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은 금융권 중에서도 규제가 심한 산업이다. 부처 간 얽혀 있는 규제도 많다. 그런데 최근 금융당국이 보험료 결정권에 대한 족쇄를 풀어주기로 결정했다. 보험료 산정에 대한 재량권을 보험사에 모두 넘기기로 한 것이다.

보험업계는 분주한 모습이다. 우선 보험료 인상 움직임이 감지된다. 보험료 자율화 이후 보험사 간 경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상품뿐 아니라 가격 차별화 경쟁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은 보험료 규제완화를 통해 소비자가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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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규제완화 두고 복잡한 셈법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보험료 전면 자율화’를 선언했다. 임 위원장은 지난 7일 금융규제개혁과 관련한 현장간담회에서 “시장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영업을 옥죄는 낡은 규제를 제거하는 것이 금융개혁의 핵심”이라며 “보험상품 가격 결정과정에서 보험사의 자율성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보험사들은 금융위원장의 표준이율과 상품가격의 연동 폐지 발언에 주목했다. 임 위원장은 “대표적인 가격규제로 작용하는 표준이율이 보험료 책정기준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끊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보험사가 표준이율에 종속되지 않고 자율적으로 예정이율을 계산해 보험료를 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표준이율과 보험상품 가격을 연동하는 것이 폐지되면 보험사들은 자율적으로 보험료를 결정할 수 있다. 다만 당국이 표준이율을 떨어뜨렸을 때마다 예정이율과 연동시켜 보험료 인상의 근거로 내세웠던 보험사의 명분은 사라진다.

지난해 3.5%이던 표준이율은 올해 3.25%로 0.25%포인트 하락했다. 업계는 오는 9월 당국이 저금리 기조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등을 반영해 표준이율을 현재 3.25%보다 1%포인트가량 하향조정할 것으로 예상했다. 동시에 보험사들은 이를 예정이율에 반영해 보험료를 기존 대비 6~7% 올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임 위원장이 표준이율과 예정이율 간 고리를 끊겠다고 밝히면서 보험사들은 보험료를 얼마나 올려야 할지 애매해졌다. 셈법도 복잡해졌다. 이에 보험사들은 보험료 인상을 위한 물밑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 한 관계자는 “대부분 9월 표준이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며 “그런데 금융위가 보험료 자율화를 선언하면서 보험료를 인상할 경우 얼마만큼 올리는 게 맞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금융당국은 규제완화를 위해 TF를 구성, 9월까지 구체적인 개혁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보험사들은 금융위가 9월 규제개혁방안을 발표하기 전 보험료 인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사들은 일단 금융당국의 보험료 정책에 대한 후속조치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료가 자율화된 만큼 적정준비금과 자본금을 확보해야 할 것 같다”며 “만일 보험료 인상 폭이 생각보다 크면 (금융당국이) 다시 가격정책에 개입하지 않을까 한다”고 언급했다.

◆금감원, 금융위와 미묘한 시각차

9월 이후에는 보험료 자율화로 보험사 간 가격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오는 2020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전까지 보험원가의 기준이 되는 표준이율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방침이다. IFRS 적용 시 평가방식이 원가에서 시가로 바뀌면 표준이율 유지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보험료 자율화로 보험료 ‘폭탄’을 맞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 보험료 규제완화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큰 폭의 보험료 인상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보험료 규제를 완화하는 만큼 감독당국의 스크린 과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금융감독원은 금융위의 보험료 규제완화와 미묘한 온도차를 보였다. 금융위의 보험료 규제완화에는 동의하지만 어느 정도 소비자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측은 “보험료 수준은 보험사가 정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그러나 소비자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는 필요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험사끼리 경쟁을 유도해 소비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윤성훈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험료에 대한 규제가 철폐되면 단기적으로는 가격이 상승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작용보다 규제개혁의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클 수 있다”며 “다양성과 창의성 측면에서 가격자율화 도입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금감원, 갱신형 보험료 대폭 손질

금융감독원이 갱신형보험의 초기보험료를 현재보다 2~4배가량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상품의 최초가입일로부터 20년 동안 보험료를 평준화해 사실상 비갱신형보험을 판매토록 하려는 취지다. 이에 보험사들은 리스크가 커진다며 강력 반발, 진통이 예상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갱신형상품은 3·5·10년 등 갱신주기에 따라 보험료가 주기적으로 오른다. 그만큼 갱신형상품은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보험료가 크게 올라 민원이 계속 발생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최초가입일로부터 20년 동안 보험료를 평준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보험사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위험부담이 커져 영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보험사 한 관계자는 “갱신형보험은 초기보험료가 저렴한 것이 장점인데 보험료를 올리면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감원 측은 초기보험료를 올리기 위함이 아닌 20년 동안 낼 보험료를 평준화해 보험료에 선반영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암보험의 경우 갱신 때마다 보험료가 크게 올라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며 “소비자에게 유리한 방안을 고민해 갱신형보험 구조 자체를 바꾸기로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
www.moneyweek.co.kr) 제39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