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를 사로잡은 단어는 ‘중소형주’다. 뜨거운 투자 열기는 올해 초까지 이어졌고 중소형주 위주로 구성된 코스닥시장은 지난 2월5일 기준으로 6년8개월 만에 600선을 돌파했다. 코스피시장에서도 중소형주의 상승세는 눈에 띄었다. 올 들어 코스닥이 600선을 돌파한 날까지 코스피 중소형주 지수는 5%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2% 오른 것에 비하면 두배 이상 높은 상승폭을 보인 셈이다.
대세를 읽으려면 증권사의 움직임에 주목하라고 했던가. 증권업계는 최근 중소형주 투자전략 세미나를 각 지점에서 개최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세미나를 열 때마다 투자자들이 붐비는 통에 준비한 좌석이 모자랄 지경이라며 인기를 실감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각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연일 경쟁하듯 중소형주 관련 보고서를 쏟아낸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을 여실히 보여준 중소형주. 이 작은 고추는 올 한해도 매운 열기를 뿜어낼 수 있을까.
◆ 중소형주로 몰리는 ‘투심’
중소형주의 강세를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는 시가총액 증가율이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연초 이후 한달간 대형주의 시가총액이 2% 미만으로 상승한 반면 중소형주는 8% 가까이 상승했다. 지난해 1월부터 누적 수익률로 보면 둘 사이의 격차는 30%에 이른다.
국내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의 수익률을 봐도 중소형주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1개월간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수익률 상위 10개 펀드 중 중소형주 펀드가 6개에 달한다. 이들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4.43%로 국내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인 1.09%를 가볍게 따돌렸다. 같은 시점을 기준으로 3개월간 순유입된 자금도 1440억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중소형주가 이처럼 강세를 보이는 원인을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찾았다. 최근 글로벌 증시는 국제유가 하락과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감이 커지며 변동성 장세를 이어갔다. 이로 인해 외국계 자금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상대적으로 대형주에 비해 외국계 자금의 비중이 높지 않은 중소형주는 충격에 둔감했다. 통상 외국인 투자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형주보다는 정보 습득이 용이한 대형주 위주로 투자한다. 실제 지난 2월9일 기준 중소형주 비중이 높은 코스닥시장의 시가총액에서 외국계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0.96%에 불과한 반면 코스피시장에서의 비중은 34.23%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2.0%에서 더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투자자들을 중소형주로 이끌었다. 은행이자가 1%대에 머물며 마땅히 고수익을 기대할 투자처가 없는 판국에 대형주보다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심한 중소형주에 자금이 몰리는 것이다.
류용석 현대증권 시장전략팀장은 “유럽중앙은행(ECB)의 공격적인 양적완화정책에 자국환율을 방어하기 위한 신흥국의 릴레이 금리인하가 일어나는 등 통화정책 완화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국내 기준금리도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돼 코스닥을 포함한 중소형주의 꾸준한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알짜배기’ 중소형주 가려낼 때
실적 측면에서 보면 올해도 중소형주의 강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각 증권사가 추정한 상장기업의 올해 실적 전망치를 분야별 평균을 내본 결과 중소형주의 실적이 더 양호할 것으로 예상됐다.
조사에 포함된 38개 코스닥 상장사의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는 전년보다 54.04%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 반면 130개 코스피 상장사의 평균 영업이익은 23.84%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매출액 증가율도 코스닥시장은 17.48%로 1.51%인 코스피시장을 가뿐히 넘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코스피시장에서도 대형주와 중소형주의 실적 차이는 극명하게 나타난다. 시장 컨센서스에 따르면 코스피 대형주의 올해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22.82%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반면 중형주와 소형주는 각각 39.08%, 71.89%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부정책에 부응하는 중소형성장주를 주목했다. 박근혜 정부의 신사업 규제완화와 중소기업 육성정책에 수혜를 입는 종목들은 중기간에 걸쳐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정남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연초부터 인터넷뱅크 설립을 허용하기로 한 것을 비롯해 적극적인 핀테크산업 육성 방침을 밝혔다”며 “올해 이와 같은 다양한 정책이 등장할 것을 고려하면 중소형성장주가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주경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전망이 좋은 핀테크산업과 중국 소비재 관련주는 대부분이 중소형주로 구성돼 있다”며 “특히 중국계 자금이 이 분야로 몰리고 있고 국내증시에 투자하는 펀드들도 중소형주의 비중을 늘리는 추세여서 당분간 중소형주는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최근 그리스 재무장관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없다고 못 박으며 그렉시트(Grexit) 우려감이 줄었고 국제유가 또한 반등세로 접어들며 다시 대형주가 주목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민병규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중소형주가 상대적 강세를 띠게 만든 주원인인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고 있고 지난해 4분기 대형주의 실적이 개선된 점을 보면 다시 외국인의 매수세가 유입될 것”이라며 “또한 코스닥 지수가 단기 과열로 인해 조정받는 국면에서 밸류에이션 지표까지 장기 평균을 크게 상회하고 있기 때문에 중소형주의 추가 강세는 보기 힘들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김용구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중소형주를 바라볼 때 막연한 기대감보다 펀더멘탈에 의거한 옥석 가리기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형주시장의 부진이 중소형주시장의 상대적 가치를 부각시킬지 몰라도 중소형주의 구조적 성장성을 지지하는 요인은 될 수 없다”며 “한국경제의 미래가 온전히 코스닥기업들에 의해 좌우되거나 일상이 몇몇 중소기업의 기술혁명으로 인해 송두리째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면 중소형주의 한계는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