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5일 경기도 시흥시 시화방조제 인근에서 밤낚시를 하던 김모씨가 몸통만 있는 여성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마치 공포 스릴러 영화의 시작 장면 같다. 범인은 그 여성과 20년 동안 함께 살았던 남편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남편은 집에서 아내를 망치로 살해한 후 여러 토막으로 시체를 절단해 시화호 인근에 몸통을 먼저 버렸다. 이후 손발을 버리는 등 잔인한 행동을 했지만 CCTV에 찍힌 아내의 몸통이 담긴 가방을 싣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은 태연하기만 하다.
지난해 말에는 수원 팔달구에서 토막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경기도청 근처의 등산로에서 몸통만 있는 시신이 먼저 발견됐고 며칠 뒤 인근지역에서 살점과 장기가 따로 발견됐다. 살해당한 여성이 살해당하기 전 경찰에 신고해 경찰관과 총 7분36초나 통화한 사실이 밝혀져 경찰의 늦장 대응 논란이 제기됐다.
지난해 5월에는 인천남동공단 한 공장 앞에서 남성의 머리와 사체의 상반신이 들어있는 검은색 이민가방이 발견됐다. 30여차례 칼에 찔린 자국이 있는 시신이 들어있는 가방 안에는 다리를 비롯한 하체가 없었다.
피해자의 다리는 파주의 한 농수로에서 찾았다. 범인은 놀랍게도 30대 여성이었다. 범행장소의 CCTV에는 긴 생머리에 검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모습이 찍혔다. 잔인성과 대담성은 젊은 여성 혼자서 저지른 사건으로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지난 2012년 4월에는 오모씨가 길을 가던 20대 여성을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가 스패너로 때리고 목 졸라 죽인 후 시신을 360여 조각으로 자른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 5월 경기도 과천에서 당시 24세인 명문대생이 친부모를 토막 살인한 패륜사건이 발생해 세상이 들끓었다.
시흥 토막살인 피의자 김하일(47·중국동포)이 4월13일 시흥 시화공단 다리 밑에서 시신 일부를 유기하는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강종민 기자
◆살인사건 연간 1000회 발생
살인사건 중에서도 가장 엽기적인 토막 살인사건만 살펴봤지만 지난 10년 동안 인구 10만명당 살인사건 수는 연간 2건을 초과한다(대검찰청 ‘범죄분석’). 1년에 1000회 이상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해마다 발생하는 그 많은 살인사건 중 극히 일부만 언론에 보도될 뿐이다. 살인사건이 크게 줄지 않고 이대로 유지돼 70년 동안 누적된다면 7만건에 달한다. 5000만명이 평생 살면서 살인을 저지를 확률로 환산해보면 1000명 중 한명 이상이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한 힌트는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캠퍼스에서 신경과학을 가르치는 제임스 팰런 교수로부터 파악할 수 있다. 팰런 교수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유전자 연구를 하다가 그 속에 사이코패스 살인자의 뇌와 매우 비슷한 뇌 사진이 포함된 것을 발견했다. 실수로 들어간 사진으로 추측했다가 그 사진의 주인공을 확인한 후 깜짝 놀랐다. 사이코패스 살인자의 뇌와 흡사한 뇌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팰런 교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가계의 역사를 조사했다. 그 결과 자신의 조상 중 친어머니를 죽인 살인자가 있었음을 알아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모친 살해범이었다. 다른 조상 중에도 살인자가 7명이나 더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면서 자신에게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중요한 약속을 어기거나 거짓말을 할 때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기억이 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심하게 짓궂은 장난에 몰두하고 기이한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무리 순수연구를 하는 학자라 하더라도 자신 및 자신의 조상에 대한 치부를 들춰내 말한 용기가 대단하다.
그의 이야기는 TV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의 소재로도 쓰였다. 제임스 팰런이 뇌과학과 심리학 등의 이론을 통해 사이코패스의 심리와 근원을 탐구하며 저술한 책은 <괴물의 심연>(더퀘스트 출판)이란 제목으로 번역돼 국내에도 출간됐다.
