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는 대규모 R&D(연구·개발) 투자 필요성 등의 영향으로 배당을 늘리기 어렵다는 속사정이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이재명 대통령이 배당 활성화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으나 제약업계는 이른바 '짠내 배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신약개발 등의 사업 상과를 위해 대규모 R&D(연구·개발) 투자를 장기간 이어가야 해서다.

'낮은 배당' 꼬집은 이 대통령… 첫 상법 개정안, 배당 촉진 '정조준'

이 대통령은 주식 시장 활성화를 위해 배당 촉진 제도를 마련할 계획이다. 부동산을 대체할 투자 수단으로 주식을 키워 주거 불안정을 해소하고 자본시장 선진화를 이루겠다는 큰 그림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한국은 배당에 너무 인색해 (기업이) 10조원을 벌어도 배당을 1조~2조원밖에 안 한다"며 "중국 공산국가 기업보다 더 배당이 적다"고 비판했다. 상장사의 낮은 배당 성향이 주가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배당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당선 이후에도 배당 확대 방안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지난달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다른 나라는 우량주를 사서 중간배당 받고 생활비를 해 경제 선순환에 도움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배당을 안 한다"며 "배당을 촉진하기 위한 세제 개편이나 제도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식을) 부동산에 버금가는 대체 투자 수단으로 만들면 기업의 자본 조달도 쉬워지고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선순환되지 않을까 싶다"고 부연했다.

이달 말 발표 예정인 이재명 정부의 첫 세법 개정안도 배당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은 세법 개정안의 주요 과제로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꼽는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배당 수익을 투자자의 금융소득에 합산하지 않고 별도로 과세하는 제도다. 대상은 배당 성향이 35%를 넘는 상장사의 배당금으로 거론된다. 대주주의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업이 배당 성향을 기준치 이상으로 올릴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됐다. 현재는 연간 배당소득 2000만원을 넘기면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이 돼 최고 49.5%의 세율이 적용된다.

'R&D 부담' 제약업계, 배당수익률 하위권… 유한·한미는 '약진'

사진은 유가증권시장 업종별 평균 시가배당률(배당수익률) 추이. /그래픽=김은옥 기자


정부가 배당 촉진을 추진하고 있지만 제약업계는 사업 구조 문제 때문에 배당을 늘리기 쉽지 않다. 배당에 투입할 재원을 R&D에 활용해야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어서다. 일반적으로 10년 동안 총 1조원 이상을 투입해야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신약개발에 AI(인공지능)를 도입하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지만 아직은 물질 발굴 등 임상시험 이전 단계에만 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의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업종별 시가배당률(배당수익률) 추이를 살펴보면 제약은 2020~2024년 평균 1.6%로 하위권을 기록했다. 상위권인 금융(3.8%), 전기가스(3.6%), 통신(3.5%)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제약보다 낮은 업종은 전기전자(1.5%), 의료·정밀기기(1.4%)로 집계됐다. 시가배당률이 낮은 업종은 대체로 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R&D 투자가 불가피하다.

국내 5대 제약사의 시가배당률은 업종 평균에도 못 미쳤다. 2020~2024년 5대 제약사의 시가배당률은 ▲유한양행 0.6% ▲종근당 0.9% ▲GC녹십자 0.9% ▲한미약품 0.2% ▲대웅제약 0.4% 등에 그쳤다. 배당을 통해 주식 가치를 높이는 것 대신 R&D 투자 성과로 기업가치를 올려 주가 상승을 꾀하겠다는 전략이 반영된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유한양행과 한미약품은 R&D 투자에 더해 배당 확대까지 꾀하고 있다. 지난해 5대 제약사 중 주당 배당금을 늘린 기업은 유한양행과 한미약품뿐이다. 두 회사는 지난해 각각 주당 배당금 500원, 1250원을 지급했다. 전년보다 11.1%, 150.0% 늘어난 규모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통해 2027년까지 주당 배당금을 총 30% 이상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한미약품은 같은 기간 주당 배당금을 200% 증액할 방침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사들은 단기적인 이익 배분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더욱 집중해 왔다"며 "배당을 소홀히 한다기보다 높은 가치를 창출해 더 큰 성과로 주주가치에 기여하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R&D에 과감히 투자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업계 전반에서 주주와의 지속적인 소통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모색하고 있다"며 "주주환원 정책 확대에 대해서도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