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유명 영화배우 류더화는 전세계에 80채의 집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같이 수십억원이 넘는 호화주택이다. 그가 지난 2011년 첫째 딸 류샹후이를 낳았을 때 이 아기에게 선물한 홍콩 카두리힐 주택이 295억원 짜리라고 하니 사실상 부동산 재벌이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린다. 이렇게 많은 호화주택을 갖고 있는 류더화가 실제 거주하는 곳은 홍콩 카두리힐 소재 한 주택. 류더화는 10여년 전 이 집을 산 이래 이 집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한다. 소유한 집이 여러채 있지만 실제 류더화 본가는 이 집인 셈이다. 이유는 바로 풍수에 있다.
집을 사기 전 류더화의 어머니가 당대 최고의 풍수전문가를 초빙해 집의 풍수를 따져봤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 한다. 이 풍수가는 이 집이 류더화 인기를 계속 유지해주고, 돈도 더 많이 벌게 해줄 명당이라고 추천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풍수에 대한 믿음은 비단 스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건국 이래 가장 큰 '호랑이'(부패한 고위관리)로 꼽히는 저우융캉 전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도 풍수의 추종자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저우에게는 차오융정이라는 최측근이 한명 있었는데 이 인물은 바로 '신장(중국 서부의 지명) 도사'로 불리는 풍수전문가였다. 그는 저우융캉의 고민 상담은 물론 정치적 판단이나 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재물운 좋다는 말에 고향집 물길까지 바꿔
풍수에 대한 저우의 무한 신뢰는 그의 장쑤성 우시시 고향 집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지난 2012년 말 국가 최고 지도부인 상무위원 퇴임을 앞두고 고향 집 앞 하천에 물이 흐르지 않는다며 새롭게 하천을 만들게 했다. 집 근처에 물이 흘러야 벼슬과 재물이 들어온다는 풍수지리속설을 그대로 믿은 것이다. 그러나 저우는 자연스럽지 않은 인공하천은 오히려 ‘살’(殺)이 될 수 있다는 풍수의 또 다른 이론에 역풍을 맞은 꼴이 됐다. 저우는 “정치국 상무위원 출신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불상상위(刑不上常委)의 불문율을 깨고 지난 5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저우뿐 아니라 중국 일부 고위공무원들의 풍수에 대한 믿음은 맹신에 가깝다. 지난 2007년 중국 공무원 교육기관인 국가행정학원이 900여명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1%가 풍수를 믿는다고 했다. 28.3%는 관상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52%는 자미두수 같은 별자리 점성술을 믿는다고도 했다.
이렇다보니 차마 웃지 못할 일도 공무원 사회에서 버젓이 일어난다. 허베이성 가오이현 신청대로에는 지난 2010년 난데 없이 6차선 도로 한 가운데 작은 공원이 생겼다. 이 공원에는 6대의 전투기까지 들여놓았다. 현 당 위원회 서기가 “전투기가 관직 상승과 재물을 불러줄 것”이라는 풍수가의 말을 믿고 하루 아침에 도로를 밀고 공원을 만든 것이다. 지역 경제의 동맥 역할을 하던 도로는 공원이 생기면서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차가 막혔고, 결국 풍수 때문에 공원을 만든 서기는 파면 당했다.
◆승진 도움되는 풍수라면 펑펑 낭비
쓰촨성 야안시 진펑산에 있는 '쓰시티엔티'(쓰촨성의 하늘 계단)도 알고 보면 시 당 위원회 서기가 풍수에 눈이 멀어 만든 것이다. 진펑산을 오르기 쉽게 해 지역 관광 산업을 살리겠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풍수가가 이 계단을 만들어야 그가 초고속 승진을 할 수 있다고 꼬드긴 것이 실제 이유다. 당 서기의 승진 욕심 치고는 그 비용이 너무 가혹했다. 멀쩡한 산을 허물고 계단을 만드는 데 40억원이 넘는 정부 예산이 낭비됐다. 결국 이 당 서기도 지난 1월 기율 위반 혐의로 징역 16년형을 선고 받았다.
산둥성 타이안시에도 당 위원회 서기가 승진에 좋다는 풍수가의 말만 믿고 호수에 다리를 놓기도 했다. 중국 철도부 부장은 아예 집 안에 향불과 불상을 수십개 씩 갖다 놓는가 하면 풍수가를 통해 택일까지 해서 뇌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공산당원의 군기를 잡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가 바빠졌다. 풍수를 신봉하는 대부분의 공무원은 뇌물 수수와 공금 횡령 같은 대형 부정 비리에 함께 연루된 경우가 많다. 기율위는 지난해 공직자 윤리규정인 ‘8항 규정’을 위반한 사례 5만3085건을 적발해 관련 공직자 7만1748명을 징계했다.
◆기율위 '미신 금지'에도 '풍수 맹신' 여전
그러나 풍수는 이미 중국인의 삶에 밀접히 개입해 있다. 대형빌딩마다 4층, 13층, 14층을 불길한 숫자라며 아예 두지 않거나 수만위안의 거금을 주고 신생아의 이름을 지어줄 정도다.
교통사고가 많이 나는 큰 도로에 '태산석감당'(泰山石敢當)이라고 쓰인 돌을 두는 것도 대중 속으로 파고 든 풍수 중 하나다. 중국인들은 쭉쭉 뻗은 도로에는 살기가 모인다고 믿는데 이 때문에 교통사고가 많이 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곳에 태산석감당이라고 새긴 돌을 놓아두면 사고가 한결 줄어든다고 믿는다. 실제 이런 돌이 생겨난 후 사고가 더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고 한다. 건물 앞에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사자상을 세우는 것도 풍수가 얼마나 삶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강한 책임감과 도덕성이 요구되는 공무원 사회에서 지나치지만 않다면 풍수는 애교로 봐줄 수 있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산을 낭비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믿는 것이라면 각박한 공직사회의 숨구멍 정도로 여겨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풍수, 점술, 관상 등을 봉건적 미신이라고 판단하고 공무원을 대상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700만명이 넘는 중국 공무원 사회에서 길운과 악운을 가른다는 풍수는 사라질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