엽기적인 수원 살인사건의 살인범 오원춘. /사진=뉴시스 강종민 기자
◆정치인과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 뇌를 가진 사람은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윤리나 도덕에 대한 기준도 다른 사람과 다르다. 다만 이들은 이를 감추고 생활한다.
폭력 전과자들의 뇌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연구결과는 많이 나왔다. 독일의 신경과학자 게르하르트 로스 박사는 그들의 뇌 사진에 공통적으로 전두엽 부분에 검은 물질이 찍힌 것을 발견했다. 이로 인해 폭력적인 장면을 봐도 동정심과 슬픔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에 반응이 나타나지 않음을 알아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진정한 후회 없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무덤덤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흔하다. 심지어 나도 피해자라며 마치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듯 항변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은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평범한 사람은 상대방의 겁에 질린 얼굴을 보면 뇌의 피 흐름이 증가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오히려 감소한다.
한국의 정치인 중에도 스스럼없이 거짓말하고 말바꾸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오랫동안 쌓아온 신의도 쉽게 저버린다. 그럼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거나 반성하지 않는 정치인을 우리는 수없이 봤다. 이러한 모습 또한 사이코패스의 특징으로 이해된다.
캐나다 몬트리올대학교와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연구진이 의학전문지 <란셋>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사이코패스는 인지기능 및 정보 등을 담당하는 뇌의 회백질 및 특정 백질 섬유가 구조적으로 이상해 과거에 저지른 범죄나 죄책감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학습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사이언스타임즈. 2015.04.20.).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타고나는 사람은 모든 문화권에서 2%로 동일하다고 한다. 100명 중 2명은 사이코패스라니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팰런 교수는 연구를 통해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한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
그는 원래 유전자 결정론자로서의 시각을 갖고 있었는데 연구과정 중 바뀌었다.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지닌 2%의 사람도 특정 환경에서는 폭력성이 나타나고 범죄자나 테러리스트가 되지만 그러한 타고난 기질을 잘 이해하고 신중한 양육이 이뤄지면 온전한 사회인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강력범죄자 중 사이코패스가 약 20%에 달하지만 크게 성공한 최고경영자(CEO),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처럼 뛰어난 정치인, 존경받는 종교의 성자 중에도 사이코패스는 있다.
◆긍정적 활용 시스템 구축 필요
사이코패스가 지닌 특성인 무자비함, 매력, 집중력, 강인한 정신, 겁 없음, 현실 직시, 실행력이 성공의 요인이 된다. 성공한 이들은 주변인에게 공감을 느끼지 못했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 주변인을 희생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비정함이 위기가 닥칠 때 과감한 결정을 내려 돌파하게 만드는 유익한 역할을 한다. 팰런 교수는 타고난 사이코패스 기질을 잘 활용해 유능한 학자가 됐다. 자신이 사이코패스이기에 사이코패스 기질을 더 잘 이해하고 연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창업한 회사 뉴로리페어는 생명공학협회로부터 최고의 회사로 선정됐다.
사이코패스 기질이 주변인을 힘들게 하지만 자신의 개인 생존에는 유리하다. 정치인, 투자가, 군인 등의 직업을 통해서는 사회에 이득을 줄 수도 있다. 낚시나 사냥을 취미생활로도 혐오하는 사람이 있지만 물고기, 소, 돼지 등을 잡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기에 다른 사람들이 생선, 소고기, 돼지고기 등을 먹을 수 있다. 의사가 환자를 성심성의껏 치료하더라도 병이 낫지 않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깊은 공감능력으로 너무도 마음 아파하며 힘들어하는 사람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면 안된다.
사이코패스 특성을 가진 사람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보다는 그러한 특성이 부정적인 쪽이 아닌 긍정적인 쪽으로 활용되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타고난 성향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선천적인 기질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하며 살아가면 된다. 똑같은 사람이 환경에 따라서 영웅이나 역적이 될 수 있듯이 사이코패스의 특성 또한 동전의 앞뒷면과 같음을 이해해야 한다.
‘사이코패스=범죄자’라는 등식에 갇힌 일방적 시각보다는 그들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한 가정 및 사회의 시스템적인 요소를 짚어보고 개선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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