이 “일본롯데를 경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명히 밝히면서 당분간 한일 롯데그룹의 경영체제는 ‘한국 신동빈-일본 쓰쿠다 롯데홀딩스 사장’ 체제로 일단락됐다.


그럼에도 재계 일각에선 신 회장이 일본롯데까지 통합경영할 것이라는 해석이 여전히 무성하다. 공식입장은 아니어도 롯데측이 언론을 통해 ‘한일 분리경영’을 못박은 것이 신동주-신동빈간 경영승계를 둘러싼 ‘왕자의 난’이 점화되는 시점에서 나온 진압용 해명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선 실적면에서 한국롯데가 일본롯데와의 비교선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는 점이 신격호 총괄회장으로 하여금 신동빈 회장에게 양국의 지휘봉을 자연스레 내줄 명분이 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박동욱 기자

한국롯데는 지난 2013년 기준, 74개 계열사에 83조원대의 매출을 기록한 반면 일본롯데는 37개 계열사에 매출도 5조7000억원에 그쳤다. 앞서 2010년에도 일본롯데는 제조업 중심의 경영에 머물면서 한국롯데 실적규모의 10% 수준에 그쳤다. 이 때문에 당시 신 총괄회장이 양국을 똑같이 오가던 ‘현해탄 경영’(홀수달에는 한국거주, 짝수달에는 일본거주)의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 2011년에는 실적상승에 힘입어 당시 신동빈 부회장은 회장으로까지 승진했다.


신 전 부회장의 최근 해임 역시 일본롯데의 부진한 실적이 결정타였다. 롯데 측도 ”일본롯데가 한국롯데에 비해 턱없이 저조한 실적 때문에 신 총괄회장께서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경고를 했다”고 인정했다.


신 회장의 통합경영 시나리오 관점에서, 신 전 부회장이 빠진 일본롯데를 쓰쿠다 롯데홀딩스 사장이 지휘한다고는 해도 계속해서 신 총괄회장이 그에게 통솔권을 맡길지도 미지수다.


일본 스미토모은행(현 미쓰이스미토모은행) 출신인 쓰쿠다 사장은 지난 2009년 롯데홀딩스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신 총괄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다만 이번 신 전 부회장의 해임이 쓰쿠다 사장과의 알력설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신 총괄회장이 쓰쿠다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기보다는, 신 전 부회장에 대한 질책성 인사였다는 점에서 쓰쿠다 체제의 연속성을 확신할 수는 없다.


실제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신동주-쓰쿠다 간 경영방침을 둘러싼 대립이 있었으며 신격호 총괄회장이 결국 쓰쿠다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 끝나지 않은 싸움, 신동주의 반격카드는


신 전 부회장이 일본롯데, 롯데상사, 롯데아이스, 그리고 롯데홀딩스의 임원직에서 잇따라 하차하면서 확실히 힘의 균형은 신동빈 회장에게 쏠렸다. 하지만 주요 계열사들의 보유지분을 따져볼 때 ‘신동주의 반격카드’는 여전히 존재한다. 


롯데제과는 지분구조상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을 지배하고 있는데 신 전  부회장의 롯데제과 지분율은 3.92%로 5.34%를 소유하고 있는 신동빈 회장과는 불과 1.42%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이는 신 전 부회장이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롯데제과 주식을 꾸준히 사들인 결과다. 롯데제과는 ‘롯데제과→롯데쇼핑→롯데알미늄→롯데제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의 핵심이다.

 




신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그룹의 임원직은 모두 잃었지만, 롯데그룹에서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재계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그는 현재까지 한국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의 등기임원으로 등재돼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 전 부회장은 한국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등기이사다. 임기는 내년 3월까지인데, 반면 신동빈 회장은 호텔롯데의 회장이지만 등기이사는 아니다.


신 전 부회장은 또 롯데알미늄과 롯데건설, 부산롯데호텔의 등기임원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다. 롯데알미늄의 경우 올해 6월 임기 만료인 등기임원으로 있지만 신 회장은 아무런 직책이 없다. 부산롯데호텔에서도 신 전 부회장은 부회장이자 임기가 내년 6월까지인 등기이사로, 롯데건설에서는 오는 3월 임기가 끝나는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다. 반면 신 회장은 롯데건설과 부산롯데호텔에서도 각각 등기임원이 아니다.


다만 신 전 부회장이 이처럼 국내 롯데 계열사들의 임원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 일본에서처럼 이사직에서 해임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재계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이 한국·일본의 롯데 계열사에서 보유한 주식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만큼 신 총괄회장의 결심에 따라 후계구도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면서도 “신 전 부회장이 한국 롯데계열사에서도 해임되고 신 총괄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차남인 신 회장에게 몰아주면 승계작업은 사실상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