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제약사의 자사주 보유 비율이 한자릿수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유한양행 본사. /사진=유한양행


국회가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상법 일부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코스피 5000' 시대를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으로 관측된다. 국내 주요 제약사는 선제적으로 자사주 비율을 10% 미만으로 유지하는 동시에 일부는 자사주 소각까지 계획하고 있다.

국회, 자사주 소각 법제화 추진… 취득 후 1년 안에 태워야

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 소속 김남근 의원은 원칙적으로 자사주 취득 후 1년 이내에 소각하는 내용의 상법 일부 개정안을 지난 9일 대표 발의했다. 임직원 보상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자사주 보유를 허용하되 반드시 직후 정기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자사주를 통한 주주환원 정책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면 회사의 주식 수가 줄어 주당 순이익이 증가하고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이는 배당과 유사한 주주환원 효과를 가져온다는 게 김 의원 등의 시각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요구하는 시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자사주 소각의 제도화를 공약으로 제시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문제는 국내 상장사들이 자사주 소각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김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안 원문을 살펴보면 자사주 비율이 10%를 초과하는 상장사는 216곳에 달한다. 40%를 넘는 기업도 4곳 존재한다. 상장회사가 자사주를 5% 이상 보유할 경우 자사주 보유 현황과 목적, 향후 처리계획 등을 명시한 보고서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자사주 처분 시 목적과 상대방, 선정 사유, 주식가치 희석 가능성 등을 공시하도록 규제를 강화했으나 자사주 남용 문제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제도는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보험회사법이나 이를 따르는 캘리포니아 회사법에는 자사주를 '발행되지 않은 주식'으로 간주해 사실상 소각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독일 역시 자사주 보유 비율이 10%를 초과하는 경우 3년 이내 소각을 의무화하고 있다. 자사주 의무화 규정이 없는 한국에서는 기업들이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우호세력에 넘기는 등의 방식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5대 제약사 자사주 '이상 무'… 일부 지주사는 '소각' 기대감

올 1분기 말 기준 국내 5대 제약사 자사주 보유 비율. /그래픽=김은옥 기자


자사주 의무화 법안이 국회 문턱을 통과해도 국내 주요 제약사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적을 전망이다. 애초에 자사주 보유 비율이 한 자릿수로 낮은 편이어서다. 국내 5대 제약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올 1분기 말 기준 각각 ▲유한양행 641만8129주 ▲종근당 62만6712주 ▲GC녹십자 27만3360주 ▲한미약품 13만777주 ▲대웅제약 8만305주 등이다. 각 회사의 발행 주식 총수(보통주) 대비 자사주 비율은 ▲유한양행 8.0% ▲종근당 4.5% ▲GC녹십자 2.3% ▲한미약품 1.0% ▲대웅제약 0.7% 등이다.

이중 유한양행과 한미약품은 자사주 소각까지 약속했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10월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통해 2027년까지 보유 또는 매입한 자사주를 1% 소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후 지난 5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24만627주(총 253억원 규모)를 소각했다. 한미약품의 경우 구체적인 숫자를 밝히진 않았으나 지난 3월 '3개년 기업가치 제고계획' 공시에서 자사주 취득·소각을 언급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제약사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일부 지주사의 경우 자사주 비율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웅제약을 자회사로 둔 지주사 대웅이 대표적이다. 대웅은 지난 3월 기준 자사주 1725만1270주를 보유했다. 발행 주식 총수(보통주)의 29.7%다.

시장에서는 대웅의 자사주 비율이 높은 만큼 자사주 소각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대웅은 지난 11일 장중 주가 2만8850원까지 오르며 52주 최고가를 경신했다. 자사주 소각 기대감이 반영된 영향으로 관측된다. 대웅은 현재 자사주 활용 방법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